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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an 13. 2016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이길래

호주 편

기다렸던 화요일이 되었다. 화요일은 한국어 플레이 그룹이 모이는 날이었다. 미취학 아이들의 엄마들이 모이는 그룹인데 한국, 혼혈, 혹은 한국 입양 아이들의 엄마들이 모였다. 그중 입양 아이들의 호주 엄마들은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참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어도 초급 정도는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고, 김치도 가끔 도움을 받아 담기도 했으며, 1~2년에 한 번은 한국을 방문해 아이들의 수양어머니를 꼭 뵙곤 하였다. 


이런 호주 맘들은 한국 문화에 꽤 익숙해 있기도 했고 늘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의 화두는 레이철이 시작한 한국 식료품점 아저씨 이야기였다. 


“시내에 식품점 주인 바뀌었더라. 가 봤어?" 


“아니. 그 집 장사도 그렇게 잘 된다더니 왜 팔았지?" 


“그거 팔고 식당을 한다던가 뭐 그렇대. 그건 확실히 잘 모르긴 해, 그런 소문이 있긴 하더라고. 근데 그 식품점 주인아저씨 말이야, 엄청~ 불친절하더라고 (unfriendly)." 


“어머, 정말? 가게를 하면서 불친절하면 단골이 잘 안 생길 텐데 왜 그러지? 근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불친절한데?" 


“그 주인아줌마는 정말 상냥하고 너무 친절한데 그 아저씨는... 뭐랄까... 그냥 항상 얼굴에 화가 너무 많이 나 있는 거처럼 보여. 갈 때마다 그 아저씨가 있으면 대충 장보고 얼른 나오게 된다니까." 


그리고 몇 달이 지나 그때 떨었던 수다의 주제(?)였던 식료품점 아저씨가 내 뇌리에서 잊혀갈 무렵이었다. 

고추장이 떨어져 퇴근길에 잠시 시내의 그 한국 식료품 가게에 들르게 되었다. 


퇴근길이었지만 어서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야 했으므로 시간적 여유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온 김에 바삐 휭~ 둘러보며 서둘러 이것저것 몇 가지 더 집어 들고는 계산하려고 줄을 서 있었다. 


'어디서 봤지... 친구 삼촌인가, 같은 동네에 살았나?...' 카운터 뒤의 무뚝뚝한 주인아저씨를 보면 계속 머릿속을 채웠던 생각이었다. 한참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지만 알아내지는 못했다.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억 속 어디에도 흔적이 없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줄이 길어 한참을 서서 기다리며 이 왠지 모르게 친숙한 얼굴의 아저씨를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정말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살짝 인상을 쓰고 있는 것도 같고, 아니면 짜증이나 화가 난 것도 같았다. ‘뭐가 불만일까? 한국에선 잘 나갔는데 호주에서 식료품 하는 게 그냥 성에 안 차서인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그다지 밝다거나 친절한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그 식료품점이 제일 큰 곳이 아니었거나 주인아줌마마저 친절하지 않았다면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주인아줌마는 계산을 할 때 끝자리 수는 할인을 좀 해주거나 떡이라도 한 조각 준다거나 하는 정이 있었는데, 아저씨에게서는 아무리 탈탈 털어도 '정'의 'ㅈ'자도 안 떨어질 것 같았다. 122.35센트의 1센트도 에누리없이 다 받고 끼워주는 껌 조각하나 없었으며 또 오라는 간단한 인사마저도 없었으니까. 


정말 유쾌하지 않았다. 레이철이 불평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그날의 기억이 거의 흐려졌을 무렵  또다시 이 식료품 가게에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 아저씨의 얼굴이 전과는 어딘가 사뭇 달라 보였다. 무표정은 매 한 가지였지만 왠지 모를 정이 느껴지는 거였다. 눈꼬리가 5도 정도는 올라가 보였으며, 얼굴에는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웃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격을 정말 마지막 센트까지 다 받고 끼워주는 거 하나 없었음은 매 한 가지였지만, 이번에는 계산하고 나가는데 극도의 무표정함에 너무나 무뚝뚝한 목소리긴 했지만, “또 오세요.”하는 게 아닌가! 


아, 그때 밀려왔던 그 알 수 없는 감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40여 년 간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게 미덕이라 여기며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던 사십 대 후반의 가장. 말도 잘 안 통하는 호주까지 날아와서 애들 공부시키느라 천성에는 맞지도 않는 가게를 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중년의 한국인 남성. 왠지 모르게 친숙해 보였던 것도 아마 내가 익숙해 있었던 한국의 어느 중년 남성에게서나 볼 수 있는 절제되고 답습된 공통된 무표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본인은 악의없이 본디 그런 무표정으로 그렇게 쭉 평생을 살아왔을 뿐인데, 남의 입에는 불친절한 사람으로 오르락 내리락까지 해야 되는 이 아저씨가 나는 참 애처롭고 안 됐었다. 


그러고 보니 레이철이 그 아저씨가 굉장히 unfriendly 하다고 했지 unkind 하다고 하지는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졌다. 조금 상냥하지 못해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천성이 악덕하여 기분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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