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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an 13. 2023

조부모의 손주 사랑은 일방통행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녀 내리사랑

아빠: 어, 난데. 별일 없지?   

  

나: 네, 별일 없죠.

      

아빠: 오늘 회의가 있어서 춘천에 왔는데, 회의가 10시 반이라…. 회의 끝나고 같이 올라오신 분들이랑 바로 내려갈 것 같아.      


나: 그래도 얼굴 잠깐 보고 가시죠? 거리가 먼 것도 아니고.

     

아빠: 오려면 지금 와라. 해솔이 데리고, 용돈 좀 주게.

      

나: 해솔이 좀 전에 어린이집 등원 했어요.

     

아빠: 그럼 올 필요 없다.

      

나: 그래도 보고 가시지…. 알겠어요, 회의 잘 마치시고 이따 내려가실 때 연락 주셔요.     


아빠: 오냐.      



해솔이 어린이집 등원을 막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춘천에 회의가 있어 올라오셨다는 아빠. 해솔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회의를 마치고 바로 내려가신다고 하셨다. 아빠와의 짧은 통화를 마치며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등원 전에 잠깐 명동에 들러 손녀를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삼척에서 춘천까지 먼 길을 오셨는데 해솔이가 없으면 올 필요가 없다니…라는 작은 섭섭함이 찰나의 간격을 두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해솔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늘 먼저 전화를 거셔서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는 닭살 돋는 멘트로 안부를 물으시던 아빠가 달라지셨다.

     

엄마의 손녀 사랑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도이다. 영상통화를 할 때 잠시라도 해솔이 얼굴이 안 보이면 해솔이가 어디 있냐고 찾으시는 엄마. 내가 하는 말은 마이동풍이고 해솔이의 목소리만 들리시는 게 틀림없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해솔이가 말을 하게 놔두지 왜 아빠가 자꾸 말을 하니?”라는 핀잔이다. 집으로 영상통화를 걸 때마다 엄마가 화면을 독차지하시는 바람에 곁에 계신 아빠의 존재를 잊을 때가 많다. 누가 보면 해솔이가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둘이 오붓한 이야기를 나누는 줄 알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내리사랑은 그야말로 조건이 없는 사랑이다. 한 트롯 가수의 노래 ‘무조건’의 가사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가 떠오르는 것처럼. 내가 경험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 베풀어주신 관심과 사랑은 나의 그것과 상관없이 항상 풍성했고 따뜻했다.


나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는 손주들의 재롱을 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6.25 전쟁에 참전하셔서 중공군에 포로로 끌려가셨다가 휴전 협정 이후 포로 교환으로 기적적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오신 할아버지.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는 늘 목발과 함께하셨다. 할아버지는 불편하진 몸에도 불구하고 마루에 있는 의자에 앉으셔 몇 시간이고 마당에서 뛰노는 손주들을 보시며 웃음 지으셨다. 어린 시절의 나와 동생, 그리고 사촌들은 할아버지가 주시는 꼬깃꼬깃하게 접힌 용돈 5천 원을 받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훌라후프도 열심히 돌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빠에게 엄하셨다던 할아버지는 아빠가 나를 혼내실 때면 내 편이 되어 나를 혼내는 아빠를 나무라셨다.  

    

할머니도 손주들을 참 예뻐해 주셨다. 큰어머니와 엄마, 작은어머니들께는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셨지만 손주들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은 새파란 동해 바다만큼이나 넓고 깊었다. 어린 시절에도 나와 동생을 늘 예뻐해 주셨고, 할머니 댁을 찾을 때마다 과줄에 식혜에 맛난 음식을 아낌없이 꺼내 주셨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남들 다 하는 군대 가는 일과 취직하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해 주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셨던 할머니. 나에게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 해솔이를 대하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묘하게 겹친다.

    

이제는 더 이상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뵈며 인자한 미소와 따스한 말씀을 들을 수 없지만, 해솔이를 사랑해 주시는,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아빠,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나를 사랑해 주시던 두 분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는 잘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느낀다.

     

이번 설에 고향을 찾으면 해솔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도록 허용해 준다고 부모님께 투덜대는 일은 잠시 접어두어야겠다. 어차피 내가 말씀드린다고 해서 손녀에 대한 두 분의 내리사랑의 기세가 꺾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들러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증손녀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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