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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꺼진 모니터, 다시 밝힌 교실

— 잃어버린 감성, 다시 찾은 진정한 목소리 —

by 제이욥

유미 씨의 삶은 언제나 수만 명의 수강생을 위한 완벽한 강의 스크립트와 통계 그래프 속에 있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온라인 학원의 스타 강사였다. 그의 수업은 전국구로 송출되었고, 그녀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성적 향상을 넘어 인생이 바뀌었다고 극찬했다. 그는 학생들의 학습 패턴, 오답률 데이터, 집중도 그래프를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강의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그녀에게 교육이란 '최적화된 정보 전달'이자 '최고의 점수 획득 전략'이었다. 질문은 Q&A 게시판에, 감정적인 고민은 상담 AI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마주하기보다는, 데이터로 구현된 수십만 명의 학생들에게 효율적인 강의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의 모토는 "감동보다는 결과다"였다.


“여러분, 이 단원에서는 과거 출제 데이터를 보면 무조건 3문제 이상 나옵니다. 제가 제시하는 암기법으로 5초 안에 답을 찍으세요. 이 문제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강의에서 늘 단호하고 자신감 넘쳤다. 그녀의 명쾌한 해설과 전략적인 문제 풀이 덕분에, 그녀는 매년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의 이름 앞에는 '수능 만점 제조기', '일타 강사계의 전설'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존재했다. 아무리 화려한 강의실에서 수십만 명의 학생들에게 강의해도, 그들의 눈빛 속에서 진짜 감동을 느끼기 어려웠다. 고도로 편집된 영상, 완벽하게 조율된 제스처… 그것은 완벽했지만, 어딘가 차갑고 메말라 있었다. 칠판 앞에서 땀 흘리며 학생들의 눈을 마주하던 풋풋한 신입 교사 시절의 열정은 이미 오래전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교육의 본질일까? 완벽하게 연출된 이 강의 속에 살아있는 아이들의 꿈은 어디에 있지?"


그는 종종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을 찾기 전에 다음 시즌 강의 개편과 수많은 학부모들의 컨설팅 요청이 그를 채찍질했다. 그의 연구실 한구석에는 덮개에 덮인, 낡은 칠판 조각과 빛바랜 분필 통이 놓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미 씨에게 예상치 못한 비보가 전해졌다. 그녀의 모교인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가 심각한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폐교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을 이장님은 유미 씨가 '스타 강사'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특별한 재능 기부를 부탁했다. 마을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수업 프로그램을 운영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업무를 제쳐두고 서둘러 고향 마을로 향했다. 어릴 적, 그가 뛰어놀던 낡은 교실이 있는 외딴 마을이었다.


그는 텅 빈 교실에 들어섰다. 낡은 책걸상, 빛바랜 칠판, 창밖으로 보이는 정겨운 운동장… 그는 문득 어릴 적 이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장난치고,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교실은 고요한 적막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이 낡고 비효율적인 교실에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첨단 온라인 강의 시스템으로는 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의 머릿속은 완벽한 강의 계획과 온라인 커리큘럼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모든 대형 모니터와 최신 마이크 대신, 낡은 분필 한 자루와 손때 묻은 교과서를 들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첫 수업, 교실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들은 온라인 화면 속의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아니었다. 작은 눈망울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동시에 비쳤다. 유미는 익숙한 전략 문제집 대신, 국어 교과서를 펼쳤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졸거나 딴짓을 하는 아이, 창밖만 바라보는 아이… 그녀의 화려한 강의 스킬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얘들아, 이 문제는 수능에 자주 출제되는 유형이야. 집중해야 해!”


그녀는 익숙한 말투로 말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시큰둥했다. 그녀는 당황했다. 데이터로 예측 불가능한 아이들의 반응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녀의 효율적인 교육 시스템은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교실 뒤편 게시판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어 있던 낡은 스케치북을 발견했다. 스케치북 속에는 어릴 적 유미 자신의 그림과 친구들의 그림, 그리고 그 아래에 선생님의 따뜻한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유미의 꿈은 화가! 언제나 멋진 세상을 그려나가렴.' 그리고 그 옆에는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세상의 모든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스케치북은 유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완벽한 학습 데이터만 좇던 자신과는 달리, 그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꿈과 눈빛에 귀 기울였다. 낡은 스케치북에는 선생님의 삶의 철학과, 아이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것은 어떤 화려한 온라인 강의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교육의 아름다움이었다.


유미는 그날부터 교실에 온전히 몰두했다. 그는 더 이상 '성적 향상'이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다. 굳이 복잡한 공식 대신, 낡은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며 그들의 웃음소리에 귀 기울였다. 칠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손에 분필 가루가 묻고 목은 아팠지만, 그의 마음은 평화로웠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를 때마다, 그는 이전에 잊었던 어떤 감각들을 되찾는 듯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 이 모든 것이 도시의 화려한 스튜디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진짜 감각이었다.


아이들은 유미의 진심을 알아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이내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낡은 교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채워졌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유미는 각자의 빛깔로 빛나는 수많은 꿈들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뛰어난 그림 실력을, 어떤 아이는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또 어떤 아이는 엉뚱한 질문으로 유미를 놀라게 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달 후, 마을 이장님이 교실을 찾아왔다. 유미는 이장님에게 자신이 새롭게 만든 방과 후 프로그램 시안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화려한 PPT가 아니었다. 낡은 종이에 아이들의 그림과 함께, 각 아이의 강점과 잠재력을 발굴하는 교육 계획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페이지에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는 얼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장님은 조용히 사진을 보며 말했다.


“유미 선생님… 이 아이들의 눈빛이… 선생님 덕분에 다시 살아난 것 같아요. 우리 학교, 폐교 위기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미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얻었던 어떤 강의 수익보다도 값진 보상이었다.


"화려한 모니터 속 데이터와 완벽한 강의 스크립트가 자네를 성공으로 이끌 수는 있어도, 그것이 자네 마음을 채워줄 수는 없을 걸세. 때로는 모든 기술적인 완벽함을 내려놓고, 낡고 투박한 교실 속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귀 기울여 보게.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것 속에서, 자네가 잃어버렸던 진짜 교육의 의미, 그리고 세상의 미래를 밝히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유미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그의 온라인 강의 스튜디오는 여전히 최첨단 장비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컴퓨터 옆에는 낡은 분필 한 자루와 마을 아이들이 직접 그려준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의 강의는 이제 화려함과 효율성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꿈과 이야기가 담긴,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이들의 미래와 마음을 잇는' 교육자로 거듭났다. 꺼진 모니터 속에서 다시 밝혀진 작은 교실의 불빛이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가르쳐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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