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편
영선이 언니는 호주에 도착함과 거의 동시에, 시내에 고급 식당을 열었다. 영선이 언니와 그녀의 남편은 한국을 알리는 노력에도 동참하였는데, 주로 한식문화를 알리는 노력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식당이 쉬는 한 일요일에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호주인 가족들을 위해 1일 특별 요리강좌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참가비는 최소한의 재료비만 받았으며, 황금 같은 자신들의 휴일을 포기한 정말이지 순수한 자원봉사였다.
영선이 언니는 육개장과 몇 가지 반찬 만드는 법을 호주인들에게 가르쳤다. 고춧가루 선별법에서부터 고기 손질법, 양념장의 적절한 사용법 등 호주에서 쓰는 것과는 많이 다른 재료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곧, 참가자들은 처음 만들어보는 육개장 요리를 시작했고, 서툴렀지만 처음으로 한국의 음식을 만들어 보며 다들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요리가 다 준비되었고,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뒤이어, 주방에선 조금 전에 사람들이 요리했던 음식에, 추가로 밥, 반찬, 디저트, 음료 등을 줄줄이 따라 내왔다. 오늘 1일 특강을 돈으로 치자면 참 손해를 많이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한 상이 그득하게 차려지고, 주인장 아저씨가 한 마디 인사말을 간단히 하고 식사가 시작되려는 찰나, 그 호주 모임의 대표가 일어났다. 오늘 특별히 시간 내 주심에 감사드린다며, 모두 돈을 모아 마련한 마음의 선물이라며 뭔가를 건넸다. 모두들 박수 치고 즐거워했지만, 나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
아저씨는 너무나 기쁘게 웃으며 싱글벙글 그 선물을 열었다.
순간,
나는 우려했던 것이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고, 거의 동시에 아저씨의 얼굴에서도 진심의 웃음이 잠시 0.5초간 멈추었다. 그러다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었지만 그 순수했던 처음의 웃음은 이젠 조금은 짜증이 섞인 억지웃음으로 변했다는 걸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특별한 선물도 아니고, 고급 초콜릿도 아니고, 마음을 담아 직접 집에서 만든 것도 아닌, 그냥 동네 슈퍼 같은 데서 산 것 같은, 비싸 봐야 10불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은 심하게 평범한 초콜릿이었다. 돈을 모아 샀다더니, 얼마씩 걷은 것일까, 각자 1~2불씩 냈을까, 몇 명이나 냈을까, 그럼 소수가 2~3불씩 냈을까... 잠시 궁금해지기도 했다.
물론, 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비싼 고급 초콜릿이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겐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생각했고, 아저씨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았다. 정말 '마음'을 담은 선물이구나 생각했지만, 왠지 그 마음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거 같았다.
받은 초콜릿 상자를 열고, 거의 동시에 아저씨는 '아, 다 함께 나눠 먹읍시다.'하면서 모두의 접시에 줄줄이 조금씩 나눠줬다. 그 자리에 있던 호주인들은 맘씨 좋은 아저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는 '이런 걸 선물이라고? 치사하고 기분 상한다. 당신들이나 많이들 드셔.' 정도로 보였다. 자신은 전혀 손도 대지 않았던 걸 보면 더욱 그래 보였다.
왜 그랬을까?
다들 대궐 같은 집도 있고, 투자용 부동산도 있고, 연봉도 몇 억씩 되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정말 진심으로 마음이 전해졌을 텐데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날이었다.
호주인들은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상대가 내게 부담을 주는 것도 엄청 싫어하여 정말 이런 식으로 마음만 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내 친구네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옆동네 사는 와니타네에서 모닝티를 하고 있는데, 캐서린이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캐서린은 들어서기가 무섭게 손에 들고 있던 아기 장난감 유모차를 내려놓았다.
"지난주에 차고 세일에 갔는데, 이게 있더라고. 혜나가 좋아할 것 같아서."
"ㅎㅎ 그래? 고마워. 얼마 주면 돼?"
"10불"
"잠깐만... 자, 여기 있어."
사 달라고 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 온 사람에게, 당연히 내가 얼마를 주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
내 맘대로 새 것도 아닌 중고를 사 들고 와서는, 준다고 아무렇지 않게 돈을 받는 사람.
내 눈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둘이서 장난을 치는 것인지 분간을 하기조차 힘들었다.
또 한 번의 충격은 직장에서였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잠시 중간 쉬는 시간에, 각 선생님들이 한 접시씩 들고 온 음식으로 파티를 한 후 교무실로 올라가니 제인이 우물쭈물 다가왔다.
"은정, 오늘이 네 생일인 줄 몰랐어. 자, 생일 축하해." 하며 내게 내민 건 포장도 안 된, '작은 수정테이프 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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