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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an 11. 2016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너무 견디기 힘든 킴취

호주 편

이민자 영어교육센터에서 일한 지 7년 여가 되었던 어느 날, 동료 브론윈이 교무실부터 시작해서 온 복도를 코를 킁킁거리며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배려하고 사람 좋기로 유명한 브론윈이 그러니 나도 무슨 일인가 덩달아 궁금해졌다. 


“브론윈 왜 그래요? 뭐 잘못됐어요?” 

“이 냄새 안 나? 이… 음… 뭐라고 표현할까? 가스가 새는 거 같기도 하고 뭐가 썩은 거 같기도 하고…” 


실로 브론윈은 우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썩은 (rotten)”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엔 섬광이 비쳤다. 순간 나는 발걸음을 살짝 뒤로 빼어 교사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나의 새로운 팬이 된 한국인 학생이 준 김치 한통이 그곳 제일 윗칸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갓 담은 배추김치와 무김치. 너무나 오랜만에 내 손으로 담그지 않은, 정말 군침을 흘리며 기대하고 있던 김치였다. 


그렇게 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나의 보물을 확인하고 서 있을 때, 브론윈이 들어왔다. 

“(킁킁) 여기서 훨씬 더 강한 냄새가 나. 여기 어딘가 봐.” 


그러다 냉장고 가까이서 나는 강한 냄새를 맡고는 

“가스가 아니었나 봐. 여기서 냄새가 나는데? 이 안에서 뭐가 썩었나 봐.” 


그러는 찰나에 “브론윈, 내 생각엔…이 김치에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저희 반 한국인 학생이 준 건데요…”브론윈이 휴게실에 들어선 내내 거북해하고 있었음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 좋은 브론윈은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마치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메슥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용히 창밖을 애써 태연스레 보듯이.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미안해졌다.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도 전에, 그 미스터리의 냄새를 찾게 된 브론윈은 “아, 오케이”하고는 쒹~ 나가버렸다. 


내가 알았던 7년 간의 브론윈의 모습 중 가장 서운하고 섭섭했던 날이었다. ‘어떻게 김치를 모르냐? 다른 기관도 아니고 수많은 이민자를 가르치는 이곳에서 말이야. 한국 하면 김치! 김치 하면 한국! 아니면, 아는데도 저렇게 싫은 표를 내는 거야? 아, 정말 속상해. 내가 왜 이렇게 죄인처럼 느껴야 하는 거지?’


영국 출신인, 정년에 가까워 오는 나이의 브론윈은 아직 입맛이 옛날과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브론윈은 늘 간단한 샌드위치, 플레인 요거트, 너츠, 과일  같은 걸 먹었던 것 같았다. 그다지 음식에 있어서는 실험적이거나 모험적인 것 같지 않았다. 


다만 간혹, 아주 간간이 브론윈이 마다하지 않고 먹는 것이 있다면 ‘인도식 카레’가 있었다. 그것도 매운맛 말고 아주 연한 맛으로. 이건 순전히 남편의 발령을 따라 3년간 거주했던 인도 생활 덕분이었다. 인도에서 3년 간이나 살았으면 다분히 입맛이나 후각도 여러 다문화에 적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불편함이 없이 살다 온 그녀의 외국 생활은, 모든 걸 그 나라의 실정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여행자나 이민자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겠구나 생각하니 조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 순간 호주에 도착해 힘들었던 나의 첫 해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도의 한 저택에 앉아 차를 마시는 브론윈의 우아한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호주 정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남편을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 주었다. 남편은 늘 불평하지 않고 싸 주는 대로 들고 가 먹었다. 


그렇게 한 1주일이 지났을 즈음 아침, 남편이 “오늘은 그냥 샌드위치 싸 주면  안 될까?” 하는 거다. 

“샌드위치보다 보온 도시락에 따뜻한 밥이랑 반찬을 더 좋아하잖아?” 

“그렇긴 한데, 어제 복도 반대쪽에서 일하는 브루스가 복도마다 다니며 뭐 썩은 냄새가 난다며 찾아다니더니 결국 내 사무실까지 들어왔더라고. 그런데 내가 열고 먹던 도시락통에서 난 김치 냄새가 너무 강했나 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고 기겁을 하고 나가더라고. 그러곤 하루 종일 날 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몸에서 마늘 냄새가 나서 그런가? 그렇다고 사람 많은 식당에 가서 먹자니 그건 더 좀 그렇고…”


그리고 그 후 남편은 호주 지내는 10년 동안 더 이상 단 한 번도 김치가 들어간 음식은 싸 간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냄새가 강한 한국음식을 조금이라도 싸 갈 때면 정말 게 눈 감추듯 후다닥 먹어치우곤 했다고 했다. 


남편과 나의 도시락, 후엔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주로 김밥이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매일 김밥을 먹어야 했던 나는 정말 김밥의 달인이 될 것 같았다; 아보카도 김밥, 연어 김밥, 돈까스  김밥,  참치 김밥, 치킨 김밥, 삼각 김밥, 하트 김밥……


언젠가 영국인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우연히 방문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국에 산 지 5년 차 됐다고 밝힌 한 영어강사의 글을 접했다. 그녀는 솔직히 한국에 와서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점도 없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나쁜 점도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김치였단다. 가는 곳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김치를 좋아하느냐고 묻고, 또 어떨 때는 담아주거나 먹여주려고 까지 하는데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는 거였다. 


자신이 김치가 싫은 이유는 첫째, 그 냄새가 너무 역하고, 둘째, 먹었을 땐 썩은 방귀 맛이 나며, 셋째, 그걸 서걱서걱 씹을 때의 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댓글에는 자신도 같은 의견이라며 동의하는 글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김치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 감히 대놓고 싫다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그토록 싫어하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치를 좋아하는 외국인보다 싫어하는 외국인이 더 많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닐까? 일본의 우메보시나 그리스의 짠 올리브를 좋아하는 한국인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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