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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Mar 06. 2016

*괜찮아, 너의 모습 그대로

 호주 편

초딩인 막내가 학교에서 학기초 준비물 목록을 들고 왔다:

색연필, 파일, 삼색 볼펜, 연필, 지우개, 물티슈, 공책, 자, 가위...


가위... 에서 내 눈길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호주에서 매학기초 받았던 준비물 목록이 생각났다.


그곳엔

오른손용과 왼손용 가위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추가 부담액 없이.


호주 학교에선 왼손잡이가 오른손용 가위로 불편해할 필요가 없도록

사소하지만, 세심하고 소중한 배려를 해 주고 있었던 거였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낙원상가에 기타를 사러 갔다.

큰 넘이 하나 사는 걸 보고, 막내도 같이 하나 사고 싶다 하였지만 왼손잡이용은 단 하나도 없었다.


호주의 악기점에선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왼손잡이용 악기가

한국에선 서울의 낙원상가에서 조차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막내에게 그냥 오른손으로 연주를 배워보라 하였다...


나는 그렇게 막내의 다름을 불편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어쩜 그때부터 막내는, 같아지고 싶었을 것이다.



획일화되지 않아도 되는 호주의 모습은 서류 양식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반드시 기혼, 혹은 미혼이 아니어도 되는

결혼한 듯, 그러나 하지 않은 사실혼 (de facto)도 당당히 서류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상대와 얘기할 때도 꼭 남편이나 부인이 아니어도

동거인 (partner)이란 말이 아무렇지 않게 종종 쓰였다.


나라면 굳이 '새언니, 새엄마, 새아빠, 배다른 동생'이라고 알리고 싶지 않을 새 가족도

호주에선 당당히 내 새언니 (my stepsister), 배다른 동생 (my half-brother)이라 하였다.


그들은 나와 처음부터 가족은 아니었지만, 숨길 이유도 부끄러워할 까닭도 없었던 것이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나의 당당한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었던 거였다.



내가 호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도 다양성이 존중되고 인정되는 사회란 게 참 좋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사고를 하고 살았었다.


머리를 거의 박박 민다던가,  인도인처럼 하고 다닌다던가, 가요나 팝 대신 이집트 음악을 듣고 또 돌려 듣는다던가, 모두가 단색의 안경테를 쓸 때 나는 오색 무지개 테를 쓰고, 신발은 색깔이 다른 짝짝이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학교 선생님의 의견에 감히 질문을 해댔으며, 여고생은 치마만 입고 등교해야 한다는 교칙에 나는 늘상 치마 같은 바지를 입고 다녔다...


그런 나의 한국에서의 삶은 참으로도 많이 피곤했었는데,

호주에선 전혀 튀지 않는, 평범하게 다른 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


호주에선 '모두 같음'을 추구하지 않으니까.

다름은 축복이요, 삶의 다채로움이라 여기니까.  


덧붙이는 이야기

얼마 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했다.

동네 미용실이 아니라, 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름난 곳이었다.


뒤를 완전히 밀고, 색깔은 아주 빨간색으로 탈색과 약간 붉은 갈색으로 염색을 섞어달라고 했다.

미용사는 웃으며, "에이, 그럼 안돼요~"

나는 그래도 그렇게 해 달라고, 웃으며 약하게나마 억지를 부렸다.

알았다며, 최대한 그렇게 해 주겠다고 했다.


다 끝나고, 내 머리를 봤다.

뒷머리는 거의 밀지 않았으며, 염색은 전체가 자연스러운 갈색으로 되어있었다.

밖에서 지나다니며 자주 봤던, 세련된 중년의 아줌마 머리였다.


"이건 제가 부탁한 게 아니잖아요?"

"여기가 홍대도 아니고, 반항하는 20대도 아닌데, 그러심 안돼요. 호호 아이고, 내가 했지만, 너무 예쁘네."


서울, 부산, 세종, 대전, 송도, 다시 서울... 얼마나 많은 다른 곳에서 같은 요구를 했는지 모른다.

거의 항상 들어주지 않는 요구를...


다음번엔 유일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던, 상봉점 미용사를 일부러 찾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더 자세한 호주 정보, 영어얘기는 http://koreakoala.com 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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