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다시, 공허한 방 안에서
믿음이 머무는 동네
이안은 늦은 저녁,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닫을 때 들린 작고 밋밋한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너무나 익숙한 이 집이 그 순간 이상하게 낯설었다. 세제 냄새와 전자기기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탄내 비슷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그 공기는 원래 이렇게 차가웠던가. 그는 어색한 감정을 떨쳐버리려 애쓰며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바닥에 닿는 자신의 발소리가, 자꾸만 허공 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들릴까 조심한 것도 아니었다. 들을 사람 자체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실로 들어서자 이안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불 꺼진 소파는 그대로였고, 부엌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과 물컵 몇 개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컵 안에 고여 있던 물은 이미 식은 채 미동도 없이 흔들림 없었다. 그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 집안이 마치 멈춰버린 공간 같았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었지만, 이 공간에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모두 이 공간 안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는 침묵이 아니라,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 무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무관심이 벽처럼 느껴졌고, 그 벽 속에서 자신이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안은 부모님 방 앞에 섰다. 문틈 아래로 파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서 부모는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빛은 자신을 향한 빛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컴퓨터 화면을, 엄마는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서로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 방 안에 소리 없는 불빛만이 떠돌고 있다는 걸, 이안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문 너머로 손을 뻗으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이안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가 멈췄다.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리고,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자신이 손을 내민다고 해서 닿을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에린의 방 앞에 다다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덜 닫힌 문틈 사이로 동생의 방 안이 보였다. 에린은 침대에 누운 채 무선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한 채, 눈을 깜박이며 화면 속에 빠져 있었다. 무슨 영상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듣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형이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동생은 스크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안은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은 충동에 손을 들었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손을 내렸다. 문 앞에서 손을 뻗은 채 멈춰 있는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그 손끝에서부터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동생에게 손을 내밀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그가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도 그가 오늘 하루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부모도, 동생도. 누구도.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이 유령이 되어 이 집 안을 떠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집 안에서는, 모두가 유령이었다.
영혼이 없는 도시의 그늘 아래에서, 모두가 화면 속에 잠긴 채 살아가는 영혼 없는 사람들. 루멘시티의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이 집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가장된 어둠 그 자체였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이안은 불도 켜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눈을 감으려 해도 감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어둠 속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카르멘타운에서 들었던 그 성당의 종소리.
뎅.
그 소리와 동시에 심장이 조용히 두근거렸다.
뎅.
종소리와 심장의 박동이 하나로 겹쳐지기 시작했다.
뎅.
어디선가 그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심장은 그 소리에 맞춰 조용히 뛰고 있었다. 그는 가슴 한가운데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왜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이안은 그 소리에 잠긴 채 조용히 숨을 삼켰다. 온 세상이 어두웠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 작은 종소리가,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