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백화점)
2020년 6월 14일 일요일 오후 1시.
물건을 교환할 일이 있어 집 근처 백화점에 갔다. 볼일을 본 후 나는 2층에 있는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화장실 옆 MVG 카페 앞에는 공짜 커피를 받으려는 고객들이 서너명 줄을 서 있었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자 문득 베를린에서의 일요일, 베를린의 백화점 화장실 풍경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한국의 일요일 백화점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1. 줄을 선 사람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아닌 공짜 커피를 받기 위한 줄,
2. 그리고 화장실 옆에 놓여 있는 공짜 정수기,
3. 화려한 조명과 불쾌한 냄새가 전혀 없는 쾌적한 무료 화장실
이 모든 게 한국의 백화점에서는 당연하다.
30년 넘게 살아온 이 서울에서 2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도 당연했던 1,2,3번의 모습이
지금은 새삼 새롭다.
독일에서의 백화점 풍경은 이렇다.
우선
1. 공짜란 없다. 최고급 백화점에 가야지만 시식으로 새끼 손톱만한 초콜릿 등을 나눠줄까 말까 한다.
2. 공짜 정수기가 왠 말. 물이란 것은 당연히 식당에서도 사 먹어야 한다.
3. 베를린 KaDeWe 정도 가야 소위 인테리어가 잘 된 화장실이지 그렇지 않으면 특히나 토요일 오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1m 이상 서서 기다린다. 또한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최소한 50cent(한화 약 650원)또는 그 이상의 돈을 내야 한다. 돈을 내고 들어갔는데도 쾌적하지 못한 느낌이 들 때가 많은 것이 항상 아쉽다.
4. 물론 일요일에는 백화점, 쇼핑몰, 슈퍼, 약국 모두 문을 닫는다. (물론 서울역, 강남역 정도의 유동인구가 많은 역 주변에 24시간 또는 일요일에도 하는 슈퍼, 약국이 한 두개 있지만 옷 가게, 쇼핑몰 등은 닫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갑자기
1. 일요일에 쇼핑을 할 수 있다니.
2. 찬 물, 뜨거운 물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니.
3. 이렇게 깨끗한 화장실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니.
4. 화장실에 들어갈 때 돈을 받는 사람이 없다니.
이 모든 게 당연한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 독일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렇게 2년을 살다 보니 일요일은 자연스레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날이 되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운동을 하고 책 한권, 물 한병, 돗자리 또는 천떼기 한장 자전거에 넣고 집 근처 공원으로 달려 거기에 누워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책을 읽는다. 또는 기차로 30분 남짓 근교 물가로 수영을 하러 나가기도 한다. 또는 산책하다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일요일에는 쇼핑도 할 수가 없고 오로지 '쉬는 것'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여행자들을 위해 박물관이나 미술관들이 일요일에 열기도 하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은 잘 안 가게 된다.
독일에서 살면서는 일요일에 온전히 '쉼'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내 경우에....
한국에서 사는 것은 몸이 편하고
독일에서 사는 것은 맘이 편하다.
베를린에서 보통의 일요일 오후 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