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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an 16. 2023

책으로 공룡을 배웠더니

육아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은 날

해솔이는 공룡을 좋아한다. 비록 상어에 밀려 이인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해솔이의 옷장에는 꼬질꼬질한 공룡 내복이 상어 내복 못지않게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잘 개어져 있다.   

  

공룡 그림책을 읽다가 그랬는지, 스쳐 지나가는 TV 프로그램 속 공룡을 보습을 보았는지 해솔이는 공룡을 구경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매일 상어와 바닷속 친구들만 찾는 해솔이의 공룡 타령이 뜬금없게 느껴졌지만, 공룡을 보고 싶다는 해솔이를 위해 아빠의 방학 첫 주 주말의 행선지를 덕소 자연사박물관으로 정했다. 공룡 구경이 많이 기대되었는지 공룡 이야기가 처음 나왔던 월요일부터 해솔이의 공룡 타령이 이어졌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토요일 해솔이가 학수고대하던 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주차장에서부터 박물관 야외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공룡들을 보고 해솔이는 잔뜩 신나 했다. 매표를 마치고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해솔이는 처음 맞이한 스테고사우루스의 골격을 보며 한참을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입구부터 우리를 맞이한 스테고사우루스


해솔이가 좋아하는 바닷속 친구들이 가득했던 전시실

     

처음 찾은 전시실에서 다양한 바다생물 박제를 구경했다. 그림책에서 보던 여러 가지 상어들과 물고기, 갖가지 바다생물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며 연신 ‘우와’하며 탄성을 내뱉는 딸내미가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아직 오늘의 주인공인 공룡들을 만나기도 전에 이 정도로 즐거워하는 모습이라니… 오늘의 가족 나들이는 성공이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바닷속 친구들과 즐거웠던 만남을 뒤로하고 2층에 마련된 전시실로 향했다. 2층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거대한 매머드 골격 화석. 여기서부터 해솔이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공룡관 앞에 전시되어 있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대퇴골 화석 앞에 서서 사진을 찍자는 엄마 아빠의 갖은 회유도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거부했다.

     

해솔이 보다 한참 큰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대퇴골


드디어 공룡을 만날 시간. 아빠와 엄마는 잔뜩 기대했지만 해솔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공룡이 크고 무서웠는지 기다려왔던 공룡과의 만남이 싫은 눈치였다. 엄마 손을 잡고 공룡관으로 들어가다 눈앞에 보이는 공룡들의 거대한 크기와 정신을 쏙 빼놓는 울부짖는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가자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상어다' 용기를 내어 공룡들을 구경하는 해솔이

     

그 후로 공룡관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한참을 주변 전시관을 돌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던 해솔이. 나와 아내는 씩씩한 상어의 모습을 보여주자며 어르고 달래 해솔이를 다시 공룡관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상어다’를 크게 두 번 외치고 공룡들을 맞이한 해솔이. 표정은 잔뜩 겁먹었지만, 정신없이 움직이는 공룡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티라노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안킬로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프테라노돈’ 하고 이름을 불러주고는 서둘러 퇴장했다.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공룡들, 그리고 다양한 전시물들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해솔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싶었는지 자연사박물관을 벗어나고 싶은 눈치였다. 연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며 조르던 해솔이. 결국 그날의 기념품 공룡알 관찰 세트 한 개를 사서 점심을 먹으러 스타필드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의 박물관 나들이는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물을 채운 스테인리스 대야에 박물관에서 사 온 공룡알을 넣었다. 물속에 잠긴 알록달록한 공룡알들을 보며 오늘 보았던 공룡들을 한참 이야기하던 해솔이. 박물관에서 구경할 때는 잔뜩 겁먹은 울보 모습을 보이며 체면을 구겼지만, 씩씩하게 공룡을 구경했다는 사실이 꽤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 해솔이는 목욕하고 나서 늘 입겠다며 투정을 부리곤 하던 상어 내복을 옷장에 고이 모셔놓고 오랫동안 손길을 받지 못했던 공룡 내복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아빠 상어’, ‘엄마 상어’에게 굿 나이트 인사를 하는 ‘아기 상어’가 아닌 ‘아빠 티라노사우루스’와 ‘엄마 프테라노돈’에게 굿 나이트 인사를 하는 ‘파라사우롤로푸스’가 되어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해솔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해 왔다. 더불어 그림책으로도 세상의 삼라만상을 충분히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해솔이를 데리고 도서관을 찾거나 그림책을 읽어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 자연사박물관 체험을 통해 잔뜩 놀란 해솔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아무리 공룡 이름을 달달 외울 정도로 책 속 공룡과 친숙해졌다고 해도 실제로 경험한 공룡의 거대함과 우렁찬 울부짖음이 주는 생생한 감동과 같을 수 있을까.

      

이번 가족 여행을 통해 해솔이는 생생한 공룡의 세계를 살펴보았고, 나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 아이에게는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비록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실제로 경험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고 시간과 비용이 좀 들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경험시켜 줄 수 있는 부지런한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해솔이의 관심을 가득 받는 공룡 친구들

     

물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공룡을 구경하겠다며 아침 눈 뜨자마자 스테인리스 대야를 향해 달려가는 해솔이의 모습이 참 귀엽다. 이번 덕소 자연사박물관 체험은 해솔이에게도, 나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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