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추억 속으로 매장을 옮깁니다
아내, 아이와 함께 요즘 들어 우리 가족의 유일한 운동인 집 앞 국사동 산책을 마치고 홈플러스를 찾았다. 한창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 14개월 된 딸아이 해솔이의 먹거리,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다 써버린 생필품 등은 지하 2층 매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발길이 지하 1층으로 향했다. 근래 들어 다시 쌀쌀해진 날씨와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온 가족이 함께 나올 일이 드물었기에 간만의 외출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탓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지하 1층에서 늘 우리를 반겨주던 아동복 가게, 형형 색색의 아기자기한 옷들이 진열되어 있어야 할 곳에 낯선 이불들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간판이 있어야 할 곳에 엉뚱한 세일 광고 전단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점포 문을 닫은 모양이다. 얼마 전 온 가족이 함께 찾아 울고 불고 하는 해솔이를 달래며 겨울철을 따뜻하게 보낼 두툼한 바지와 앙증맞은 생애 첫 신발을 샀던 곳. 아이는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진땀을 뺐던 그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내와 미소 짓곤 했던 추억의 장소 하나가 우리의 기억 속으로 매장을 옮겼다.
지하 1층 매장을 크게 돌며 카운터가 비어있는 여행사 부스를 지나 한 한식 뷔페 레스토랑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여느 때처럼 오늘 새롭게 나온 메뉴는 어떤 것들이 있나 아내와 함께 반짝이는 눈으로 광고판을 둘러보던 찰나 낯선 안내문 하나가 보였다.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문, 평소 저녁이면 많은 가족단위 손님들로 북적거렸던 곳이라 코로나 19의 힘든 위기를 잘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건만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 앞에 버틸 장사(壯士)는 없는 모양이다. 믿기지 않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면서 아내와의 연애시절, 해솔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 신혼을 만끽하던 시절, 그리고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세 식구가 함께 했던 오붓한 첫 외식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주 찾은 곳은 아니지만 틈틈이 소환되어 우리 가족의 추억 퍼즐의 작은 조각을 이루던 특별한 기억이 있는 곳, 이제 이번 주가 지나면 영영 이곳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렵사리 발을 떼어 지하 2층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건만 머릿속은 지하 1층 매장에 가 있었다. '오늘 저녁은 계획에 없던 외식을 해야 하는 것인가?', '최근 배달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시켜먹어서 오늘 저녁은 꼭 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는데…', '갑작스러운 외식을 하기엔 산에 다녀와서 몰골도 누추하고 무엇보다 아이 저녁식사를 위한 기본적인 도구들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아이와 그곳에서 즐길 마지막 만찬이라는 생각에 큰 결심을 하고 서둘러 쇼핑을 마친 후 다시 지하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 메뉴라고는 딱히 없는, 늘 먹었던 익숙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지만 아이와 오랜만에 찾은 식당은 오늘따라 새롭게 느껴졌다.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 해솔이가 간식과 쪽쪽이(공갈 젖꼭지)를 찾으며 시도 때도 없이 칭얼거리는 통에 음식이 소화될 겨를도 없이 입속에 주워 담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거나 소리를 지를 때마다 주위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먹은 거라고는 눈칫밥 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나와 아내의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첫날에 비하면 의젓하게 의자에 앉아 엄마가 음식을 담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며 놀이방에 있는 토끼 그림을 보며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몇 개월 새에 참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는 엄마 아빠가 음식을 먹는 모습만 보다가 오늘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 즐거웠는지, 아이는 분홍빛 후드티를 갖가지 음식 무늬로 채우면서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나와 아내도 아이가 먹으면 안 될 음식을 먹을까, 행여나 그릇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식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번 방문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여유롭고 근사한 저녁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하고 난 후에는 한 구석에 마련된 작은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볼 풀장 헤엄도 치며 웃음꽃을 피웠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방구석 놀이, 그림책 읽기, 국사봉 산책 등의 여가 활동이 세상의 모든 여가활동이라 여겼을 코로나 19의 불행한 시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해솔이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자연별곡'에서 즐긴 우리 가족의 오붓한 저녁 만찬, 웃음꽃 가득했던 놀이 시간은 이제 문을 닫는 가게와 함께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판데믹 아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물적, 심적 어려움을 가족 나들이를 통해 피부로 느꼈던 하루, 그래도 힘든 가운데서도 소중한 추억의 조각 하나를 얻은 것 같아 작은 위안이 된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이 하나둘씩 말 그대로 진짜 '추억 속의 장소'가 되어 버렸지만, 이 곳들을 지나다 보면 잠시 발걸음을 멈춰 소중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영업을 종료합니다, 대신 우리 가족의 영원한 추억 속으로 매장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