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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an 18. 2016

도저히 부를 수 없었던 그 이름

호주 편

호주에 도착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우리는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집 안보다 더 넓은 앞마당과 뒷마당엔 잔디가 깔려있었고, 올리브, 레몬, 무화과 등의 과일나무들이 심겨 있었으며 채소를 가꿀 작은 텃밭도 있었다. 


학교가 마치는 오후 3시가 지나면 옆집 아이들은 그 집 뒷마당에 설치되어 있던 트램펄린 위에서 놀았다. 마치 우리 집 마당을 염탐하기 위한 꼬마 탐정들처럼 정말 높이도 날아오르곤 했다. 그 집 아이들이 여럿인지, 친구들을 매번 그렇게  불러오는 것인지, 참으로 많은 아이들이 나에겐 조금 불편한 '탐정놀이'를 매일 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집주인듯한 사람은 울타리 너머로 가끔 목소리는 들었지만 무턱대고 높은 펜스를 넘어 볼 수도, 펜스를 사이에 두고 큰소리로 인사를 할 수도 없던 노릇이라 아직 통성명도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앞마당에 물을 주다가, 드디어! 그 궁금했던 옆집 미스터리 탐정 가족의 주인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참으로 '놀랍도록 자그마한' 체구에 인상 좋아 보이는 완전 토박이 호주인이었다. 그는 와가와가 (Wagga  Wagga)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그 집 부부는 모두 대가족 출신이었는데 그의 부인은 8남매 중 다섯 째였으며, 그도 다섯 아이중 장남이라고 했다. 그의 직업은 전기공이었는데 젊을 때 직업 전문학교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그는 수도이자 나름 번화한(? 실제로는 엄청 조용하고 한적한) 캔버라로 상경한 셈였다. 


우선 내가 먼저 내 소개를 했다. 나는 몇 달 전에 이사 왔으며 이름은 은정(Eunjung)이라고. 


영어에는 한국어에 있는 ‘으’ 발음이 없다. 그래서 호주인들은 유독 ‘으’가 들어가는 발음을 대부분 힘들어했다. 그래서 종종 나는 호주인들에게 ‘인정’, ‘윤정’, ‘이~윤정’, '에인절'등으로 불리곤 했었다. 


이 옆집 아저씨도 내 이름이 뭔지 세 번이나 다시 물어봤다. 그리곤 어렵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인 존?’이라고 했다.  


내 이름으로 진땀을 뺀 옆집 아저씨가 이번엔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Hi, I’m Tiny (tiny는 아주 쬐끄마하다는 뜻이다).” 나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내가 처음 봤을 때 그분의 체격이 정말 극히 아담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이름까지 타이니(TINY)라니!! 


믿기 어려웠던 나는 타이니 아저씨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세 번을 다시 물었다. 그래도 계속 타이니라고 했다. 속으로는 엄청 ‘만나서 반갑다, 타이니 (Nice to meet you, Tiny)’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진짜 아담하다’고 했던 생각을 들킨 것 같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담한 아저씨를 정말로 ‘아담’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가 없었다. 


결국 이름은 빼고 가까스로 ‘만나서 반갑다’는 말만 하고 돌아서는데 계속 뒤통수가 따갑고,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잘못을 들킨 것 같기도 했다. 눈치를 챘거나 말거나 나는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앉아 옆집 아저씨를 떠올리며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타이니, 타이니, 타이니, 타이니, 타이니, 타이니’ 그런데, 순간 불빛이 번쩍하더니 눈 앞에 이 단어가 펼쳐졌다. 



‘T O N Y’


그렇다. 아저씨의 이름은 토니!! 그 흔한 토니였던 거였다. 말로만 듣던 호주 본토박이 발음 정말 어렵구나 실감한 날이었다. 


내가 토니 아저씨의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어했던 것만큼 내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중 한 친구는 유독 너무 힘들어해서 내 이니셜로 E.J.로 불러도 좋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호주 특유의 단모음을 이중모음으로 늘리는 특징을 그녀는 백분 활용하여 '이이이이 제이이이'라고 불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 그녀의 어머니, 그녀의 아이들까지도 그렇게 단 두 음절인 ‘E.J.’를 거의 대여섯 음절 이상으로 늘려 불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1년 여 가까이 들었음에도 그 ‘새로운 이름’에 대한 친숙함은 고사하고 괴리감만 더 크게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느 호주인에게도 내 이니셜로 불러도 좋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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