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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22. 2021

비빌 언덕 없는 오롯한 육아

오롯하게 아이만 바라보기

  보살펴 주고 이끌어 주는 미더운 대상을 비빌 언덕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는 비빌 언덕이 가득한 영동 지방을 마다하고 춘천에 둥지를 들었고, 세상에 나온 해솔이와 함께 셋이 되었다. 


  아이의 두 돌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가 함께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면 '좌충우돌'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세상에서 배울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 둘이 어느 날 아빠, 엄마가 되어 겪은 수많은 일들. 아내는 출근하고, 아이는 어린이 집에 간 후 적막함이 흐르는 거실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컵에 담긴 커피의 향긋한 향을 느끼고 있노라면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내온 나날 속에서 때로는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비빌 언덕 없이 육아를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참 많았다. 그 흔한 엄마 찬스, 장모님 찬스 없이 출근한 아내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하루 종일 아이와 있는 시간은 물론 소중했지만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헤아리기 어려웠고, 시시각각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덕을 부리는 아이를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내와 단둘이 오붓하게 즐기는 외식과 여행도 우리 부부에게는 사치였다. 외식을 한번 하면 쉴 새 없이 음식을 헤집어놓고, 포크와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아이를 위해 치우고 새로운 식기류를 가져다 대령하기에 바빴다. 아이가 차를 오래 탈 수 있게 된 이후로 떠난 가족 여행은 순전히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여행이었으며, 숙소에서는 한창 맛난 야식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즐길만한 느지막한 저녁시간에는 불을 꺼놓고 일찍 잠든 아이가 깰세라 어둠 속에서 조마조마 숨죽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심해지고서는 그 어렵던 사치의 기회도 누리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아이가 잠들 시간을 기다리며 더디게 움직이는 시계를 수도 없이 쳐다보곤 했다. 가끔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두고 부부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지인 부부들의 소식을 접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육아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생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혹여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나와 아내 할 것 없이 우리의 정상적인 일상은 모두 일시정지가 되었다. 일상을 위해 잠시 아이를 맡겨둘 곳, 육아에 대한 진심 어린 조언을 구할 곳이 없어 아내와 함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면 비빌 언덕의 부재가 마음 깊이 느껴졌다. 만약 부모님들이 가까이 계셨다면 어떠했을까?


  그래도 돌이켜보면 비빌 언덕 없이 나와 아내가 온전히 육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부부의 삶에 있어 크나큰 행복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일상을 내려놓고 온전히 아이만 바라보고 육아를 하게 되면서 아이와도 많은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아내가 낯가림이 많이 심하지 않은 해솔이의 모습을 보며, 어디에서 들은 바로는 아빠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일에 묻혀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도 크나는 행운이다. 만약 믿는 구석, 비빌 언덕이 있었더라면 내가 선뜻 육아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며 아이에 대해,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고 내가 육아를 하기 전 아이와 함께 1년을 보내며 고군분투했을 아내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다. 


  도움이 필요할 때 쉽사리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도 어찌 보면 우리 부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다. 육아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 유튜브나 서적, TV 프로그램 등을 찾아보며 공부하게 되었고, 아내와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부모로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의 관심사를 좇았던 신혼 때보다 더더욱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비빌 언덕 없이 오롯한 육아를 하는 대가를 무수히 치르게 될 것은 분명하다만, 그때마다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육아 초반의 행복한 감정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늘 함께 해서 행복한 우리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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