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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Nov 07. 2020

첫 번째 OPIc시험,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취업준비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직장일기02

OPIc 시험을 급하게 접수해서 준비했습니다. 시험일은 6월 중순이었고 혼자서 독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노트북을 수리하고, 시험 접수를 하고 나니 구활금이 빠듯하게 사용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결정적으로는 OPIc 시험을 치는데 학원에서 배울 내용이 어떤 것일지 대강 예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학생 개인 한 명 한 명을 코치 해주실 수 없으므로 큰 이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OPIc은 스터디를 하며 준비하거나, 실생활에서 주변 상황을 항상 영어로 묘사해보는 버릇이 있어야 고득점을 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렇지만 곧바로 후회했습니다. Eva의 질문들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약속은 언제였니?‘ ’네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은 누구니?‘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니?‘ ’가장 즐기는 취미가 무엇이니?‘ ’학교에서 팀 과제를 하면서 겪은 문제가 있었니? 어떻게 해결했니? ‘같은 질문들을 줬고, 저는 더듬더듬 문장을 이어나갔습니다. 급하게 준비를 하다 보니 저는 사실대로만 말할 수밖에 없었고, 말을 하다가 울고 녹음기를 끄고, 말을 하다가 또 울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마지막 약속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고, 다녀와서 크게 앓았던 것이 기억이 났고, 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습니다. 아무리 안 지 오래 된 사람이라도 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숨기고 싶습니다. 와 같은 말들을 영어로 표현하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음료와 케이크도 맛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이 찌는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지금은 살이 조금 쪄야 하는 상황인데도 달콤한 음료를 마시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여러 개의 층을 가진 카페에 가서 창가 자리에 앉아 가로수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지켜보는걸 좋아합니다. 길을 가며 핀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나무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보는 것을 보며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계절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와 같은 말을 영어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관사나 시제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알맞은 표현을 쓰고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서 녹음기로 녹음된 제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grammarly를이용해서 한 번 더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들으면서 영어를 너무 못하는 저를 보며 또 울었습니다. 예전부터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싶어 했습니다. 20대 초반에 돈을 2천만 원 정도 모아두면 6개월은 북미권에 어학연수를 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며 어학연수용 적금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돈도 꽤 모아두었습니다. 이제는 어학연수를 갈 의지도 남아있지 않은 저를 보며 울었습니다. 하루하루 일어나서 밥 먹고 집안일 하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때문입니다. 체력이 부족하거나 제가 신체적인 건강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냥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6월 중순에 면접일정이 잡혀버렸고 저는 시험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에 다시 접수하고 응시를 하러 갔습니다. IH/AL은 꿈도 꾸지 않았고 IM2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시험장에 갔습니다. 순간순간 지나가는 제 감정들은 다 배제 하고, 그 사람은 안경을 썼습니다. 50대 중반입니다. 뭐 이런 걸 말하기로 단단히 다짐했습니다.

응시장에 들어가 헤드셋을 끼고 시험을 치는데, 이관이 열렸습니다. 평소에는 어떻게 어떻게 해결을 했더라도 시험 도중에 고개를 숙일 수도 없고, Eva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제 목소리가 울려서 들리기 시작하는데 헤드셋을 착용한 채였으니,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결국엔 감독관에게 시험을 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린 후에 시험장에서 퇴실하였습니다. 진정제를 먹고,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약용량을 올려서 길에 주저앉아 울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치료받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귀가하는 지하철엔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중간에 한 번 내려 심호흡을 한 후 다음 열차를 다시 타고 내려 버스를 타고 심호흡을 하며 귀가하였습니다. 저의 어학 능력 시험은 이렇게 남들을 걱정시키고 중도 포기, 진정제 두 알과 함께 끝났습니다. 다시 쳐야 할 텐데요. 운전면허도 따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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