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씨 Oct 22. 2024

서른두 살에 가 본 아이돌 콘서트

때는 바야흐로 2018년, 6년이라는 긴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 내가 드디어 사회에 나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였다. 동기 대부분이 남자였고, 그들은 대체 복무를 위해 떠났다. 별 다른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사회생활 이란 것은 퍽 고역스러웠다.


그저 무시나 괴롭힘 정도였으면 오히려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왕따를 시켰다면 나을 뻔했다. 사장님이 생각하는 '착하고 좋은 직원'은 아무리 때리고 욕을 해도 군말 없이 모든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나처럼 '못되고 약은 직원'으로 평가되는 사람이었다. 여자라서, 어려서 본인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니, 짜증을 내고 나를 잇속 챙기는 못된 사람이라 평가했다. 그 속에서 나는 버티기 어려웠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힘든 기색을 같은 과였던 남자친구에게 비쳤다가 어쩌다 소문이 났는지 나를 불러다 "내가 널 힘들게 했냐? 이 딴 게 힘들어?" 하며 다그쳤다. 나는 점점 더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세상의 색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일상은 그저 무채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문이 없어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저렴한 원룸 1층의 작은 커피숍에서, 다이어를 적으면서 조금씩 울다가 들었던 노래에 다이어리를 눈물로 푹 적셨다.



나에게로 와 너에게 기대 있던 나처럼 매 순간마다 커지는 기쁨과 내 옷자락에 머물 너의 눈물도 함께할 시간이 너무 고마워 난 너라면 다 괜찮으니까 나에게로 와


너의 내일이 되고 싶어서 오늘을 살아왔어. 너를 처음 본 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맘속에는 너만 있어. 뻔하디 뻔한 이 말을 내가 이제야 꺼내 보지만, 뻔하디 뻔한 이 말이 전해는 질까요? 고맙다 고맙다 또 고맙다 뿐이지만, 기다림까지 그리움까지 우리 추억까지 고맙다

단순하고 담백한 말들이 그토록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그때까지 나는 품격 있는 음악이라면서 마이너 한 곡들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날 이후로는 그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얼음 하나를 띄우고 노래를 듣는 것이 내 작은 위로가 되었다. 눈물을 훔치고 나오는 날도 많았다.


직장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와 몸의 병은 점점 더 깊어졌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지만, 6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도 헤어졌고, 몸무게는 36kg까지 줄어들었다. 생리는 열흘에 한 번씩 했고, 깊게 잠들지 못해 수면 유도제와 진정제, 안정제 같은 약을 들이부었다. 모두가 입원을 권했지만, 나는 입원마저 두려웠다. 만약 입원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 절망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다독여 준 것은 새로운 남자친구도, 직장 동료도, 오랜 친구들도, 가족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아이돌의 노래였다. 화면 속에서 춤추며 웃어주는 아이돌들. "네가 너무 좋아서 어떡하지?"라고 노래하던 그들의 모습은 내가 그동안 잃어버린 감정을 일깨워주었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을 보며 많이 울고, 많이 웃었다.


나는 사실 아이돌 산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내 자식이 저스틴 비버처럼 어린 나이에 특출 난 재능을 보인다면, 나도 어린 시절부터 일을 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은 소속사 관계자들이 미성년자들을 데려다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돌을 하고 싶다는 아이들도 정말 그게 꿈인지, 아니면 보이는 부분에 대한 환상인 건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아이돌을 보는 시선은 그들의 노래와 무대 앞에서 조금씩 바뀌었다 (아직도 아이돌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평균 연령대가 너무 낮다고는 생각한다. ㅠㅠ) 그들은 언제나 밝고 즐겁게 노래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처음 본 그 아이돌 그룹은 어느덧 데뷔 10년 차가 되었고, 나는 그 친구들이 불러준 노래로 마음의 기둥을 세웠다. 어설프고 무너질 순 있겠지만, 그래도 슬픔과 괴로움으로 꽉 찬 내 마음에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 것. 이름도 나이도 잘 몰랐던 친구들이 나에게 해준 일이었다.


얼마 전에 어렵사리 성공한 티켓팅에 콘서트를 다녀왔다. 꽤 가까운 곳에서 봤지만 그래도 TV에서 보던 멤버들은 작은 새끼손가락만 했다. 그들은 3시간이 넘게 노래를 불러주고, 함께 춤을 추었다. 나는 노래하고 춤추는 멤버들보다 그 넓은 관객석을 다 채운 사람들이 참 신기했다.

사람들은 콘서트가 저녁에 열림에도 불구하고, 아침 9~10시에 공연장에 와서 서로 '최애'멤버의 포토카드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즐거운 얼굴로 나에게 간식과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 플래카드를 나누어주었다. 편의점 플라스틱의자가 불편하다며 허리에 복대를 차고 온 사람도 있었다. 복대에는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모두 즐거워 보였다.  


세상에서 나를 잊고 싶었을 때, 그들의 노래와 웃음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그 거대한 공연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모든 것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각자의 이유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구나. 다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싶어 여기에 왔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나에게 아이돌이란, 그저 소속사의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작은 별님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지만, 나보다 어린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감동하고 있다. 언젠가 병원 외래진료 때 원장님이 나에게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대답을 하니, 더 많이 좋아하시라고 하셨다. 가까이 있는 가족보다, 멀리 있는 아이돌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하셨다.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