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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Oct 18. 2023

둘째야, 반가워!

똑딱이가 세상에 나온 날

  유달리 길었던, 몇 시간 동안 온갖 장르의 꿈을 꾸느라 허우적거린 밤이 지나가고 10월 18일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둘째 똑딱이가 세상에 나오기로 한 날이다.


  첫째 등원은 어젯밤 동해에서 넘어오신 어머님께 부탁드리고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수술 전 유의사항을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서명해야 할 각종 서류에 서명을 한 후 수술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사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수술실 유리문이 열리고 아내가 손을 흔들며 들어가고, 나는 유리문 앞 보호자 대기실에 앉으니 2019년 눈이 내렸던 어느 겨울 그 앞에서 오매불망 기다렸던 기억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마치 머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기억하는 듯이.


  얼마 뒤 병실로 호출된 나는 수술 준비를 마친 아내의 얼굴을 보고, 수술에 대한 설명 및 주의점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을 듣고 난 후 간호사님을 따라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를 배웅했다. 그때부터 짧지만 길었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불투명한 유리문 속에서 아이 울음이 들려올 때마다 우리 아이 우는 소리인가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되고, 수술실에 들어간 아내는 지금 괜찮을까 하는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1분이 한 시간처럼, 1초가 1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유리문이 열리고 간호사님이 보호자인 나를 부르시더니 곧 아이가 나오는데 탯줄을 아빠가 직접 자를 것인지 여쭤보셨다. 첫째 출산 때는 막 시작되던 코로나19 때문이었는지 탯줄을 잘라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이 아니면 언제 우리 아이 탯줄을 잘라보나 싶어 직접 자르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내가 결정을 내렸지만 결정을 내린 것 같지 않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가 마치 나의 결정을 대신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 뒤 다시 유리문이 열리고 작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간호사님께서 나를 찾으셨다. 갓 엄마 뱃속에서 나와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손과 발이 잔뜩 부어 있는 작고 예쁜 아이가 내 아이라고 하셨다. 넋이 반쯤 나가 있는데 탯줄을 자르기 위한 절차를 안내해 주시는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갑을 끼고, 가위에 손을 넣고, 자르라고 하시는 부위를 잘랐다. 형언할 수 없는 손의 감촉, 그리고 그때의 느낌. 오랜 기다림 끝에 2023년 10월 18일 오전 11시 20분. 똑딱이가 세상에 나왔다.


반갑다 둘째야! 


  아이와의 잠깐의 만남, 그리고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기다림의 시간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아들내미 얼굴은 봤는데, 아직 아내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모든 수술 절차가 한 시간 정도면 끝난다고 하셨는데, 지금쯤이면 유리문 안에서 보호자인 나를 찾는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야 할 것 같은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속이 계속 타들어갔다. 신생아실 안에서 분명 우리 둘째가 우는 듯한 우렁찬 소리가 계속 들리고, 함께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님께서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하셨지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무사히 병실에 누워있는 아내의 상태를 먼저 확인해야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나의 오감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다행히 아내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함께 병실에서 회복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정신없는 수술실에서 제대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둘째와 인사도 나누었다.


  아내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 수술실 옆에 딸려 있던 병상에서 5층에 있는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아내와 함께 일주일을 보냈던 병실에는 아내를 위한 병상과 작은 밥상, 그리고 TV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는데, 이번에 일주일을 보낼 병실은 비록 간이침대이긴 하지만 보호자를 위한 침대도 있고, 책상이라고 하기에는 허접하지만 간단하게 앉아서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참 좋았다. 아내의 곁을 지키며 밤새 TV만 보고, 인터넷에서 서핑만 했던 지난 2019년 겨울과는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 동해 할머니와 함께 씩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딸내미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빠 엄마와 하루종일 떨어져서 보고 싶을 법도 한데 엄마의 회복과 아직 세상에 나온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 동생 때문에 떨어져 있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제법 누나 같다. 아내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집에 들러 꼭 안아줘야 할 것 같다. 어젯밤 다짐한 것처럼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베풀어줄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리라.


  아직 눈을 뜬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일 오후나 되어야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내일 면회 때는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꼭 보고 싶다. 그리고 내일은 좀 더 회복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첫째가 잠들기 전에 잠깐 집에 들러 딸내미도 꼭 안아주고 오고 싶다. 참 욕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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