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일지 04

by 박모씨

심리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본래 7월 초에 시작하려고 했지만, 미뤄지다 이번 주에 처음 받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얻은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병원에 말씀을 드렸더니 몇 시간 가지고는 터무니없을 것이라고, 그래도 상담을 해주시는 분이랑 잘 맞는지 계속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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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직업인 분이십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셔야 하기에, 비교적으로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제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조금씩 했습니다. 아직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요. 바보같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10살 때부터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으며, 가정상황이 이랬다. 하고요.


일단은 제 자존감을 위해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의지가 대단한 것이라고요. 사실, 여태 죽고자 하는 의지가 치료를 받고자 하는 의지보다 크면 컸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큰데 저는 제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보다 저는 쉽게 저 자신을 해할 수 있습니다. 지식도 있고, 기술도 있습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생명의 힘이 강하다는 것도 알지만, 한 번 죽으면 끝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매일 창문 밑을 바라보면서 실천할 수 없는 저 자신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장점에 대해서 적어보자고 하셨습니다. 사실 얼마 없는 것 같았습니다만 몇 가지 적었습니다. 기억력이 좋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이것도 최근에야 가능해졌지만요) 속독할 수 있다. 이렇게 네 가지를요. 또 칭찬해주셨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왜 평범하고 행복하게 자라온 사람들을 보면 그게 느껴지는데, 나도 그러고 싶었다고,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고 그 결과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높은 경우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사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자존감 높고 자존심 낮은 그런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 2,30 대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단언컨대, 80% 이상이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높을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유혹을 받고, 충분히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고, 사회 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일들,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칭찬해주셨습니다. 한 번 더 의지력에 대해 칭찬해주셨습니다. 이것 또한 호주제가 폐지되는 것을 나라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시기 위해서 ‘가만히’ 있길 원하셨기 때문에 저는 ‘가만히’ 있었을 뿐입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꼭대기 층에 올라가 아래를 바라보면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자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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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시간씩 진행되는 3주간의 상담은 저의 생의 절반 이상이 되어버린 죽고자 했던 시간에 대한 자그마한 위로조차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못했고, 아무도 알지 못한 일을 단 3시간 만에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제 인생에 대해서 충고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인생에 정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충고라도, 방향 등이라도 켜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제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사실, 치료를 받는 게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우울증 환자가 약물치료 후 자살할 확률은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지 않았을 때보다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내가 해봤는데, 안돼.’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나에게 약물 혹은 입원치료를 받을 만큼의 정신, 신경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그만큼 노력했는데도 안된다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허무한 일일 것입니다. 치료를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의 반대는 ‘살자!’ 이런 말은 하등 쓸모가 없습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무섭고, 버거우므로 자살을 생각하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제가 치료를 받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우는 날이 적어졌어도 저의 주변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천륜이라는 족쇄는 그네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 발목을 조일 것이고, 그들과의 기억 때문에 그들이 세상에 없더라도 흉터가 남을 것입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없고, 뭔가 목표를 세울 마음이 없습니다. 또, 저의 과거는 이미 지나버린 일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을 것이고 제 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최근 어지럽고 숨쉬기 힘든 공황증세가 많이 호전되어서 진정제를 줄였습니다. 의존성이 있으니 줄이는 것이 맞습니다. 복용한 지 벌써 6개월가량 되어가니깐요. 며칠 동안이나 아주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나선 다른 사람들과 약속이 있어 억지로라도 힘을 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아 당장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으니까, 괜찮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병원에선 호전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혼자서 잠깐 이게 호전이 되는 병이 맞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로토닌 농도를 높인다고 해서 제 과거와 환경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힘을 내게 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요.


잠들기 전에 가끔 제 장례식을 상상해보곤 합니다. 죽은 뒤에 하루만 식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제 영정사진 옆에는 국화 말고 예쁜 꽃들을 꽂아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봄이라면 튤립이나 보라색 프리지어도 예쁠 것 같습니다. 아네모네도 색상을 맞춰서 장식하면 예쁠 것 같아요. 여름이라면 작약도 있고, 산호색 글라디올러스도 예쁠 것 같고, 색색깔 양귀비도 예쁠 것 같습니다. 거베라는 화환에 자주 쓰이니까 빼고요. 그러다가 와서 슬퍼해 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마음속으로 세어봅니다. 유서에 누구누구는 식에 들이지 말라고 적고 싶은데, 누가 있을지 생각하곤 합니다. 제 몸 위로 흙이 덮이고, 저는 한 줌 먼지가 되고, 그 위로 풀이자라고 꽃이 자라고 시간이 흐른 모습을 상상합니다. 되도록 예쁜 꽃이 피었으면 좋겠고, 나무는 수양버들처럼 큰 아름드리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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