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파이스토스와 디오니소스

by 이정원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글을 읽기 시작한 딸내미는 요즘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에 푹 빠졌고, 나는 저녁 식사에 곁들여 마시는 한 잔 와인의 매력에 푹 빠졌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와 중첩되어 보이는 것 같은 딸내미. 평소 딸내미는 나더러 헤파이스토스를 닮았다고 했다. 딸내미 눈에는 자기보다 종이접기도 잘하고, 색칠도 꼼꼼하게 잘하고, 고장 난 것이 있으면 뚝딱뚝딱 잘 고치는 아빠가 헤파이스토스처럼 보였나 보다. 아니면 아빠가 추남으로 유명한 헤파이스토스처럼 못 생겼는지….


그런데 오늘은 그런 딸내미 눈에 아빠가 다른 신으로 보였나 보다.


"아빠는 매일 저녁마다 포도주를 마시니까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틀림없어."


재미있게 읽은 신화 속 인물의 특징을 척척 기억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딸내미가 평소에는 참 예뻐 보였는데. 관찰력 좋은 딸내미 눈에 디오니소스처럼 비친 아빠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빠가 저녁마다 얼마나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워했으면 술의 신으로 보였을까. 많이 민망했다.


언제는 하루에 한 잔 술은 건강에 좋다더니. 최근 미국에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잔 술도 몸에 해롭다고는 기사를 읽었던 게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건강에 좋지도 않고 딸내미에게 디오니소스로 불리는 영광(?)도 얻었으니 반주로 조금만 마셨다고는 하지만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습관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닮았으면 하는 아빠 엄마의 좋은 모습을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감추고 싶은 모습을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이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무섭기도 하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라는 말이 문득 실감 난다.


이왕이면 못생겨도 좋으니 아빠가 손재주 좋은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으로 딸내미랑 아들내미에게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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