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왜 그곳이 자꾸 생각날까
믿음이 머무는 동네
며칠이 지났다. 그러나 이안은 그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에조차 그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온기가 없었다. 부모는 여전히 같은 방 안에서 각자의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동생은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형태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벽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누구도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안은 그런 집 안 풍경을 바라보면서 문득 자신이 언제부터 그들과 함께 살아온 것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카르멘타운이 자꾸 떠올랐다. 처음엔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곳에서 들은 종소리, 마리엘이 내밀었던 손, 소박했던 식탁,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곳은 가난했다. 불편했다. 낡았고, 어두웠고, 모든 것이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도 이상했다. 그곳은 자신이 지금 이 도시에서 느끼는 공허함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다.
말없이 기도하던 사람들의 손, 서로를 바라보며 웃던 눈빛, 미사곡이 울려 퍼지던 성당 안의 침묵. 그 모든 것이 불편한 현실이 아니라, 그들만의 삶처럼 보였던 것이다.
반대로 루멘시티는 풍요로웠다. 어딜 가도 밝은 불빛과 음악, 커다란 전광판과 빛나는 건물들. 매일이 새로운 소비와 화려한 화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깨닫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은 점점 텅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바라보는 화면 속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동생의 이어폰 너머로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도 다시 카르멘타운으로 가는 건 두려웠다. 왜일까. 그곳은 힘들어 보였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편해 보였다. 차라리 이렇게, 말은 없지만 안정적인 루멘시티 안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그는 그 생각이 거짓이라는 걸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카르멘타운은 자신을 불편하게 했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이다.
이안은 매일 밤 창가에 앉아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거리, 멈추지 않는 음악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과 광고판에서 흘러나오는 빛. 그 빛 아래에 서 있는 자신은 누구인가. 이곳에서, 자신은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이것이 정말 ‘삶’인가. 이것이 정말 살아 있다는 것일까.
그는 답을 찾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그곳이 자꾸 생각나지? 분명 카르멘타운은 가난한 동네일 뿐인데, 루멘시티보다 훨씬 못 사는 동네인데, 그런데 왜 그곳이 더 사람 다운 곳처럼 느껴질까.'
답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질문만은 밤마다 자신을 찾아와 가슴 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