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해솔이가 일찍 잠든 덕분에 아내와 함께 TV를 보며 오붓한 일요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고 있던 채널에서 「환경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주제가 눈길을 끌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한 남매가 등장했다. 한창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가득한 꿈과 호기심을 안고 학교에 다닐 법한 어린아이들. 하지만 이 아이들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 남게 된 누나와 동생 단 둘이 서로를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아이들 스스로 생계유지를 해야 하기에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꿈을 키우는 것은 다른 세계의 삶이다.
두 남매는 마을에 있는 코발트 광산에서 일을 한다. 코발트는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비롯한 다양한 전자기기들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원료가 되는 광물인데,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양의 많은 부분이 남매가 살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의 광산에서 채굴된다고 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광산은 어떤 광산이든 간에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일하는 일터라고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어린 남매는 광산에서 일을 했다. 제대로 된 복장과 장비, 그리고 마스크나 장갑, 보안경 등 최소한의 안전 장비도 없이. 남매는 맨손, 맨발로 자루 속에 담긴 흙과 자갈, 그리고 다양한 불순물들이 섞인 혼합체를 물에 헹궈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은 코발트 조각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어 올렸다. 하루 12시간 넘게 위험한 환경 속에서 고된 일을 하고 남매가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나라 돈의 가치로 약 1,200원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나는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심심풀이로 산 복권으로 이 아이들의 약 3일 치 품삯에 해당하는 돈을 의미 없게 써 버렸다.
돈 되는 코발트 채굴을 위해 사람들이 몰리고 마을 곳곳이 광산으로 변모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망가졌고, 아이들을 코발트 채굴을 위해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발트를 채굴 후 제대로 여과되지 않은 폐수가 방출되어 마을 인근에 있는 강으로 흘러 들어가 마을 주변의 환경을 파괴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사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와 전자제품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의 작은 마을에 사는 이들은 삶의 터전도, 그들의 건강과 안전도 위협받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는 내내 편치 않았다.
프로그램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다 버리는 전자제품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우리가 버리는 전자제품이 잘 수거가 되어 재활용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실상은 그와 달랐다. 우리가 사용하다 버리는 전자제품의 상당량이 잘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재활용되지 않는 전자제품들의 행선지였다. 처치 곤란한 전자제품들은 한데 모여 머나먼 타국으로 건너갔다. 나이지리아로 건너간 전자제품의 상당량도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처치 곤란한 쓰레기로 전락했다. 높게 쌓인 전자제품의 쓰레기더미 속에서 작은 돈 되는 것이라고 건지기 위해 맨발로 위험천만한 걸음을 내딛는 이는 그 나라의 아이들이었다. 날카로운 금속과 플라스틱 더미 속을 장갑과 마스크도 없이 오가며 돈이 될만한 것을 찾는 아이들.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은 한창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학교에서 꿈을 키워야 할 시기에 거친 세상을 먼저 배워가고 있었다. 그들을 위한 세상이 아닌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이들의 안락함과 사치를 위한 삶.
오랜만에 여유롭게 본 TV시사 프로그램의 충격적인 장면 속에서 지금껏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를 위해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미 충분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멀쩡히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을 버린 적은 없었는지, 멀쩡히 잘 작동되는 제품을 두고 새로 나온 제품을 사고 싶다는 욕심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쓰레기를 만든 적은 없었는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에 담긴 이름 모를 아이들의 땀과 눈물 섞인 고통을 생각하면 한번 산 전자제품은 최대한 오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되고 난 후 아이들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프다. 최근 들어 재미있게 본 넷플릭스 드라마 속 동은(송혜교 분)이 재준(박성훈 분)에게 한 대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도 누군가의 딸이었어 재준아."
토요일 저녁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아이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게를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내미와 함께 미래를 살아갈 이들.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지구 환경이 황폐화된다면…. 해솔이가 갈등과 고통이 가득한 지구에서 살아가도록 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내 아이만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생각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앞으로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갈 지구가 다 함께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실천하고자 힘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