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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pr 19. 2023

짓눌린 마카롱

일상 속에서 쉽게 잊히는 감사의 마음을 떠올리기 위해 남기는 기록 

꽤 늦은 저녁시간. 집에만 있어 답답해하는 해솔이 기분도 풀어주고 내일 아침 일용할 양식도 사러 갈 겸 산책을 나갔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그네도 타고, 텅 비어있는 배드민턴장에서 한바탕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하며 첫 번째 미션을 마치고 두 번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단지 상가에 있는 빵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내가 특별히 주문한 샌드위치 외에 어떤 빵을 더 사가면 좋을까, 빵집에 들어가면 늘 해솔이를 유혹하는 갖가지 사탕과 초콜릿, 젤리, 음료군단의 손길을 어떻게 뿌리칠까 고민하는 사이 빵집에 다다랐고,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생각에 출입문 쪽으로 향했는데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올 초까지 함께 근무하시다 명예퇴직을 하신 교감선생님 내외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곳에 사시지만 퇴임을 하시고 난 후에 만나 뵙기는 처음이었고, 사부님을 뵌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교감선생님, 잘 지내시죠?"


"네, 잘 지내죠. 선생님 요즘에 육아하시느라 살이 많이 빠졌네요."


"공주님, 안녕? 나 기억나니?"


"..." 


아빠 따라 학교에 갔던 날, 교무실에 들를 때마다 과자 상자에서 맛있는 과자를 한 움큼 집에 딸내미 손에 쥐여주시던 교감선생님. 교감선생님께서는 나와 해솔이의 안부를 물으시더니 해솔이 빵을 사주시겠다며 방금 나오신 빵집으로 우리를 이끌고 다시 들어가셨다.


"우리 공주님, 뭐 먹고 싶니? 치즈케익 좋아하니? 선생님, 우리 공주님 치즈케익 먹나요?"


"나 마카롱 먹고 싶어요."


"우리 공주님 마카롱 먹고 싶었구나! 무슨 맛 먹고 싶니? 딸기 맛? 레몬 맛?"


"초콜릿 맛"


"먹고 싶은 맛 골라 보렴. 계산은 여기 할아버지가 해 주실 거야."


이게 꿈이에요 생시예요?


엄마 아빠랑 빵집을 찾을 때는 어림도 없는, 뜻밖의 횡재에 신난 딸내미는 평소에 잔뜩 눈독 들였던 알록달록 마카롱을 네 개나 골랐고, 아빠가 가방에 넣어주겠다는 것도 한사코 마다하고 작은 두 손으로 마카롱 네 개를 아슬아슬하게 들고 나왔다.


"교감선생님, 매번 해솔이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공주님 오랜만에 만나서 제가 반가운걸요. 건강하게 지내고 또 봐요!"


반가웠던 교감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빵집으로 들어가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플레인 베이글을 샀다.


"해솔아 마카롱 손에 쥐고 가면 위험할 것 같은데 아빠 가방에 넣을까?"


"싫어 내가 들고 갈 거야"


마카롱은 소중하니까 내가 직접 들고 갈 거예요


꾹 눌러서 들고 가면 마카롱이 못 생겨지는데


가벼운 발걸음, 얼굴에는 함박웃음


소중한 마카롱을 아빠가 뺏어먹을까 손에 꼭 쥐고 가겠다는 딸내미. 집에 도착하면 마카롱을 먹겠다느니, 오늘 밤에 아끼는 물건을 넣어두곤 하는 상어 가방에 넣고 같이 자겠다느니. 온통 마카롱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옮기는 해솔이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오는 내내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마카롱들


매장에서는 통통하고 귀여웠던 마카롱들. 집에 도착해서 식탁에 올려두니 잔뜩 짓눌린 못난이 마카롱들로 변해 있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느 마카롱들보다 예쁘고 특별한 마카롱이었다.


늘 교무실에서 반가운 얼굴로 따뜻하고 다정하게 맞이해 주시던 교감선생님. 한결 같이 자상하시고 배려심 가득하시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해솔이를 너무나 예뻐해 주시던 교감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추억의 한 조각이 될 순간들을 기억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자상한,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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