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19. 육아일기
오늘은 몇 주 전부터 계획해오던 거사를 실현하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우리 부부의 거창한 계획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그 어느 날보다 계획적으로 육아에 임했다.
오늘 새벽에도 4시 50분, 이른 시간에 일찍 일어난 해솔이가 재우기 당번이었던 엄마를 한 시간 동안 못살게 군 덕분에 아내가 비몽사몽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든 일 등 소소한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오전 일정을 마치고 아이의 첫 낮잠을 재울 수 있었다.
해솔이가 잠에서 깨기가 무섭게 어젯밤에 만들어 둔 닭 윙봉 구이, 갖가지 아이의 눈길을 끄는 '까까'류와 아기띠, 기저귀, 물티슈, 물통 등 군장(?)을 꾸려 몇 주 전부터 우리 부부가 노래를 불러왔던, 꿈에서 그리던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우리 가족이 찾은 경양식 레스토랑 '함지'는 춘천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크고 작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만한 오래되고 친숙한 곳이다.
어렸을 적 춘천에 살고 계신 이모 댁에 놀러 왔을 때면 늘 한 번씩 찾았던 오래된 레스토랑, 아내가 어렸을 적 가족들과 함께 외식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던 곳, 아내와 결혼하기 전 양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고, 해솔이가 세상 구경을 하기 전 아내와 찾아 오붓한 저녁식사를 즐기기도 했던 곳이라 우리 부부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의 장소인 이곳을 딸아이와 함께 방문하게 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평일 점심시간, 식당 근처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관공서들의 점심시간과 겹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새로운 환경이 신기했는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이런저런 요구 사항이 많은 까다로운 딸아이 덕분에 맛나게 차려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담소가 오가는 오붓함, 여유로운 칼질에서 나오는 품격과는 거리가 먼 어수선한 식사였지만 아빠 엄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오래된 식당에서 우리 세 식구의 소중한 과거의 추억,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소중한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친 후 행복했던 기억, 작은 동산처럼 솟아오른 배와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고 아이와 함께 담작은도서관으로 향했다. 담작은도서관은 효자동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으로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독서 환경, 다채로운 독서 관련 프로그램이 잘 마련되어 있는 곳이다. 지난 학교에 근무할 때 학급 아이들과 함께 찾아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소소한 추억이 있는 곳, 딸아이와 함께 아빠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곳을 찾게 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좁은 집에서 한정된 그림책들만 보며 지내던 아이는 작지만 알찬 도서관에 가득한 갖가지 그림책, 헝겊책들을 보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양한 그림책을 뽑아 엄마, 아빠에게 번갈아 건네며 읽어달라고 하더니 성에 안 차는지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책장을 넘기며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아이의 시선에서는 처음 방문해보는 책이 가득한 도서관(이전에 춘천 시립도서관 내 장난감 도서관은 방문했던 적이 있다)에서 만난 다양한 책들이 방대하고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마치 우리 부부가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별마루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을 때처럼.
아이는 특히 도서관 3층에 마련되어 있는, 창밖을 보면서 폭신한 매트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매우 좋아했다. 폭신폭신한 매트 구조물 위에서 몸을 콩콩 튀기며 좋아하기도 했지만, 창밖에 펼쳐진 나뭇가지, 각양각색의 주택들이 자아내는 한 폭의 풍경을 보며 감탄 비슷한 옹알이를 연신 해 대었다. 회색빛 가득한 아파트 숲에 갇혀 창밖으로 보이는 무채색의 삭막한 풍경만 바라보다 햇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매 순간 변하는 나뭇가지, 나무 계단 구조물, 주변을 가득 채운 오래된 주택가가 자아내는 살아 움직이는 풍경을 본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연 속에서 한창 자유롭게 뛰어놀아야 할 아이, 오늘 아빠, 엄마와 함께 한 오붓한 외식과 도서관 체험, 그리고 짧은 드라이브 모두 마땅히 누려야 할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야속한 코로나19는 이를 큰 용기를 내야 경험할 수 있는 체험으로 바꿔버렸다. 우리가 누려야 할 일상, 잠시 잊고 있었던 소소한 행복을 맛보았던 오늘의 경험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님을 언제쯤 우리 아이가 느낄 수 있을까?
다가오는 올봄은 그 어느 때보다 춥고 삭막했던 이번 겨울에 비례하여 따스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