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만났더니 우울증이 악화됐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치료일지06

by 박모씨

이번 글에는 정말 상태가 호전되었고, 건강을 되찾고 있으며, 체성분 검사 결과가 잘 나왔다는 이야기를 적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악화하면서 포스팅을 미루게 되었습니다. 진정제가 다시 추가되고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추석에 집에 다녀온 것이 큰 것 같습니다. 약을 숨겨가며 먹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약을 먹어도 혹시나 약 먹는 것이 들킬까 봐 밤늦게 2시가 되어서 먹었고, 아침 6시에 일어났습니다. 숨이 벅차게 뛰어도 답답한 것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제 컴퓨터 안에는 스프레드시트 파일 하나가 있습니다. 파일을 열면 시트는 세 개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 아빠, 엄마, 언니의 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열고정을 해두었습니다. 1열의 제목은 ‘정신병은 나에게 있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특히 가족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이제 저에게 질환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어서 만든 파일입니다. 그리고 타산지석 삼고 싶기도 해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 내가 상처받았으니까, 나는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요.

제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받았던 괄시가 아직 마음에 상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특히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더 그럴 거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을 친 딸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더욱이 본인은 15년이 넘게 무직인 상태로 있었으면서 할 말은 더욱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동을 하는 그 누구에게도 일이 천하다거나, 직업이 별로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한 노동인진 몰라도, 일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과 부딪혀 가며 생을 유지하는 것이 태어나서 성장하며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당신도 하지 못한 업적을, 뭔데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이것에 대해 언니와 엄마는, 아빠는 ‘그런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시한 적이 없다고요. 명절마다 친척들 집에 가서 이게 얼마니 저게 얼마니 하며 제가 하는 일들의 가격을 따지는 행위가 저를 무시하는 행위가 아니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의 가격을 말하면서 이 돈이 드는 게 맞는 거냐고 할 때,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저는 존중받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온갖 걸 따져대며’ ‘삐딱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집에서 일하러 가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제가 쉰 지 좀 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반기 공채가 시작되면서, 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알려주기 싫다.’ 고요.

원래 치르고 싶은 시험이 있었습니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그만뒀습니다. 6개월 정도 제가 모았던 돈 300만 원 정도를 들여 공부했습니다. 1차 시험을 치러보고, 공부하지 않았던 한 과목을 제외하면 통과였습니다. 이만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돈을 더 들일 수 없었습니다. 생업을 멈추고 공부에 쏟아부을 만한 돈은 없었거든요.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서 어쩌니.’라는 말과 ‘내년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한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3년을 생각했거든요. 아, 이제는 뭔가 뚝딱뚝딱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데,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시험을 포기하고 구직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도움이 되는 점은 없었습니다. 제가 면접 보러 가는 거 알면서도 전화를 해서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있었고, 다짜고짜 저의 집에 와봐야겠다며 오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모든 물건을 다 뒤져보고 일기장, 앨범까지 다 읽어보시기 때문에 저는 3박 4일 동안 집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갔습니다. 제발 오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어머 얘는 뭘 그렇게 숨기냐며 이상하다고 와봐야겠다며 오셨습니다. 산부인과 진료받은 걸 보시고 겁탈당했냐고 물어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마음 졸이느라 공황발작이 계속 왔습니다.


어쨌든, 구직하라고 하시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어서 잠자코 있었습니다. 공채 기간이 어쩌고, 지금 이런 시기고 어쩌고 말을 해서 기억 하고 저를 배려해 주실 분들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부친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임대주택에 청약이 당첨되었다. 10년 후에는 분양을 받아야 한다. 집이 큰 편이다. 그런데 10년 후에 그 집을 분양받을 능력이 없다. 그래도 엄마가 그렇게 고생했는데 좀 크고 새집, 좋은 집에 살게 해줘야겠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3,4년 후에는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겠다, 그런데 지금 돈이 이만큼 있는데, 이 돈으로는 이 주변의 빌라나 아파트에 갈 수 없으니, 돈을 모아와라. 그러니까 빨리 돈을 좀 벌 수 있는 데로 취직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중에 엄마 아빠가 죽고 나거든 그 집이랑 돈은 너희가 알아서 가지면 된다.

청약 당첨이나 이사 등등은 제가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노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를 제가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도 월세인데, 다른 더 비싼 월세 집으로 이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매가 사는 쪽으로 이사를 한다고 하셔서, 저는 당연히 함께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유인즉슨, 청약주택의 월세가 소득으로 판가름이 나는데, 자매의 소득이 더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걸 계약하는 날 분양사무소에 가서 물어볼 거라고 했습니다. 속이 터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는 날이었습니다.

내가 돈을 못 주는 것도 아니고, 내 면허로 지금 당장 은행에 가서 그 돈 다 대출받을 수 있으며 내가 이 정도 예상을 못 한 건 아닌데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는가. 엄마를 고생시킨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다. 내가 돈을 축내고 자라면서 엄마를 괴롭힌 거라면, 그냥 죽이지 그랬는가. 당신네 자식들은 고생을 안 하고 자랐는가? 이제 당신들이 나이를 먹으면, 지금 모아뒀다는 돈보다 돈이 더 들면 들지, 안 들진 않을 것인데, 무슨 자신감인지? 진정으로 나이가 많은 자매가 결혼하길 원한다면 집을 구해줘도 못할망정 돈을 모아내라고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내가 돈을 잘 벌길 원했다면 남의 직무에 그렇게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출가외인인 딸이라면서.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러니까 알아서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내버려뒀는데, 비싼 월세 집으로 이사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집은 괜찮았지만, 10년 뒤에 분양받을 돈은 없고, 없을 것 같으니까 일단 2,3년안에 집을 살 돈이 필요한데, 그네들은 모을 수 없으니 너에게 부탁을 해야겠으니까 빨리 일을해라. 그래서 빨리 나가서 돈을 벌어다가 좀 ‘달라’고 했고, 달라고 한 이유는 엄마가 본인한테 시집와서 너무 고생했으니까 조금이라도 좋은 집에다 살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있는 돈은 나중에 죽고 나면 둘이 알아서 나눠 가져라. 하신 거고요.

그리고 여기에 자매까지 합세해서 엄마·아빠가 너무 불쌍하고 다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사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좀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 집에서 이사를 가든 말든 상관없다,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 뻔뻔하다.’ 했더니 ‘엄마·아빠가 눈치 보면서 부탁할 그런 건 아니다.’라고 대답했고, 너는 돈 내라는 말이 그렇게 싫으냐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제 인내심이 터졌습니다. 돈 때문에 그런 게 아닌데, 내가 무슨 돈을 주기 싫어했다고, 그 돈 받고 싶었으면 부탁을 그렇게 하지 말던가 날 무시하지 말던가 싶었습니다. 집에서 하는 이야기는 항상 같았습니다. 언제 그렇게 무시했느냐고요. 몰라서 그러는 거지 뭘 무시했느냐고요.

마음속으로 항상 정신병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되뇌었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앞으로 연락하지 않겠다고 문자를 보낸 뒤 전부 차단했습니다. ㅋㅋ 전화번호를 바꾸려고 했는데, 공채 시즌이 끝날 때까진 그대로 놔두려고 합니다. 항상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돈을 주기 싫어하는 피해망상 불효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 공간에 저 혼자만 있는 지금이 행복하기도 합니다. 드디어, 다 떨쳐낸 것 같고 벗어난 것 같아서요.


제 이야기만 적어두어서 그렇지만, 정신병은 저에게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 제가 왜곡해서 듣고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런 병을 앓을 만큼 괴롭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고, 그 누가 얼마만큼의 잘못을 했는지 않았는지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속상하다 할 때 공감해주고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을 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속상한’ 부분들은 ‘정신병’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저는 이것들을 남들에게 선뜻 보여주거나 공유하기 힘듭니다. 그냥 직장 생활, 학교생활 하다가 힘든 부분이 있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어려운데, 이런 낭떠러지 같은 감정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저 혼자만 괴롭고 말면 될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별로 좋게 생각해보적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 조별 과제를 하면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분이었습니다. 제대로 연락도 안 되고, 할 일도 제대로 안 해오고, 그런 사람이요. SNS에 빠져 사는 분이었고, 거기에선 책임감도 없고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아 오는 모습은 쏙 빠지고 좋은 면과 자신이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글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자신은 활기차고 바른 사람이라는 글을 적는 그런 사람이요. (하긴 수업 빠질 땐 활기찬 분인 거 같긴 했습니다) 졸업 후 일을 하면서도 주변에서 일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순화한 표현 입니다) 이야기를 몇 번 들을 정도였는데, 곧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직장 내에서 자신이 따돌림을 당했고, 정신적인 손해를 입어서 자기가 병을 앓고 있다고 SNS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도 누가 잘못을 먼저 했는지 않았는지 따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괴롭다고 호소하는 쪽은 그분이니까요.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든 폭력이란 있어선 안 되는 부분이니까요. 이 이야기가 갑자기 나온 이유는 저와 가족들간의 관계도 멀리서 보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분이 부러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본인의 ‘조리 있는’ 생각을 다 말하는 분이니까요.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모두와 거리를 두고 생활합니다.


최근에 제가 응시하고자 했던 시험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날 진정제를 먹어도 공황발작에 시달렸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요.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돈 때문에 포기했다는 미련이 남았었나 봅니다. 심장이 조이는 듯한 정도의 발작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요즘 다시 잠이 들기 전 울면서 다음 날 아침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빕니다. 머릿속이 다시 텅 비어버린 것 같습니다. 차라리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해서 화가 나고, 다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버릴 수 있으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우울해서 죽어버릴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하는 저 자신이 또 한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