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의 부녀 상봉
신생아실에 있는 둘째 면회를 마치고 병실로 올라와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집에서 딸내미를 돌보고 계신 어머님의 전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딸내미가 아빠랑 통화를 하고 싶어 한다며 딸내미를 바꿔주셨다.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도 많이 보고 싶어. 오늘 아빠랑 잘까?"
"응"
어제도 자러 방에 들어가서 아빠, 엄마가 보고 싶다며 동해 할머니를 두 시간 넘게 괴롭히다 겨우 잠들었다는 딸내미. 오늘은 딸내미 곁에서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아 어머님께 집으로 건너가겠다고, 오늘밤 아내를 부탁한다고 말씀드렸다. 평소에 느릿느릿하기로는 나무늘보 뺨칠 정도의 실력자이지만, 오늘은 군생활 시절 전투준비태세 마냥 급하게 짐을 싸고 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딸내미는 침대에 누워있다 말고 버선발로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아빠, 아기공룡 많이 보고 싶었어요?"
자기가 보고 싶다고 불러 놓고는 대뜸 아빠보고 많이 보고 싶었냐고 묻는 딸내미. 어쩜 하는 짓이 아빠를 쏙 빼닮았다. 이틀만의 부녀 상봉이 이루어지기 무섭게 어제오늘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쏟아내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아내 곁으로 가는 어머님께 배웅 인사를 하고 딸내미 방으로 손을 잡고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금방 잘 기세였던 딸내미는 생각처럼 잠이 잘 들지 않았다. 잠이 오는데도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억지로 잠을 쫓으려 하는 것 같았다. 고사리 손으로 아빠의 얼굴을 만졌다가, 아빠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었다가, 아빠의 팔을 쓰다듬다가 대뜸 목이 마르다며 물을 대령하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평소 같으면 밤에 물을 많이 마시면 이불에 지도를 그릴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따개비처럼 이불에 착 붙어 있을 테지만, 오늘은 딸내미에게 물도 두 번 가져다주고, 덤으로 자일리톨 캔디까지 몇 알 쥐여 주었다. 오늘은 아빠에게 무슨 요구를 하든 너그러이 다 들어 주리라.
아빠를 보고 싶었다는 말. 동생이 얼른 보고 싶다는 말. 할머니와 함께 쇼핑을 한 과자, 그리고 저녁에 직접 만든 초콜릿 과자를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말 등등. 작은 입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온갖 질문과 말들을 쏟아내고, '안아 주세요'라는 말을 수없이 하던 딸내미는 평소처럼 잠이 안 온다며 징징거리지도 않고 아빠 품에서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까지 약 한 시간 반의 긴 여정이 있었지만… 오늘의 여정은 힘들었다기보다는 이틀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보고 싶었던 딸내미를 품에 안으며 따뜻함을 느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까 저녁을 먹고 엄마와 통화를 할 때 딸내미를 좀 더 잘 보살펴 주라는 당부를 들었다. 세상 모든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이제는 동생이 생겨 많이 혼란스러워할 우리 아기공룡. 비록 아내 간병과 직장 일까지 함께 병행해야 하지만, 딸아이가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아빠로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바뀌게 하는 참 신기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