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우리는 기도해서 괜찮아
믿음이 머무는 동네
해가 기울어가며 마을 전체가 천천히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따사롭던 햇살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고, 골목마다 어둠의 그림자가 길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따뜻했던 낮과 달리 저녁의 공기는 서늘하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마리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안을 성당 앞까지 데려다주고 있었다. 종일 낯선 마을을 걸으며 지친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뎅, 뎅, 뎅.
울림은 천천히 공기 속을 가르며 두 사람 곁까지 다가왔다. 그 소리는 무언가를 알리는 것도, 무언가를 끝내는 것도 아닌, 그저 이 작은 마을의 하루가 저물어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한 단순하고도 묵직한 소리였다.
마리엘은 종소리가 들려오자 성당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작은 성당의 돌담과 붉게 물든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그녀는 성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안에게 말했다.
“저기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중요한 곳이야.”
이안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성당을 바라보았다. 낮에도 보았던 낡고 작은 성당이었다. 높은 첨탑도 없고, 대리석으로 지어진 화려한 건물도 아니었다. 작은 종탑, 갈라진 석벽, 나무문, 그리고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노란 불빛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안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그 성당을 바라보았다. 작고 초라한데도, 그곳에서는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리엘은 그 성당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안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는 방금 전 말의 이유를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듯 다시 말했다.
“우리는 하느님께 매일 기도해. 그래서 괜찮아.”
마리엘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설명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삶의 아주 자연스러운 한 조각을 이야기하듯, 마치 해가 뜨면 아침이 오고, 해가 지면 밤이 오는 것처럼 단순하고 당연하게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이안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래서 괜찮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느님께 기도하면 마음이 괜찮아진다고?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그는 성당과 마리엘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숨을 삼켰다. 그가 침묵하자, 마리엘은 다시 성당을 가리키며 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침에도 하고, 저녁에도 하고… 늘 기도하면 마음이 따뜻해져.”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모자라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리엘에게 그건 그저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성당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고, 종소리에 맞춰 눈을 감았다.
이안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 말을 듣고 있는지, 왜 이곳에 와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눈앞에서 울리고 있는 종소리와 마리엘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 무언가는 가슴 깊은 곳에서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리엘은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괜찮아.”
그 말은 짧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이안의 가슴속으로 곧장 들어왔다. 그가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말보다 깊고 묵직하게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그는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성당을 바라보고 있는 마리엘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종소리는 멀리서 울리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의 가슴안에서는 더 크고 깊게 울리는 것만 같았다.
이안은 그 말에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문장들이 목구멍 끝에서 흩어져버렸다. 기도하면 괜찮다는 말, 하느님께 매일 기도한다는 말. 그 단순한 말들이 그의 가슴 어딘가에 자꾸만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벽이 그를 안에서부터 막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마리엘을 향해 눈길도 보내지 못하고 그저 숨을 조용히 삼켰다.
그 침묵을 마리엘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아주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이안을 나무라지도 않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마치 그녀는 이안이 말을 하지 않는 것 자체를 하나의 대답처럼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저 그 아이답게, 담담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넌 언제든 와.”
그 말은 이안에게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말이었다. 마리엘은 기다리지 않았다. 다시 돌아오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설명도 강요도 없었다. 그 말은 마치 오래 열어둔 문처럼, 그저 이안에게 열린 채로 남겨두는 인사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안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마침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무런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발걸음만 옮겼다.
뒤에서 마리엘의 발소리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보내주고 있을 것이라는 것만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어둑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안은 몇 걸음 가지도 못한 채 다시 멈춰 섰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당을 바라보았다. 작은 성당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다. 낡은 성당의 어두운 돌담 너머로 은은하게 번지는 그 불빛은 마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작았고, 연약했으며,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빛이었다. 그런데도 그 불빛은 어둠을 조금이나마 밀어내고 있었다. 꺼지지 않은 채, 조용히 깜박이고 있었다.
이안은 그 빛을 바라보았다. 가슴 어딘가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한 무언가가 다시 차올랐다. 그는 그 불빛이 왜 자꾸만 눈에 밟히는지 알지 못한 채, 한참을 멍하니 성당을 바라보았다.
마을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데도, 성당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그 작은 빛은 계속해서 그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렇게 서 있던 이안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뒤로 남긴 성당 불빛은 어느새 그의 등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고, 그 작은 빛은 어두운 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채 오래도록 그의 뒷모습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