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꿀잠 잘 줄 아는구나!

2021. 3. 4. 육아일기

by 이정원

해솔이가 두 시와 네 시, 새벽에 두 차례나 깨어 목놓아 울기도 하고, 하소연하듯 옹알이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바람에 자는 둥 마는 둥 힘겨운 시간을 보낸 지난밤 덕분에 오늘은 좀비와 같이 하루를 시작하였다.

평소 같으면 아내의 출근 시간 전까지 부지런히 움직였을 아침 시간,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며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묘한 기분으로 멍하게 있다가 아침 먹으러 일어나라는 아내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지난밤 함께 산전수전을 겪은 따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태연하게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을 먹으며 아빠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오랜만에 아침잠을 잔 덕분인지 오전에는 해솔이와 함께 동화책도 읽고 장난감도 갖고 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만 크나큰 행복 속에 작은 먹구름이 있었다면, 어제 아이의 밤잠이 부족했기에 낮잠을 충분하게 재워야 한다는 부담에 평소보다 일찍 낮잠 재우기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아기 띠도 싫다, 업어도 싫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자장노래도 불러보고, 달래기도 해 보고, 우리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제일 지루할 것 같은 동화책을 읽어주어도 싫다는 기색 가득 투정을 부리는 통에 결국 포기하고 산책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계획은 약국에 들러 아이의 철분제를 사고, 스타벅스를 경유하여 텀블러에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채운 후 놀이터에 들러 아이와 즐겁게 뛰어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름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오전 산책의 계획은 아직도 눈에 푹 젖어 있는 놀이터를 마주하면서부터 산산이 깨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야 할 약국의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이 오후 2시부터 약국 문을 여는 '목요일'이란다. 그래도 기껏 유모차는 끌고 나왔는데 북유럽 감성 라테 파파 흉내는 내 보자는 심산으로 스타벅스에 가서 텀블러에 커피는 채워 나왔는데, 얼어 죽을 라테 파파… 입을 꽁꽁 싸매고 있던 마스크 탓에 커피는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얼음이 금속 재질의 텀블러에 부딪히는 경쾌한 '짤랑짤랑'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대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아내가 좋아하는 과자 가게에 가서 마카롱과 휘낭시에를 사갈 생각으로 꾸역꾸역 젖은 길을 걸어 과자점으로 들어갔다. 과자점의 직원분은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예쁘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고, 아이는 그런 칭찬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열장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맛스러운 휘낭시에와 다쿠아즈, 마카롱 등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아이에게도 아빠 엄마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맛 보여주고 싶지만 아직 너무 어린 탓에 늘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달랠 생각으로 아이 손에 쌀 과자를 하나 쥐여 주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과자를 먹고 있어서인지, 많은 '예쁜 과자'들 중에서 자기 몫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는지 집으로 가는 내내 유모차는 조용했다. 짤랑거리는 얼음 소리와 바퀴가 지나갈 때마다 부서지는 바스락거리는 눈 소리만이 유모차 바퀴가 굴러가고 있음을 알렸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려고 유모차 좌석을 바라봤는데, 아이는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들어 있었다. 평소와 달리 얌전하게 집에 잘 와줘서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려고 했었는데… 아빠도 모르는 사이에 꿈나라 여행을 떠난 아이는 유모차에서 꺼낼 때에도, 범퍼 침대에 내려놓을 때에도, 새빨간 신발을 벗겨낼 때에도 좀처럼 깰 생각을 안 했다.


아이는 무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명 꿀잠을 잤다. 등 센서, 청각이 예민해 낮이면 늘 깊이 잠들지 못해 아빠 엄마 속을 썩이던 너도 꿀잠이란 것을 잘 줄 아는구나! 기특한 생각과 함께 아이를 어떻게든지 재워보려고 시도했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아이는 속으로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했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며 안 그러겠다고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조급해질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날이나, 각종 SNS에 올라오는 주변 지인들의 아이들의 모습을 본 날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 아이와 비교하며 '어! 우리 아이는 잠을 길게 안 자는데?', '쟤는 우리 애보다 어린데 벌써 걸음마를 시작하네?' 등등의 생각을 하며 우리 아이가 늦는 것은 아닌지 걱정의 깊고 넓은 바닷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아내와 아이를 갖기 전 교육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이를 믿고 지지해 줄 이는 부모인 우리밖에 없다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과연 지금 아이의 수면, 발달을 비롯한 여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믿음을 갖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를 지지해 주고 있는가 생각하니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작은 부분에서도 불안하고 초조한데, 우리가 신혼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가 좀 더 커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과연 온갖 사교육과 잔소리 폭격의 강박, 유혹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꿀잠이란 것을 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해솔이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 역할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하루였다. 부모는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함과 더불어 어떠한 삶의 장면에서도 의연하게 생각하고 늘 아이를 믿고 기다리며 응원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직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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