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25. 육아일기
평일이었지만 여느 주말 같은 하루였다. 아내가 출근을 하지 않은 덕분이다.
날씨가 어제만큼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집에만 있기는 아쉬웠고, 매번 찾았던 우리 가족의 '산스장' 국사봉도 슬슬 지겨워져 오랜만에 실레 이야기 길을 걸을 생각으로 부랴부랴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붐비는 김유정 문학촌, 오늘은 평일이라 그런지 우리가 찾을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이게 웬 횡재냐 하며 아이와 함께 우리 부부가 자주 찾던 추억 속의, 그리고 아직 행복의 현재 진행형인 익숙하다 못해 정겨운 길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겨울을 맞아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낸 나무,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비둘기 한 쌍, 비닐하우스 건너 비탈에서 두리번두리번거리는 닭 구경을 하며 자연의 정취를 느꼈다. 해솔이도 매번 그림책 속에서만 보던 닭이 눈을 껌뻑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신기한지 닭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겨울이라 휑하게 서 있는 원두막을 지나 금병산 가는 길과 실레 이야기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에 도달했다. 아이, 아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적해서 좋은 실레 이야기 길을 걸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는데 때 아닌 복병이 등장했다.
우리가 걷고자 하는 구간의 통행이 제한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지난번 방문 때에도 통행 제한으로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었는데 미리 통행 제한 기간을 확인하지 않고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이 화근이었다. 오늘의 실레 이야기길 두 번째 도전은 실패로 결론지어졌지만, 그대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구간 폐쇄가 시작되는 지점까지만 걷고 김유정 문학촌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연애 시절부터 여러 번 김유정 문학촌을 찾았지만 이곳에 돗자리를 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황금빛 잔디 위에 작은 돗자리를 깔고 아이가 마음껏 다니도록 등산 캐리어에서 꺼내 주었다. 집과 다른 바깥 풍경이 어색한지 돗자리를 잘 벗어나지 못하던 아이는 돗자리 가장자리 인근을 기어 다니며 낯선 풍경을 즐겼다. 회색빛 가득한 아파트 건물 속 우레탄이 깔린 인공미 가득한 놀이터가 익숙한, 새로운 자연 속 풍경을 어색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밖에서 오래 놀기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였기에 더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집으로 아쉬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계획했던 실레 이야기길 걷기에도 실패했고, 우리 가족밖에 없었던 황금빛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했지만 아이는 신선한 바깥공기를 쐬고 온 것이 기분이 좋았는지 오늘따라 스스로 일어서서 걸으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다. 아직 제대로 서는 것도, 걷는 것도 부자연스럽지만 하루가 다르게 부쩍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조급함을 이겨내는 최고의 약은 믿고 기다리는 것뿐인듯하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엄마 아빠 마음처럼 자신 있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드는 조급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 가족이 마스크에 가려졌던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이곳을 다시 찾아 오늘의 추억을 떠올려보면서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날이 반드시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