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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an 11. 2016

한국에선 엘리트
호주에선 쉐어생

호주 편

언젠가 한국에서 공무원 장학금을 받고 2년 간 호주 캔버라에 공부하러 오셨던 마흔 후반의 ‘미스터 장’으로 통하는 남성분을 뵌 적이 있었다. 한국에선 평생을 엘리트로 사셨는데, 그 엘리트들 중에서도 다시 뽑혀 호주에 공부하러 온 것이었다. 


한국에서 어떤 삶을  사셨을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엘리트로 살아온 사십 대 후반의, 한국의 고급 공무원의 삶을. 


호주 하면 생각나는 시드니나 멜버른이 아닌 호주 국회가 있는, 조금은 무료할 수도 있는 캔버라에 혼자 오셨다. 한국 사람 많은 대도시를 피해서 이곳으로 오셨다고 하셨다. 보통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와서 집도 알아보고 해야 하는데, 이분은 장학금을 받기도 하고 본인의 여유돈도 조금 있었기에 별 걱정 없이 거의 날짜 맞춰 도착하셨던 것 같았다. 그렇게 가볍게 시작되었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던 그분의 얘기인즉슨 대략 이랬다.


그는 한국에서 월세나 전세를 구하듯이 호주에서도 그냥 ‘본인’의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면 바로 돈을 주고 계약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집 계약을 오케이 하는 사람은 집을 구하는 본인이 아니라  '집주인'이라는 걸 아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시내에 집이 있으면 굳이 자동차를 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시내의 한 아파트를 보러 갈려고 했더니 그다음 주 화요일 2시에 open day를 하니까 그때 와서 보라고 했다. 그래서 가서 보니 역시 인터넷에서 봤던 대로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이 계약하기 전에 빨리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약하겠다고 했더니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그리고 보니 그 부동산 직원이 들고 있던 신청서만도 수십 장은 되어 보였고, 함께 그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었던 사람들도 어림하여 스무 명은 될 것 같았다. 


집에 와 신청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별의별 항목이 다 들어 있었다. 내가 차가 있는지, 직업이 있는지, 그게 뭔지, 연봉은 얼마인지, 성격은 사교적인지, 그리고 추천인도 두 명이나 쓰라고 되어 있었다. 그 어느 항목에도 만족할 만한 답을 쓸 수 없었지만 그는 열심히 빈칸들을 채워 넣었고, 신청 후 곧 탈락되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렇게 두 어번 더 신청하던 그는 곧 자신이 그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원하는 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잃자 울며 겨자먹기로 '호주인'이 하는 쉐어를 구해 들어갔다. 


편한 한국인이 아닌 호주인 쉐어를 일부러 찾아 들어간 것은 조금이라도 영어를 더 배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인과 얼굴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고, 마주쳐도 거의 주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Hi'하고 인사할 때는 정말 상냥하다가도 뭔가 요구할 때는 정말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말했다. 생전 외국이라고는 잠시 동남아 며칠 나가 본 게 다였던 그에게 그 호주인의 집이 편할리 만무하였다. 


아침에 샤워를 하려면 타이머를 주며 4분 이내로 끝내라고 하고 (극심한 가뭄으로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물 아끼는 게 거의 습관화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로는 말라빠진 토스트나 시리얼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고, 싸주는 점심도 아침의 그 식빵에 호주 사람들이 매일 아침 먹는다는 썩어빠진 된장 같은 ‘베지마이트(Vegemite)’라는 걸 발라서 그 위에 치즈 한 장 철퍼덕 올려주고, 집주인이 일주일에 한 번씩 특별히 주문해 주는 피자는 한 판에 5불씩 하는 정말 호주에서 제일 싼 듯한 소태같이 짠 걸 먹었다. 


그렇게 계속 살다가는 한국으로 도망이라도 가 버릴 것 같아서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한국인이 하는 쉐어로 옮겼다. 


거기선 정말 생각했던 대로 아침에 토스트가 나오지 않았고, 훌륭하지는 않아도 밥에 반찬과 국이 나왔다. 하지만 거기서도 물 아껴 써라, 전기 낭비하지 마라더니, 인터넷까지 자유롭게 하지 마라고 했다. 특히 두 달 전에 한 초등학생 6학년 아이가 한 달간 홈스테이를 하고 간 후, 지난달에 요금 폭탄을 맞았는데, 그 아이는 호주의 인터넷 요금 실정을 잘 몰라 한국서 하던 대로 영화를 여러 개 다운했었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 버린 아이의 부모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했다나.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며, 미리 알려주지 않은 주인의 과실이 크다면서 오히려  큰소리쳤단다. 그 후, 주인은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는 더 맘 편하게 있으려고 지난 호주집보다 50불이나 더 많은, 일주일에 350불이란 거금을 주고 있는데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나마 그래도 식사가 한국식으로 나와서 조금 덜 힘들긴 하지만, 날씨가 추워져 갈수록 더욱 마음이 휑~해져 가는 것 같았다. 


시드니나 멜버른과 같은 대도시들과는 다르게 미스터 장이 머물고 있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겨울에 꽤 추워진다. 호주의 겨울은 집 밖보다 집 안이 더 추운 걸로 유명한데, 그는 흘려들었던 그 말을 그해 겨울이 되고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고 했다.


홈스테이 집주인은 각 방의 히터나 전기장판도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잘 틀지 못하게 단속했는데, 각 방 천장에서 나오는 중앙난방도 거의 틀어주지 않았다. 집주인은 집 안에서도 어그부츠 (Ugg boots) 신고, 파커 입고, 목도리하고 지내는데, 취침 시에는 수면용 털모자까지 쓴다고 했다. 


한국 집에선 겨울에 히터 빵빵하게 틀어놓고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곤 했는데, 집 안에서 벌벌 떨면서 뭐라 불평도 한 마디 잘 못하는 신세라니.... 


호주의 한 겨울이었던 6월의 하루는 유난히 추웠는데 그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골이 띵~하고, 코가 얼어있는 것 같았다. 이불을 최대한 목까지 감싸고 잤는데도 딱 얼굴 부문만 많이 추웠던지, 정말 머리가 깨지도록 아팠다. 


장황한 미스터 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집주인의 입장도 이해는 되었지만, 미스터 장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좋은 직업에 좋은 대우받으며, 편히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렇게 물었다. 


“너무 힘드시겠어요. 그럼, 한국에 예정보다 좀 더 빨리 귀국해도 되지 않나요? 꼭 2년 채우고 가야 하나요? 한국이 많이 그리우실 텐데요.”


미스터 장은 희비가 엇갈리는 웃음을 짓더니 입을 뗐다. “아 참, 근데 그게 말이죠, 저도 그럴까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요… 그래도 이게 한국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거 보단 좀 견딜 만하다는 생각이 들대요. 이번에 잘하면 비자를 2년에서 3년으로 늘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호주 생활도 이제야 적응이 좀 돼가고요.”


“네? 그래도 좀 서글프고 힘들다는 생각 안 드세요? 한국에선 편히 사셨을 텐데...”


“(흐흐) 뭐, 처음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정신적으로 힘들게 일하는 한국보다 육체적으로 좀 불편한 여기가 좀 나은 것 같습니다. 적응이 돼 갈수록 여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사는지도 좀 이해도 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도 되고요. 좋게 생각할라고 해서 그런지 요새는 다 견딜만합니다.”


힘들어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것처럼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았던 미스터 장은 그렇게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냥 누군가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나 보았다. 



호주인과 쉐어를 해야 한다면


인터넷은 무제한인지 먼저 꼭 알아보고 한다; 요금 폭탄 안 맞으려면.

물 절약은 기본으로 한다; 샤워는 4분 이내로, 설거지는 물 받아서.

전기장판이나 히터는 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 것으로, 꼭 필요시에만 잠깐씩 쓴다.

본인이 점심을 준비하지 않을 거면 싸 주는 샌드위치에 불평하지 말고 적응한다. 호주인들 다 그렇게 먹는다.

주인이 당연히 해 줄 거라는 추측은 금물. 필요한 게 있으면 부탁하거나 대화를 한다.

한국식으로 예의 상의 답은 하지 않는다. '학교까지 차로 데려다 줄까' 물었는데 예의상 '괜찮아요.'하면 두 번 물어보는 건 고사하고 다음번엔 아예 물어보지도 않는다. 필요시에는 감사히 받고, 감사 표현을 명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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