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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욱 Aug 08. 2020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



 숫자로 확인하지 않아도 아프리카 대륙은 빈곤하다고 인식된다. 인식 한편엔 작열하는 태양, 드넓은 초원과 사막, 야생동물이 있고, 다른 편엔 기아로 배가 볼록한 아이, 아이를 안고 수심에 잠긴 부모가 있다. 이 인식을 심은 건 미디어다.


 미디어는 장애인 또한 쉬이 동정의 대상으로 비춘다. 비장애인은 이를 '장애 포르노'로 소비한 뒤 일상으로 돌아간다. 돌아간 자신의 세계에 사람으로서의 장애인은 없다. 아프리카 대륙에도 미디어가 보여 준 빈곤 너머 사람이 있다.



 1975년 부산 거제동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다리부터 세상으로 나오다가 얼마간 숨을 쉬지 못했고, 그 사이 뇌가 손상되었다. 아이는 제대로 몸을 가누거나 기지 못했다. 늦되다고 생각한 부모는 돌 즈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아이를 뇌성마비로 진단했고, 앞으로 아이가 걷기 위해선 목발이 필요했다.


 여러 군데 입학을 거절당하고 아이는 한 사립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몇 학부모가 자기 자녀를 장애인과 둘 수 없다며 반대했지만, 아이 담임은 "그러면 반 전체를 맡지 않겠다."라고 단호히 대처했다. 3학년이 된 아이가 물었다. "친구들이 저를 왜 이렇게 불편해할까요?"

 


 선생님이 대답했다.

 "장애인을 못 봐서 그렇다. 네 장애를 설명해주면 된다. 나도 장애를 학교에서 배우기만 했다. 장애인인 너를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고 기쁘다."


아이는 운이 좋았다.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이 많았다. 아이가 멋있을 순간을 포착해 사진 찍던 선생님이, 체육 시간에도 아이를 참여시키려 고민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아이가 자기 장애를,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자라는 데 뿌리가 되었다.


 2017년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교사 부담이 크다', '부모 욕심이다'라는 말로 장애 아동의 입학 포기를 요구했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장애 학생 두 명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장애 학생은 아직도 운에 기대 인권을 보장받고 있다.



 이 책엔 여러 요구가 담겨 있다. 이 요구는 호의를 바라는 게 아니다. 권리 주장이다. 권리는 여유가 있으면 보장하고 아니면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청하는 사람의 태도나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들어주거나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해 당연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대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권리는 기분이 나빠도, 여유가 없어도 보장해야 한다. 


  권리는 호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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