작년, 재작년 아이들이 호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이들이 없는 공간에서 혹시 나중에 필요할까, 혹시 누가 필요할까, 혹시 없애고 후회할까... 들고 있던 물건들이 참 많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드디어 조금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당근마켓"을 통해서.
그중 하나.
수년 전 공대 교수가 학과에서 무슨 수업에 썼는지 모르지만 지렛대가 달린 아주 비싼 레고 트럭을 조립해서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며 우리에게 준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걸 몇 년간 진열용으로만 썼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에게 줄까도 했지만 필요 없다고 해서 다시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당근마켓에 레고들이 아주 비싼 가격에 올라온 걸 보았고, 그 해당 레고도 꽤 비싼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당근마켓에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올리고, 보이는 그대로 가져가실 분을 찾았다. 단돈 오만 원에.
그리고 순식간에 댓글이 몇 개가 달렸는데, 가장 첫 번째 댓글 다신 분께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분과 대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다른 분들도 계속 문의를 주셨지만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첫 분에게 계속 답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글쎄요... 이것도 저렴하게 내놓은 것 같아서요. 다른 분들도 지금 당장 가지러 오실 수 있다고 하셔서요."
"제가 좀 멀리 살아서요...... 저희 애들이 레고를 정말 좋아해서요..."
그분은 주말에 오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주말까지 다른 분들의 제의를 다 뒤로 한 채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당일날 그분께 메시지가 왔다. 몇 시까지 어디로 가겠다고. 그리고 덧붙이길, 혹시 집안을 둘러보고 안 쓰는 레고 있으면 그런 것도 좀 챙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내 머릿속에 그분은 이곳 옆에 인접한 도시에 사는, 어린아이들의 엄마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레고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저렴하게 나온 레고를 찾아다니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정말!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혹시 초등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레고 비스므리한 물건들이 있나 하고. 그런데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리곤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수제로 만들어줬던 빵을 한 봉지 가득 담았다. 먼 길 왔을 테니 다른 장난감은 못 챙겨줘도 아이들 빵이라도 좀 담았다고. 그렇게 나는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서 그 빵 한 봉지를 뒤에 숨겨 들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멀리서 자그마한 차가 한대 다가왔다. 그리고... 자그마한 남자 한분이 내렸다. 애기 엄마가 올 줄 알았는데... 아빠가 왔다.
"이거, 빠진 건 하나도 없죠?"
"글쎄요. 저도 받은 거라... 잘 모르고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OOO은 잘 작동하지요?"
"글쎄요. 진열용으로만 썼던 거라 되는지 한 번 해 보시죠."
.......
남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해서 레고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몇 가지 레고 관련 질문을 했으나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보이는 것 말고는 나도 모른다는 말 밖에.
"그리고 이건 가서 아이들 주세요~"
나는 내가 들고 있던 빵 봉지를 거의 반사적으로 남자에게 전해주었고 남자는 그 빵 봉지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계속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오만 원을 주고는 떠났다.
그리고 내가 갓 집에 들어왔을 무렵 문자가 왔다. 그의 부인에게서. 자기 대신 남편이 갔는데 사이드 미러가 없다고 한다고. 그래서 나는 바로 다시 내려가겠다고 하고 급히 내려갔다.
"아이고 죄송해요. 그게 없었군요. 저는 없는지도 몰랐네요. 돈 다시 환불해 드릴게요."
"뭐요?! 지금 사기 싫으면 돈 도로 줄 테니 가라 이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이거 살라고 오늘 일도 쉬고, 여기까지 왔는데, 뭐요? 사기 싫으면 사지 말고 그냥 가라?!!"
남자는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고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머리는 너무 어지러웠다. 그냥 빨리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돌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럼 어떻게 해드릴까요? 환불도 싫으시고, 물건도 마음에 안 드시고..."
"내가 오늘 일도 못하고, 이것 때문에... 아, 진짜 열 받네!..."
그렇게 남자는 한참을 소리 지르고 역정을 내었다. 그러다 한참 뒤 결국, 남자는 나에게 2만 원을 깎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이체를 하려는데 손도 너무 덜덜 떨리고,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비번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바로 이체를 하겠노라고 하고 올라왔다.
집에 들어와서 겨우 이체를 하고 이체해 드렸다고 문자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답변의 문자를 받지 못했다.
나는 적어도 그의 부인에게서 남편이 한 성질 한다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주신 빵은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문자는 올 거라 굳게 믿었다.
믿고 싶었던 거였다. 부인이라도 그렇게 말해주면 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그 고급 수제 빵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리고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의 댓글이 처음 달렸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을 굉장히! 심하게 느꼈으나, 그 댓글에 '당신에겐 알 수 없는 강하게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니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곤 애써 그런 느낌을 지우려 더욱 노력하여 예쁜 이미지를 내 맘대로 만들어냈던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안 좋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돈을 더 내주었거나, 적게 받았거나가 아닌 내가 준 그 빵 봉지가 자꾸 떠올랐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걸 준비해서 들고 내려갔는데... 그걸 굳이 주지 않았어도 되었는데... 난 왜 바보같이 그걸 주었을까... 그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다시 그 사람과 엮일까 그 사람을 차단했다. 그리고 그 일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내 기억에서 흐려졌다.
오늘 오후가 되기까진.
오늘 아주 멋진 분과 쿨 거래를 하고 들어오면서 그분에게 거래 후기를 남겼다. 그리고 곧이어 그분께도 거래 후기가 도착했다. 그리고 어쩌다 뭔가를 클릭했는데 이전 거래의 후기들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후기들이 다 좋은 것들만 있어서 건성으로 클릭하고 넘기고 클릭하고 넘기고 있는데... 하나의 아주 짧은 후기가 나를 1년 전으로 되돌렸다.
(당근마켓팀에 전달되었어요.)
"불친절하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나는 어떻게 불친절했던가? 어떤 점에서 보면 내가 어떤 식으로라도 불친절하게 보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내 삶에 나타났던 것이었던가를 고민했다.
나는 1년 전에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 그땐 아마도 나를 좀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했다.
그런데, 같은 질문에 오늘은
어쩌면 삶이 원래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허무하게도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이유를 묻는 것도 전혀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냥 초연히 하루하루를 살아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