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또 받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일지 05

by 박모씨

되도록 제 사생활에 대해 기재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만,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저의 생활과 제가 했던 생각들을 적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노출될 확률 또한 높습니다. 어쩔 수 없지만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 생각을 정리하고, 제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심리상담이나(2시간밖에 하지 않았지만)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언짢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어요?”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느꼈어요?” 라고 물어오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제 행동에 대해서 정당화해야만 할 것 같아서입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잘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두 번째 심리상담을 받았습니다. 정말 도움이 될까? 이 사람은 이 일을 한 지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오히려 다른 사람의 상황에 공감을 못 하는 사람이 이 일을 잘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정신적인 소모가 크니까요. 아예 ‘그건 네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잘 해낼 수 있는 직업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분이 질병에 대한 지식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상담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이 우울증 환자이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을 텐데, 의학적인 지식을 아예 갖추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우울증을 질환으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약물 복용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우울할 때 약을 한두 번 먹으면 나아지는 줄 알고 계시더군요.

병원에는 상담사가 약물복용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약 복용을 중지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계속 아끼는 게 좋진 않지만, 해봤자 쓸모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처음은 제 칭찬으로 시작했습니다. 우울하고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할 일들을 찾아서 차근차근히 해냈다고요.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말 해야 하는 일은 이생을 마감하는 것인데, 제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이 삶에서 제가 뭘 했다고 그러는가 싶습니다. ‘내가 했던 일들이 과연 살아오면서 내가 해야 했던 일이었나, 그냥 세월에 휩쓸려 한 일들이 아니었나.’ 에 대해서 고민하는 요즘인데, 해야 할 일들을 잘했다고 칭찬하시니, 저에게 그렇게까지 와 닿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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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시는 말씀은, 제가 자존심이 강하고 꼿꼿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일에 상처받을 일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에 이런 이런 일이 있었다. 이야기하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왜 이야기를 못 했어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다른 사람의 처지에 공감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은 알지만, 제가 했던 일들에 대해서 책망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자존감이 높았으면 그랬을 일은 적을 것이라고, 이렇게 충고를 들으면 더 나아질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너는 자존감이 낮은데 자존심만 세다.”라는 말은 그냥 사실인데 잘 받아들이면 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원래 조언과 충고는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게 정상인지, 여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없었던 자신감을 느끼고 싶지도 않고, 자존감을 높이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사랑받은 사람처럼 바르게 자라고자 노력한 것은, 자존심이 세서 없어 보이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단, 저 자신을 보여주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나 이거나 비슷하게 보이겠지만요.

항상 절제되고 하고 싶은걸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획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작은 것이라도 괜찮으니까 충동적으로 아무 일이나 한번 해보시고,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져보라고 하셨습니다. 혼자 어디라도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그런 이야기 하시면 저는 충동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참고로 우울증 환자에게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절대 금지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더 궁금하지 않습니다. 상담하고 나면 뭔가 이 무기력한 저 자신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더더욱 무기력해질 뿐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사실 제가 우울하고 화가 나서 우울증임을 자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울하고 화가 나는 제 상황은 항상 그래 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죽겠다고 결심한 지 15년이 더 지난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받는 상처는 그저 그렇습니다. 상처가 더 생기면 그냥 제가 더 숨 쉬고 살아있기 때문에 더 받는 상처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엄청난 무기력감에 시달리며 지냈습니다.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잤습니다. 내리 잔 게 아니라 5시간, 5시간씩 자는 바람에 무기력한 데다 피곤했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많이 나아지나 싶었습니다. 안정적으로 생활했고 규칙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따라 일어나는 게 힘들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BDZ 계열의 약물을 전부 뺐습니다. 진정제가 더 쳐지게 하는가, 싶어서요. 증세에 큰 차도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무기력할 때마다 어쩔줄을 몰라 냅다 달리기를 했습니다. 3Km씩, 5Km씩 숨이 벅차서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뛰었습니다. 덕분에 살이 더 빠져버렸습니다. ㅋㅋㅋ 몸무게는 같은데 운동을 죽으라 했더니 몸이 더 작아졌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뛰고 난 후면 각성 효과가 있어서 좀 괜찮아지는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무기력해서 문제지만요. 잿더미 같은 기분이 좀 사그라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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