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발견한 글쓰기
단지 "부부싸움"이라고는 설명되어 지지 않는 남편의 분노, 길길이 날뜀, 장장 몇 시간까지 계속 되어지는 나를 짓누르고 굴복시키려고 하는 모든 과정.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이번에는 낱낱이 다큐멘트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했던 말들을 되도록 빼놓지 않고. 처음에 어떻게 사건이 시작되었는지 부터, 그 이후의 일까지도.
우선 남편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리고 상담가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리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리고..
혹여나 분노조절장애의 남편에게 억압받고 고통받는 분들을 위하여.
글을 쓰는데 총 열시간 이상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정말 나도 열받은 상태에서 썼지만, 일어났던 일 자체는 최대한 정확하게 하려고 했다.
쓰는 동안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힘들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empowerment 였다.
힘이 났다.
그가 했던 말들과 그 상황을 다시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는 것은 상처보다는 이해와 치유의 시작이었다.
글을 쓰고 중간 중간 몇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남편이 좀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엄마에게 보여줬다.
정말 남편을 이혼하고 매장할 의도가 아니면 온라인 상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잘 썼다고 했고, 정말 한번 대책을 강구해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글을 삭제하고 개인 컴퓨터로 옮겼다.
아이들에게 읽어줬다. 첫째 아들 외에는 그 현장에 없었던 나머지 아이들. 그저 "싸웠다" 라고만 첫째한테 들었다. 그 아이들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아이들은 의외로 덤덤했다. 평상시의 아빠 패턴을 아는 아이들.
남편에게 보냈다.
처음에는 읽지도 않고 여전히 자기를 화나게 한 내 탓이라며 길길이 뛰었지만, 몇일이 지나자 모두 인정하였다. 정말로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펜은 힘이 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암시하는 그런 뜻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자기의 관점으로만 왜곡하여 거짓을 진실로 만든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
이렇게 보일 수도 있음을 의식하는 나는, 쓰는 입장에서 최대한 떳떳하게 하려고 객관적으로 쓰고자 하였다.
그런데 정말...
펜은 힘이 있다
생각을 써냄으로서 나 자신에게 힘이 부어졌다.
분노와 슬픔을 승화할 수 있다.
분석도 가능해졌다.
더 나음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소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