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일주일에 2-3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BZgA(Bundeszentrale für gesundheitliche Aufklärung 건강한 성교육을 위한 독일 연방제 본부)의 공익광고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섹스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며 나는 이 사진을 지하철역에서 찍었다. 광고판의 크기는 못해도 가로 2m 세로 3m 정도이다.
한국에서 30년을 넘게 살았고 30년 내내 혼전순결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나로서는
독일 베를린의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길거리 광고판에 엄청 크게 붙어있는 광고 자체가 (이 광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둘째 치고)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내가 너무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걸까? 80년대에 태어나 현재 30대인 내가 이런 광고를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고 이렇게 놀란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이 많아졌다.
정신을 차리고 광고의 메시지에 집중해보았다. 광고에 쓰인 내용 자체에도 소위 "내숭"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긴 이런 메시지를 대놓고 광고하는 판에 내용적으로 내숭을 떠는 건 무슨 소용?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광고 해석부터 해 보자.
1) 여자는 치마에 손을 넣어 긁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남자 사진은 깨져 있다. 전 남친이랑 헤어진 후에도 여자는 아직도 가려워서 아래를 긁고 있는 모습이다.
Dein EX juckt dich noch immer?
=> 독일어 번역: 엑스가 아직도 널 간지럽게 하니?(직역) => 전남친(과 했던 섹스) 때문에 아직도 간지럽니?(의역)
Ab zum Arzt: 당장 병원으로.
2)
소파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 영화는 이들에게 메인은 아니다.
Wenn der Film zur Nebensache wird.
=> 독일어 번역: 영화가 중요하지 않아질 때(직역) => 더 이상 영화를 보는 게 아닐 때(의역)
Benutzt Kondome: 콘돔을 써라.
3) 두 남자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섹스를 즐기고 있다. 배경을 보아하니 집인 것 같고 그 옆에는 콘돔 껍질이 까져 있다. 콘돔을 사용하는 게 아주 간단하며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Erstaunlich Einfach
=> 독일어 번역: 놀라울 정도로 간단한(직역)
=> (콘돔 쓰는 거) 진짜 간단해(의역)
Benutzt Kondome: 콘돔을 써라.
심지어 이번에는 남자 둘이 사랑하는 모습이다.
이제는 적응이 됐고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걷거나 팔짱 끼고 가는 모습이.
베를린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1년 넘게 살았던 집은 게이들이 많은 지역에 위치해 있기도 했고. (여자인 나는 치안의 관점에서 오히려 더 안전하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아직도 게이가 자신의 성정체성 자체를 당당히 공개하지도 못하는 분위기인데 베를린에서는 콘돔을 쓰라고 말하는 걸 넘어서 동성연애에서도 콘돔 사용을 잊지 말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Heiße Nacht? Benutzt Kondome.
=> 독일어 번역: 뜨밤? 콘돔 써. (의역)
처음에 이런 광고들을 접했을 때는 충격, 그 후에는 인지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 보았다. 한국의 성교육의 현주소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우선 내 세대에는 "섹스, 성, 성기에 대한 주제"로 대화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부모님께 성교육을 받은 기억은 (내가 잊은 게 아닌 이상) 없다.
학교에는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받았던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안 난다.(내가 딴 짓을 한 건가-_-)
혼전에 성관계를 했을 때를 전제로 하여 '콘돔을 사용하는 방법'과 같은 실제적인 내용을 교육 받았던 적은 없다.
요즘 N번방, 섹스 비디오 문제 등을 통해 성에 대해서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비단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성에 대한 궁금증을 올바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나 교육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으로 "안돼 안돼. 아직 어려서 몰라도 돼. 나중에 다 알게 돼" 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배워 알고 있어야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에이즈 예방하거나 돕는 독일 단체의 페이지에서 캡쳐를 해 온 것이다.
Let's talk about Sex. 섹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는 것.
그림은 남녀가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기 싫어) 키스를 하다가 둘 중의 한 명의 집으로 가려는 상황.
Zu dir ? Oder zu mir?
=> 독일어 번역: 너네 집으로? 아니면 우리 집으로?(직역)
너네 집 갈까? 우리 집 갈래?(의역)
Benutzt Kondome: 콘돔 써.
한국의 무조건 '쉬쉬하는 성교육 방식'이 절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걸 사회적으로 인식해야 할 때가 지났다.
그렇다고 독일의 성교육 방식은 무조건 옳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성과 섹스에 대한 궁금증마저 외면하고 금기시하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베를린에서의 공공 장소 광고판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참고로 본글 발행 전 키워드 설정을 3개까지 할 수 있는데 베를린, 독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섹스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섹스, sex, 성, 콘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키워드를 치면 그 키워드가 뜨고 그걸 선택해야 하는데 섹스, sex, 성, 콘돔 이 4개의 단어 중 어떠한 단어도 키워드로 제시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에서 이런 주제는 퍼블릭하게 논의될 내용이 아닌가 보다.
가시 돋은 채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서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층을 차지하고 있는 생리적 욕구인 식욕, 배설욕, 성욕 중에서 이걸 숨긴다면 밥은 하루에 3번이나 어째 먹으며 화장실은 부끄러워서 어찌 가나 싶다. 2020.05.23.(토) 오후 5시 3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