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출근길 도로 정체를 뚫고 시간에 맞춰 연구원에 도착했다. 월요일은 9시 정시 출근의 날. 해솔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야 하고, 금요일과 더불어 시내 도로가 가장 혼잡한 날의, 올해보다 더 멀어진 출근길을 달려야 하기에 평소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늘은 어린이집 가는 길에 해솔이와 함께 '공룡 동요'를 흥얼거리지도 못했고, 어린이집에 도착해서도 화단의 꽃도 구경하고, 나무 위의 새도 구경할 새도 없이 출입문을 열고 들여보내기 바빴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기 위안을 삼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아 카카오톡을 확인하니, 아내가 보낸 사진과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사진 속 해솔이가 그린 그림의 주인공을 보니 동그란 안경을 쓴 게 틀림없는 내 모습이었다. 해솔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린 첫 그림. 사진 속에서나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미소가 참 어색한데, 그림 속의 나는 해맑은 얼굴로 딸기 밭에서 딸기를 따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행복한 감정도 잠시 미안한 감정과 부끄러운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해솔이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새롭게 한 주를 시작하며 신나게 아빠 그림을 그렸는데, 아빠는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지각할까 봐 아침부터 잔소리를 퍼붓고, 출근하는 내내 운전에만 몰두했으니…. 참 못난 아빠다.
동생 해담이가 집에 오고 나서 심술쟁이로 변신했던 해솔이. 늘 곁에서 잠자리를 지키던 아빠를 매몰차게 몰아내는가 하면, 동생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예쁘다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질투를 하는가 하면 쌀쌀맞은 말을 하던 해솔이가 요즘 들어 부쩍 아빠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추웠던 겨울이 물러가고 산과 들에 봄이 조금씩 찾아오는 것처럼. 올해 연구년을 맞아 업무나 시간 면에서는 여유로움을 누리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좀처럼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던, 해솔이와 해담이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주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해솔이와 함께한 하원길. 오랜만에 아빠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 들어온 해솔이는 집에 돌아와 손을 씻기가 무섭게 테이블에 앉아 종이접기 삼매경에 빠졌다. 한참을 뚝딱뚝딱 만들더니 다 만든 작품을 들고 와 자랑을 시작했다. 오늘 작품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한 '나비 책갈피'란다. 제법 정교한 손길, 장인 정신으로 만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나비 책갈피. 책 사이에 끼워 두었던 새 모양의 나무 책갈피를 뺀 빈자리에 살며시 꽂아 두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의 두께가 제법 두꺼워 부담감에 책에 손이 잘 안 갔는데, 딸내미의 예쁜 마음이 담긴 책갈피가 한 번이라도 더 세상 구경을 하고, 날갯짓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그리고 고사리 손으로 아빠에게 선물을 내밀던 방긋 웃던 해솔이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떠올리기 위해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찾아온 봄. 봄과 더불어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처럼 다시 돌아온 해솔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이번 봄은 여느 해 봄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