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대지방 한국에선 일본어를 쓴다
잘 나가지 않는 시내를 오랜만에 나갔다. 쇼핑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이지 파마하러 미용실에서 머리 말고 있는 거 다음으로 아까웠다. 한국의 택배와 온라인 쇼핑이 종종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계단으로 내려가던 젊은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 둘이 나를 흘낏 쳐다봤다. 왠지 자꾸 쳐다본다 싶더니 결국 그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곤니찌와~”
‘결국 이거였구나… 도대체 몇 번째야.’ 조금 성가셔진 마음을 얼굴에 대놓고 드러내며, “난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에요.”(I am NOT Japanese. I am KOREAN!)라고 했다.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짜증은 덜 났을 텐데 그다음 이어진 이 청년의 말, “오, 쏘리(Oh, Sorry), 니 하우? 씨에씨에.”
이걸 반박을 하자니 귀찮고, 가만히 있자니 무시당하는 거 같았다. 잠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조용히 내 갈길을 가기로 했다.
조용히 걷고 있자니, 그 오래전 어떤 주말의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 갔을 때였다. 어린 내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나는 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싸 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놀러 나온, 아빠가 되기엔 지나치게 젊어 보였던 한 호주인이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Where are you from?)
“한국에서 왔어요.” (I'm from Korea.)
“아, 한국~, 북한이요? 남한이요?”(Oh, Korea. North or South?)
이 질문을 받고 처음에는 너무 황당했다. ‘북한 사람이 호주를 어떻게 오냐, 당연히 남한이지. 아이고, 이마에 무식이라고 적고 다녀라.’라고 생각하면서.
- 하지만 호주에 오래 살면서, 실제 북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렇게 물었던 게 어쩌면 더 당연했었겠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내 무식을 반성하게 되었다. 병원에서고 공원에서고 북한 억양을 듣고, 잠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적이 가끔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내가 ‘South’라고 하자 이 사람 또 무슨 생각이 난 듯 “아, 거긴 열대지방 (tropical country)이잖아요?” 한다. 다시 정정을 해줬다, 아니라고. ‘사계절이 있는’ 나라라고. 물론, 근래에 한국에 와서 살면서 요즘 한국에는 사계절이 있는지 두 계절만 있는지, 열대우림기후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가끔 생각하지만, 아무튼 사계절이 있다고 말해줬다. 그때는.
그걸로 끝났는 줄 알았더니 이 사람, 자기가 계속해서 틀린 게 약이 올랐는지, 그냥 벤치에 멀뚱멀뚱 앉아있기가 뭐해서였는지 또 물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어를 써요, 중국어를 써요?” (Do they speak Japanese or Chinese in South Korea?)
아, 정말 한 번에 한 가지도 아니고 이렇게 여러 가지로 무시를 하다니! ‘한국에는 1446년에 만들어진 아주 과학적인 한글이 있고, 당연히 한국에선 한국어를 쓴다고!!’하고 고함치고 싶었지만 너무 추접하게 느껴져 그냥 조용히 ‘한국어’를 쓴다고 했다. 짜증은 내가 났는데 망신은 상대가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거였다.
내가 젊어서 머리를 빡빡 밀고 여행 다닐 때는 다들 날 일본인이라고 했다. 그러다 한참 여행으로 피부색이 까무짭짭을 넘어섰을 땐 필리핀인이라고 하더니, 호주에서 화장 안 하고 옷 편하게 입고 다녔더니 다들 중국인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름 한국을 알려야 할 의무 아닌 의무를 느꼈던 나로선, 조금이라도 한국인처럼 하고 다니려고 노력을 하려고는 했는데 그게 나한텐 참 어려웠다. 한국인처럼 보이려면 화장도 적당히 촌스럽지 않게 예쁘게, 머리도 유행에 맞춰 살짝 염색도 해주고, 옷도 세련되게 입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인을 포함해) 내가 한국인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건 여담이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재밌는 일이 있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픽업도 가고 하다 보니 자주 보게 되는 얼굴들이 있었는데, 그중 데미안의 엄마도 있었다. 데미안은 우리 아들과 같은 반은 아니어서 그 엄마와는 가까워질 일은 없었지만 늘 학교 앞에서 서로 ‘하이~’를 주고받았다.
그러기를 한 1년여…어느 날, 데미안 맘이 한국어로 진짜 유창하게 누군가로 전화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듣고, 너무 큰 충격과 반가움을 느꼈다. “아니, 한국분이세요?” 그 말과 동시에 상대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휘둥그렇다는 말은 정말 그럴 때 쓰는 거다.) “아니, Juno 맘도…??”(Juno는 영어 이름도 한국 이름도 되기에, 한국 이름인지 몰랐던 거다.) 우리 둘은 서로 믿을 수 없어하며, 웃는 듯 마는 듯 희한한 표정을 지어가며 말을 나눴다.
난 당연히 그분이 태국이나 필리핀 사람인 줄 알았고, 그분은 내가 당연히 중국 사람인 줄 알았다는 거였다. 어쩜 중국어를 배우는 편이 한국인처럼 보이기보다 쉬울지 모르겠다 생각한 날이었다.
이처럼 거의 대부분은 내가 한국인인지 조차도 잘 몰랐지만, 가끔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설령 알아맞히는 사람이 있었다 손 치더라도 거의 100퍼센트 가까이는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한국이라는 이름 만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일본 정부는 호주 '초등학교'의 일본어 교육을 지원해주는 반면, 당시 우리나라는 주로 '대학'에 지원을 해 줬다. 초등학교 때 자연스레 무의식적으로 접하게 된 나라와, 성인이 되어 특정 대학의 한국어과를 지원해 알게 된 나라 중 어느 쪽이 더 깊은 영향을 미칠까? 호주인의 상당수가 대학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수 중의 아주 극소수만이 한국어를 전공한다.
하지만 초등학교는 호주의 거의 전 국민이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다닌다. 어느 쪽이 나라를 알리고 특정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효율적 일지는 한쪽 눈을 감고도 보인다.
2009년,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로 했다는 뉴스가 있었고, 그로부터 몇 년도 안 되어 모든 약속했던 지원은 끊기고 프로그램도 모두 중단되었다.
호주에서의 한국어 교육, 문화 지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뭔가 지원을 요청하면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돈이 많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자주 들었다. 물론, 사실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문화를 알리기 위해 떡 찧을 절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대사관에 부탁했더니, 시드니에 사 주면, 멜버른은 왜 안 사주냐고 할 것이고, 그럼 애들레이드에서도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사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정된 적은 돈으로 절구보다 더 필요한 걸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 역시 반박할 수 없었다.
동네 도서관들에 한국어 책이 너무 없으니 지원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해도 묵묵부답이더니, 일반인들은 대출해서 밖으로 들고나갈 수도 없는 국립도서관에 한 무더기의 책을 기증하더라. 어마어마한 크기의 지하 서가에 꽂힐 책들 앞에서 환히 웃으며 찍은 국가 공무원들의 사진이 어딘가 신문에 실렸다. 우리의 훌륭한 책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도서관에 소장된다는 것은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니 신문에 실려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왠지 서운하고 섭섭했다.
우리는 정말 돈이 없어서 한국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을까? 마음이 없어서는 전혀 아니겠지... 아닐 거야.
더 많은 호주나 영어 관련 정보는 http://koreakoala.com을 방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