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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Nov 06. 2020

취직을 했는데, 나는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직장일기01


저는 상황에 따라 항상 음악을 틀어놓는 습관이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에 듣는 특정한 노래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상기시켜 주기도 하고, 일전에 있었던 상황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노래로 제 감각들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인데, 특히 외출할 때 큰 도움을 받습니다. 저에게 바깥이란 위험과 불안, 새로운 사람으로 가득 찬 곳이라 선뜻 나가기 힘이 드는데 귓가에 맴도는 음악으로 제 등을 살며시 떠밀어 주면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외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출을 준비하면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듣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는 길에는 그리그의 솔베이지 노래, 오제의 죽음을 듣습니다. 내 정신이 어디까지 황폐해져 있는지, 얼마나 허황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병원에 가서 설명하기 위해선 오제의 죽음 정도의 멜로디가 필요합니다.


취직하며 저에게 생길 가장 큰 변화는 병원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치료를 종료하러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타고 여느 때와 같이 오제의 죽음을 들으며 이 사실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온종일 일어나질 못해 무기력한 제 모습, 다음날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제 모습, 삶의 이유를 찾는 제 모습이 지나갔고, 이런 저를 지켜봐 준 건 조그마한 개인병원의 직원들이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했고 저의 가장 어두운 면을 보여준 곳이었습니다. 저의 약점을 저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왜곡된 생각을 가져 털어놓을 곳이 달리 없었다는 점에서 슬프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쩌다가 계속 병원에 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주 옛날부터 저에게 어둡게 드리워진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치료의 의지가 없었습니다. 치료하더라도 환경과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약물적인 치료를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장 집에는 사무관을 준비한다고 거짓말을 해둔 상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읽히지 않고 10시간 11시간씩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도 안 다녀, 직장도 안 다녀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은 제 생에 거의 처음이었고, 그 결과 임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초진 내원 당시 저의 주요한 문제는 ①기억력 저하(단기기억력) ②집중력 저하 ③의욕 상실 ④수면 과다였습니다. 치료하면서 약물에 적응하면서 다른 문제들이 생겨났고, 공황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컨디션이 괜찮아지고 난 뒤로도 주기적으로 follow up을 하기 위해 병원에 방문하며 약물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치료와 처방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 자신이 어떻게 했을 때 진료가 잘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임상 증상이 없어진다고, 약이 효과가 없다고 내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마무리 되지 않은 차트만이 남아버립니다. 정기적인 check up과 history의 수집, 예후 관찰 등이 잘 이루어져야 치료가 제대로 마무리되기 마련이기에, 최대한 협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직 문제는 남아있기 때문에, 해당 병원에서의 치료는 종료하더라도 계속해서 치료와 상담은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조금 다른 시각이 생겨나서 치료를 이어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상태가 부쩍 좋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컨디션으로 살아가는구나,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나에게 남은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있는 정도 아닐까?’ 하는 생각이 싹트고 있습니다.

즉, 제 상태를 공유할 수 있는 상대로 자본주의적인 계약에 불과하더라도 전문의 선생님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허황한 꿈을 좇으며 집 나간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오제나 무작정 사랑을 퍼주는 솔베이지 같은 사람이 제 인생에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다 아직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지난 일 년간 그 작은 병원에서 몸소 깨달았습니다. 타인을 거부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존중받고 싶어 하고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요.


마지막 내원 하는 날, 근처에서 도넛을 한가득 사서 드렸습니다. 저의 모순을 똑바로 바라보게 해주신 분들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제가 만들어 저를 가둔 감옥을 바라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았는데, 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거취를 옮기며 다른 곳에서 진료를 이어나가야 합니다. 보다 소규모 도시로 옮겨가게 되어 의료적인 선택권이 줄어들 것 같아 걱정됩니다. 모쪼록 평온한 날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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