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 그 씁쓸함. 정신분석 상담을 받았다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일지07

by 박모씨

얼마 전, 상담을 새로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제 주변에 존재하는 저를 괴롭히는 것들이 많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악화하여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상담사가 함께 있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본래 내원하던 병원에 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상담을 따로 받고 싶은데, 초진 진료기록이나 refer 의뢰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라고요. 원장님께선 많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상담 또한 같이 진행되어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드리고 있지 못한 상황이 죄송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한국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약을 처방받으면서, 미국드라마처럼 누울 수 있는 소파에 누워 이야기하는 그림은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하는 편이었습니다. ‘커피를 줄이세요.’ ‘밤에 잠을 충분히 주무세요.’ ‘하루에 30분 이상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와 같은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으셨거든요. 일생의 반 이상을 힘들게 보냈을 것이고, 치료를 마음먹고 온 걸 대견하다고 해주셨습니다. 저는 약을 먹으면서 부작용을 겪기도 했지만, 확실한 치료 경과를 보이므로 처방에 대한 불만 또한 크게 없는 편이기도 합니다.

사실 병원에 오면서 가장 큰 불만은, 병원이 소득수준이 높은 학군이 좋은 번화가에 있다는 것인데, 학생들이 각종 브랜드 의류를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슬픕니다. 상대적인 박탈감이 드는 게 아니라, 슬픕니다. 돈을 벌어도 나는 아디다스에서 패딩 하나 사지 못하는데, 저 아이들은 부모님이 사주시는구나……. 하고 슬퍼합니다.

어쨌든, 병원에 가서 이야기하니, 정신과 전문의가 30분 정도 상담을 진행하는 병원이 있고, 여기에 가셔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그곳도 고려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곳을 선택했습니다. 금전적인 면이 저에게는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병원도 지금 내원하는 곳보다 가까이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처방은 계속해서 처음 내원했던 곳에서 받기로 했습니다. 장거리로 이동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고, 두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치료 도중 다른 병원에 가면 병원을 옮기는 거 아니면 진료를 봐주지 않겠다고 하시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한 명의 환자를 두 명 이상의 의사가 진료를 본다는 것은 매우 부담되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내용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지도교수에 따라, 본인의 연구 분야에 따라 본인만의 치료 방향이 정해져 있고, 다른 사람과 상충하는 면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를 믿고 레퍼런스를 보내주셨다는 것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의료행위에 어디가 맞고 어디가 틀린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사의 처방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선뜻 두 군데에서 진료를 보겠다고 하는데 만류를 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상담은 이제 3회차에 접어들었고 삶의 전환점이 될 만한 큰 교훈을 얻고 있진 않습니다. 계속 혼나는 기분이 들긴 하는데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객관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하려 들고, 원장님은 제 생각이 어떤지 듣고 싶어하신다는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자꾸 대화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어떤 부분에서 힘들었는지 알아주십사 하는 마음이 큰데, 그걸 전달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최근 집 이야기와 아버지가 저의 직업에 대해 한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왜 아직 부모에 목메있느냐고 하셨습니다. 많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심리적인 거리를 많이 두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연락도 잘 안 하고, 말도 잘 안 하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자꾸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베풀던 친절도, 가끔가다 과할 때가 있었던 오지랖도, 전부 남을 믿지 못하고 인정받고 싶어 해서 하는 행동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남들이 뭐가 중요하냐고,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저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인데,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제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너무 무서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항상 상처받고 이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지양하라는 뜻이겠지요.


최근에 부친이 정신과 내원을 권유했습니다. 친척들 앞에서 제가 하는 일들의 금액을 일일이 이야기한 것이 저를 무시한 게 아니며, 제가 너무 확대해석하고 피해망상이 있다고요. 저보고 가짜라고 한 것도 무시한 게 아니며, 제가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자기에게 시집와서 여태 힘들었으니까 너희가 돈을 좀 보태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차라리 이 숨이 빨리 멎었으면 좋겠는데, 고생은 본인이 시켜놓고 왜 저보고 노력하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피해망상이며, 네가 정신병이 있다는 게 아니라 가서 상담이라도 받고 오라고 했습니다.

약간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1년간 치료를 받아오는데도 가족들에게 저는 피해망상이 있어서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아이로 보였다는 이야기니까요. 물론 벌써 다니고 있고 다니고 있는 이유의 팔 할 이상은 당신 때문이고, 당신이야말로 알코올 중독 센터를 다니면서 그간의 잘못에 대해서 깨우쳐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원장님은 차라리 잘됐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피해망상’이라는 것이 금전적인 요인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조금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제 본인이 사회생활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곤 부모님에게 이제 드릴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액수를 정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싫으냐고도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저의 가여운 족쇄들의 노년을 저와 자매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아주 옛날부터 유념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금액이 얼마 정도 되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각 1억5천씩은 들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 1억5천 이상은 해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금액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상담을 결심한 후로 다시 상태가 호전되고 있습니다. 돈을 써서 무언가 사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나중에 뭔가 하겠다.’ 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며칠 전 제 치료사 실을 알고 있는 동기와 통화를 하다가 ‘나중에 내가 돈 벌면 그거 사줄게.’라는 말을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구나, 하고요. 미래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없는 데 돈을 써서 뭔가 해주겠다는 생각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병원에는 호전되고 있음을 알렸으나 그래도 1주일에 한번 내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다량으로 약을 처방받았을 때 제가 오남용 할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항우울제와 함께 처방받는 고혈압약인 β-차단제 약물을 2주일 치 한꺼번에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담원장님께 처방 변동에 관해 이야기해드리며 이를 말씀드리니 이것 또한 ‘내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여태 죽지 못한 이유를 ‘다른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 라고 이야기하니 ‘왜 다른 사람을 신경을 쓰느냐.’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 행위 자체가 삶에 대한 의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 괴로운 것을 어찌할 줄 모르겠습니다.

​상담과 함께 각종 트라우마와 우울증에 관한 treatment와 cure에 대한 도서를 빌려보고 있습니다. 내재한 프로토콜 중에 실천해 볼 만한 것들은 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관적인 불편함에 대해서 등급을 내려 이를 처리하는 방법을 적은 책인데, 원서를 번역한 책이라 어색하고 적용이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좋은 방법들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