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리아코알라 Feb 09. 2016

잔돈 세다 돌아가시겠다

호주 편

일요일 오후면 나는 우리 집에서 많이 멀지 않았던 (차로 10분?) 근처 시장에 가곤 했다. 한두 가게만 빼고 대부분의 가게들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문을 닫았던 이유로 일요일 오후엔 남은 야채와 과일을 최대한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다음 주 목요일까지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은 거의 공짜로 주는 게 버리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반 가격까지 떨어지거나, 종종 공짜 물건도 있었다. 그런 ‘저렴이’들을 데려오려면 일요일 늦은 오후, 4~5시 이후로 가야 했다. 


그날도 조금 이르긴 했지만, 한 바퀴 돌며 물건을 보고 나니 4시 반이 훌쩍 넘어있었다. 이것저것 야채와 과일을 카트에 넘치도록 담았다. 세일해서 한 박스에 20불도 하지 않는 망고를 카트에 담으며, 가격이 저렴해지는 시간에 나오는 게 어떻게 보면 별로 돈을 절약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3kg면 될 과일도 싸다는 이유로 두 배를 사 가서 배가 터지도록 먹거나, 무김치를 그렇게 즐기지도 않으면서 팔뚝만 한 무 한 개가 $2밖에 하지 않는다고 덜렁 사서는 무김치 담느라 양념에 돈 더 많이 쓰고, 결국 주위 사람들만 좋은 일 시켜 주곤 했으니까. 그런 게 정이고, 또 그런 게 사람 사는 맛이긴 했지만, 아무튼 경제적이라는 면에서만 보면 그다지 돈을 절약한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드디어 시장에서의 쇼핑과 아이쇼핑을 마치고 물건을 계산대에 하나씩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정말 카트를 가득히 채웠는데도 계산대에서의 가격은 정말 아주 조금씩 더해지고 있었다. 기특한 ‘저렴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십 대로 보이는 젊은 점원이 열심히 계산을 다 함과 동시에, 계산대에는 $47.25라는 숫자가 떴다. 50불짜리 지폐를 들고 있던 나는 그 숫자를 보곤 25센트를 지갑에서 더  끄집어내었다. 나는 정말이지 5센트짜리가 많은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50달러짜리 한 장과 25센트를 내밀었다. 순간 그 점원의 얼굴에 드리워진 당황함에 내가 더욱 어쩔 줄 몰랐다. 그러한 와중에도 나는 계산대 옆에서 한 봉지에 50센트로 땡처리되던 고수 (coriander)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고는 그것도 더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무겁고 큰 50센트짜리 은동전(호주의 50센트 동전은 특히 크고 많이 무겁다)을 꺼내어 아까의 50불과 25센트에 더해 총 50.75불을 들고 있었다. 50불에서 원래 가격이었던 47.25 달러를 빼면 2.75달러를 거슬러 줄 것이고, 그럼 나는 25센트를 주고 3불로 바꿔달라고 할 참이었고, 50센트의 고수는 들고 있던 50센트를 바로 주고 살 거였던 것이다. 


처음의 50불과 25센트를 보고 머릿속이 복잡하여 당황해 있던 점원은, 내가 고수를 집어 들고 50센트를 꺼내자 완전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아까와 비교해서 내줘야 할 잔돈에는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3불만 내어주면 된다고 했지만, 내 말이 귀에 안 들리는지, 손님 말을 무조건 믿고 주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컸는지, 뭔 생각을 하는지 계속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당황해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뒤에 줄 서 있던 손님들은 다른 쪽으로 가 버렸고, 나만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계산대에서 20불짜리 두 장과 10불짜리 지폐 한 장을 들어 50불을 만들어 쥐더니, 돈을 계산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즉, 50불에서 내가 산 $47.25 (처음 가격) 가격만큼을 제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20, $20, 그리고는 남은 $10을 $5짜리 한 장과 $1짜리 동전 5개로 바꾸어쥐었다. 그리곤 $5, $1, $1 하고서 7불을 만든 다음, 남은 3불 중 1불을 다시 50센트, 20센트 2개, 그리고 5센트 2개로 바꾸었다. 그리곤 20¢, 5¢ 하고 내려놓으며 드디어 47.25센트를 만들어 놓고선, 손에 남아있는 2불 75센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내게서 50¢받아 다시 고수 값으로 50¢를 제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들고 있던 25센트를 더해서 3불로 바꾸어 주었다. 엄청 간단한 셈을 그렇게 복잡하게 하더니 여전히 조금은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현금등록기에 입력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호주식으로 그렇게 일일이 큰 지폐를 작은 지폐로 바꾸고, 또 작은 동전으로 바꿔가며 계산하는 걸 처음 봤던 터라 조금은 답답했지만 흥미롭게 끝까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날의 교훈을 절대 잊지 않았다. 즉, 호주에서 금전 계산은 최대한 간단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금전등록기에 액수를 이미 다 입력하여 계산이 끝난 후라면, 아무리 받을 잔돈이 많더라도 지갑에 있는 동전을 뒤늦게 더 내며 조금 더 큰 동전으로 바꿔달라든가 하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기로 말이다. 즉 다시 말해, 9700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만원을 내고 300원을 거스름 돈으로 받으려는 찰나, 200원을 더 주면서 500원을 내 달라든가 하는 일 따위 말이다. 


물론, 호주에는 여러 인종이 모여 살고 있어서 셈을 특히 잘하는 민족이 많다. 중국인이나 인도인들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암산이 빠를지도 모른다. 꼭 동양인이 아니어도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셈이 참 빠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동양계가 아닌 백인 호주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엔 느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주에서 암산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들 계산기를 써서 계산하면 더욱 빠르고 정확한데 뭐하러 복잡한 암산을 하느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고학년이 되면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주는데, 처음 그걸 들었을 때 나는 작지만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 


진땀 뺐던 그 에피소드 후에도 동전이 너무나 싫어서 가끔은 추가로 뒤늦게 동전을 꺼냈다가, ‘Uh…’하는 순간 ‘Oh, no, not to worry. (아, 아녜요. 신경 쓰지 마세요)’하고 도로 집어넣곤 했다.

지난 기억 속 진땀이 아직 채 마르지 않아서였다. 



호주의 돈은 조금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동전: 

우선, 2달러 동전이 1달러 동전보다 더 작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1달러짜리 동전은 1달러짜리 지폐를 대신해 1984에 새로 만들어졌고, 2달러짜리는 그로부터 4년 뒤인 1988년에 도입되었다. 


1달러를 만들 때, 아주 적정한 크기인 25mm로 만들었다. 그런데, 2달러를 만들려고 보니 사이즈가 애매한 거였다. 20센트짜리 동전의 사이즈가 28.65mm였으니, 적당히 큰 사이즈를 찾기가 어려웠던 거였다. 특히 시각장애인까지 고려해 보면, 어중간하게 커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작은 20.50mm가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고로, 현재의 2달러짜리 동전은 1달러짜리 동전보다 더 작고 조금 더 두껍다. 시기만 2달러가 1달러짜리 동전보다 빨리 나왔다면 아마 이런 사이즈가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호주의 50센트짜리 동전은 특이하게 각이 져있는데, 이는 20센트와의 구별을 좀 더 뚜렷이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크기가 정말 너무나도 크고 (31.65mm), 무겁다. 

그런데, 올해로 발행 50주년을 맞는 이 주화가 곧 새로운 디자인으로 선보일 예정이라니 큰 기대가 된다.


지폐:

호주의 지폐는 폴리머(polymer)라는 재질로 되어있다. 이는 위조방지에도 도움을 주고, 물에 젖지도 않고, 잘 구겨지지도 않으며,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말을 들은 몇몇 사람들이 실제로 안 찢어지는지 실험하다 찢은 사람도 있긴 있다고 한다. 뭐, 찢기 힘들다는 거지, 안 찢어지지는 않으니까... 그런 시도는  안 해봐도 좋겠다. ^^ 


호주 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koreakoala.com을 방문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방전된 일회용과 충전용 건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