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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Feb 12. 2016

비빔밥의 세계화
베지마이트의 대중화

호주 편

나는 호주에 가기 전 한국에서 위가 자주 아팠다. 주로 한국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낙지볶음, 떡볶이, 매운탕, 육개장, 비빔밥 등이었는데 주로 짜거나 매운 음식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매번 이런 음식을 먹고, 약 먹고, 또 매운 거 먹고, 약 먹고… 그렇게 반복하며 살았었다. 


그러다 호주에 가니 음식이 맵지는 않았지만 주로 엄청 짰다. 짠 정도가 아니라 그냥 소금을 들고 마시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약간 단 것에 가까운 음식들마저도 호주에서는 정말 짰다, 그냥 짭짤한 정도가 아니라. 예를 들어, 팝콘, 감자칩, 피자, 감자 프라이 등 거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짰다. 


아주 심하게 짠 걸 먹으면 몸이 견뎌내지 못하는 나는, 호주에서 외식을 할 때는 식당과 메뉴 선정에 아주 조심해야 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캔버라에도 한국식당이 제법 많이 생겨 외식도 한식당에서 종종 할 일이 생겼다. 물론, 재료를 다 구할 수 없다는 호주에서 완전한 한국의 맛을 내기는 불가능했겠지만, 나처럼 요리에 젬병인 사람은 무늬만 한국음식이어도 감지덕지였다. 


그날은 시내에 볼 일 보러 갔다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한국식당을 지나치게 되었다. 아주 근사하게 차려진 제대로 된 한정식 같은 분위기의 새로운 식당이었다. 과연 호주에서 한정식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은 해 봤지만, 일단 맛이나 한 번 보기로 했다. 


나름 실내 인테리어를 한국식으로 꾸미느라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벽지는 한글로 다 도배되었고, 곳곳에 한복, 전통인형, 갓, 곰방대까지 걸려있었고, 노래도 한국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면 전통음악이 아닌 가요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장사가 잘 될까 불안한 한정식 집에서 노래까지 괴상한 (호주인들이 듣기에) 것까지 나오면 더욱 위기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르긴 했다. 


고기류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저렴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한국의 비빔밥을 주문했다. 가격은 13불. 혹자는 한국돈으로 만원이 넘는 돈을 겨우 비빔밥에 투자하다니 아깝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호주에서 제대로 된 걸 사 먹고 싶다면 한국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을 얼른 버려야 한다. 거의 모든 것이 한국과 비교해서 비싸기 때문이다.  


미리 나온 반찬을 이것저것 먹으며 한국의 반찬은 참으로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귀찮기 그지없지만, 먹는 사람에겐 이렇게 다양하고 푸짐하니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그리운 한국의 음식을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옆에서 호주 액센트가 강한 영어가 들려왔다. 


“비빔밥 먹자고? 그거 뭐 별 맛도 없어 보이던데 먹지 말자. 그냥 밥에다 야채 몇 개 올려놓고 매운 소스 넣어서 섞어먹는 거 아냐?” 호주 남자로 보이는 백인 남성과 동양계 혼혈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 내 옆에서 메뉴를 보다가 그 남성이 뱉은 말이었다. 


남자의 말에 여자가 받았다. 

“왜? 나는 비빔밥이 제일 맛있더라. 가끔 많이 매울 때도 있지만 난 그래도 너무 맛있더라고. 너도 먹어봐. 보는 거랑 먹는 거랑 또 다른잖아.”


“아니, 난 별로 먹고 싶은 생각도 안 들어. 프랑스나 이태리의 아주 고급스러운 요리도 아니고, 이건 뭐 이상한 야채를 볶아서 밥이랑 섞어 먹는 거밖에 더 되냐? 너는 비빔밥 먹어 그럼. 나는 한국식 피자(파전) 먹을게. 이건 그나마 괜찮은 거 같더라고. 음, yum 파전...”


잠시 후, 그들의 식탁에도 반찬이 몇 가지 나왔다; 김치, 어묵볶음, 미역 오이무침


여자가 미역을 한 조각 집어먹자 남자 왈, 

“야, 그거 해변에서 수영할 때 널려있는 seaweed(미역) 아냐? 우웩~ 그걸 어떻게 먹냐? 바다 냄새가 여기서도 나는 것 같다.” 


“뭐 어때서? 이게 엽산이 많아서 몸에 엄청 좋대. 나는 말린 김도 자주 먹는데?” 


“이건 뭐야, 이건 fish cake (어묵)이잖아. 아, 난 이건 죽어도 못 먹겠더라. 이걸 어떻게 먹냐? 도저히 그 냄새랑 물컹한 느낌이 싫어. 대체 그 안에 생선의 무슨 정체불명의 것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고.”    


“야, 이거랑 소시지나 스팸이랑 뭐가 다르냐? 다 그게 그거지.”


“그래서 난 스팸도 안 먹어. 소시지는 가끔 먹지만. 하하. 한 번은 내가 대학교 때 일본을 간 적이 있었는데 도중에 한국을 이틀 정도 들렀거든. 근데 한국 사람들은 내가 한국에 가 봤다고만 하면 항상 ‘김치 좋아하냐? 매운 거 좋아하냐?’하고 물어봐. 김치가 뭐 솔직히 썩은 배추 아냐? 근데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맨날 물어보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너도 김치가 그렇게 맛있고 특별하다고는 생각 안 하잖아?”   


“글쎄, 나는 한국인의 입맛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우리 엄마를 보면 항상 김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먹었던 것 같아. 우리 (백인) 아빠는 매운 걸 전혀 못 먹어서 엄마가 항상 아빠를 위해 백김치를 만들었지. 하지만 아빠는 냉장고 열면 김치 냄새나는 걸 넘 싫어해서 엄마는 김치용 냉장고도 따로 차고에 두고 쓰셨지. 근데 뭐, 썩은 걸로 치면 치즈나 요거트랑 뭐가 다르냐? 근데, 아무튼 썩은 게 아니라 발효된 거라고 한단다, 발효! 치즈도 썩었다고 하지 않듯이 말이야.”


“어떻게 아주 여러 종류의 맛난 치즈와 달랑 김치를 비교하냐?”  


“김치도 아주 종류가 많대. 이거 (매운 배추김치) 말고도 엄청 종류가 많대. 한 백갠가 이백 갠가 쯤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주로 이거만 많이 알려져 있는 거라고.”   


“거 봐,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하니까 다른 건 안 알려져 있는 거지.” 


“너 완전 문화 차별주의자잖아!” 


“헤헤, 그게 아니라 너무 솔직해서 그런 거겠지. 이렇게 솔직히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되는 법이지 않겠어?”


한식당에서 주문한 비빔밥을 기다리며 이 커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밀려왔다. 우리는 김치와 비빔밥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며 (아니면 그렇게 하도록 교육을 받았던가) 온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하지만 특별하거나 맛있다는 생각은 차치하고라도 별 관심도 안 보이는 호주인들이 너무 많았다. 


나도 한 때는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였지만, 매운 걸 먹지 않으면 위가 더욱 편하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김치를 먹어도 항상 물에 씻어 먹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호주인들을 어느 정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김치는 정말 젖산균으로 가득한 건강하고 훌륭한 음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냄새나고 짜고 맵기만 한 배추절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예전의 나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호주인들이 매일 아침 토스트에 발라먹는 영양 가득한 ‘베지마이트 (Vegemite)’라는 한국의 된장 같은 것도 아주 중독적이다. 베지마이트를 어려서부터 먹고 자라면 어른이 되어서, 마치 우리에게 김치가 그러하듯이, 삶의 필수 불가결한 품목이 되지만, 타국인들에겐 여전히 절대 입에 대고 싶지도 않은 고약한 냄새와 맛을 가진 그들만의 고유한 음식일 뿐이다. 


이게 몸에 좋다는 이유로, 호주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이유로 ‘베지마이트’를  세계화시키고자 호주 정부가 노력한다면 그걸 한국인의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일까 거꾸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시도와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입맛에도 맞지 않는 김치와 비빔밥을 홍보한다고 그들이 한국음식을 좋아하게 되고, 또 나아가 한국을 알게 되고, 결국은 좋아하게 될까? 아니면, 유명 신문들과 전광판에까지 엄청난 돈을 들여 날계란이 올려진 희한한 음식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던, 특이한 국가라고 기억을 하지는 않을까?


음식이란 것은 태어나 자라면서 오랫동안 먹으며 습관이 되고, 입맛에 맞게 되며, 결국은 그리운 맛이 되는 것이지 억지로 광고한다고 갑자기 입맛이 당겨지는 건 아닐 거다. 게다가, 비빔밥이나 김치를 엄청나게 광고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올라간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위상도 올라가고 관광객도 늘거나 할까....


비빔밥에 올려진 매운 고추장을 조금 덜어내며 조금은 부질없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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