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얼른 어른이 되면 좋겠다."
꿈나라에 갈 시간이 가까워진 어둑한 저녁 엄마 아빠가 한창 수면 분위기를 만드는 집안과 달리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언니 오빠들이 부러웠던 딸내미가 푸념 섞인 말을 내뱉는다. 엄마, 아빠의 특히 아빠의 잔소리가 심해진 요즘 딸내미는 종종 어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왜 어른이 되고 싶은데?"
"어른이 되면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딸내미의 눈에 비치는 엄마, 아빠는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는 자기와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 사는 존재였나 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면 나도 늘 어른이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딸내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른이 되면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고,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니고,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희망사항은 희망사항일 뿐.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나름의 고충이,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의 고충이 있다. 어린 시절 상상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진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것. 특히나 부모가 되고 난 후에는 책임의 무게가 몇 배는 더 무거워진 것 같다.
책임의 무게는 크지만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난 후 좋은 점도 그만큼 큰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육아 동지로서 아이들과 내내 지지고 볶다가 느지막한 저녁 함께 책을 읽으며 와인잔을 기울일 수 있는 아내가 있다는 점. 날이면 날마다 TV 시트콤은 저리 가라 수준의 재미있는 일상을 만들어주는 딸내미와 아들내미의 재롱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흐릿한 초점을 점점 명료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모두가 좋은 점이다.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몰랐을 좋은 점이자 행복이다.
어른이 되면 좋은 점들이 참 많다만. 욕심 같아서는 딸내미가 천천히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도 싫지만, 지금 예쁘고 귀여운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