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는 숙취에 대한 정확한 기작을 알 수 없는 듯하다. 최근에는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거나 많은 양의 술을 마시면 세포들의 염증반응에 의해 사이토카인이 증가돼 숙취가 심해진다는 가설이 신빙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막걸리를 마셔도 숙취가 심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고 난 후 숙취에 대해 고생한 이야기를 한다. 나이가 있는 어른들은 젊을 때의 좋지 않은 기억에 막걸리가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막걸리를 마시면 숙취가 심하다는 소문의 시작은 카바이드 막걸리를 시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카바이드 막걸리 이전에는 막걸리와 관련되어 숙취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막걸리의 숙취는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된것일까?
카바이드 막걸리는 70년대부터 해서 지금까지 막걸리의 저급함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어 왔다. 심지어는 최근에도 "숙취의 주원인인 아스파탐과 카바이드가 들어가지 않아 일반 막걸리보다 숙취가 덜해......"라고 아직까지 막걸리에 카바이드가 들어가는 것처럼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막걸리 하면 카바이드가 두통을 일으키는 주요 물질로 연상이 된다.
하지만 실제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카바이드 막걸리를 마셔본 분을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양조장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분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카바이드 막걸리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카바이드 막걸리는 이름만 있을 뿐 존재를 본 적 없는 귀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처럼 막걸리의 저급함과 숙취의 오명을 씌운 ‘카바이드 막걸리’의 실체가 궁금했다. 과연 카바이드 막걸리가 무엇이고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을까?
카바이드 막걸리가 신문에 처음 언급된 것은 1962년 7월 9일 동아일보의 횡설수설이라는 가십난이다. 이때는 주세가 오른 뒤 술값이 비싸다 보니 면허가 있는 음식점보다는 대폿집에서 밀주를 마시는 게 값싸게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때, 카바이드의 역할이방부제로 술의 맛을 변하게 하지 않게 만들 목적으로 쓰였다고 적여 있다.
1962년 7월 9일 동아일보의 횡설수설 / 출처 -네이버 뉴스 아카이브
이후 실제 막걸리에 카바이드를 섞어 판매해 구속된 기사가 나온 것은 1972년 11월 11일자 기사들이다. 카바이드 섞어 양조한 6명을 구속한 것이다. 이 불량 막걸리와 불법으로 밀조된 막걸리로 인해 막걸리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이후에는 거의 매년 카바이드 막걸리로 인한 밀주 사범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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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이들은 모두 비위생적인 판자촌 지대에서 술의 주원료인 쌀과 누룩 대신에 밀가루와 화학약품을 혼합한 후 발효를 빠르게 하기 위해 카바이드를 섞어 술을 만들어왔으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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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11일자 뉴스 / 출처 - 네이버 뉴스 아카이브
이러한 기사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막걸리에 카바이드를 넣는 이유이다. 고두밥을 신속하게 발효시키기 위해 카바이드를 넣는다는 것이다(앞선 1962년 기사에서는 방부제 역할이었다) 그럼 카바이드를 넣으면 발효가 빨리 된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에는 그 이유에 대해서 까지는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카바이드를 넣었을 때 이러 날 수 있는 효과를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카바이드는 물과 반응하여 아세틸렌을 발생시키면서 열을 내는 효과가 있다. 이때 발생되는 열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도 알코올을 빨리 만들기 위해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나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 등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온도를 높이고는 한다. 물론 지금이야 발효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안전하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발효실의 온도를 높이거나 발효조에 열선을 감는 등). 하지만 그 당시 비싼 연료인 연탄이나 석유를 통해 발효조를 따뜻하게 하는 것보다 카바이드를 넣는 방법을 택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카바이드를 넣어 발효되는 막걸리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은 불가능에 가까운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한다
먼저 카바이드를 막걸리에 넣으면 냄새로 인해 마실 수가 없다. 카바이드가 물을 만나면 에틸렌 가스가 나오게 된다.
아세틸렌가스 자체는 순도가 좋으면 냄새가 없으나 불순물이 많은 경우 특이한 냄새가 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역겹다. 막걸리 발효 중에 카바이드를 사용하면 온도는 올라서 발효가 빨라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먹을 수 없는 냄새를 가진 막걸리가 만들어지기에 소비자가 쉽게 알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아세틸렌가스는 산화 폭발, 분해 폭발, 화합 폭발 등 다양한 폭발의 위험에 취약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불이 가까이에 있으면 쉽게 터지는 가스라는 것이다. 발생된 아세틸렌이 발효 중에 폭발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와 관련된 기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참고 1).
카바이드(좌)를 통해 만들어진 아세틸렌가스는 카바이드램프(우)에 사용된다
이후 신문 기사에는 카바이드의 다른 용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카바이드 막걸리가 아닌 카바이드가 첨가된 누룩도 등장을 한다(1976년 3월 6일 조선일보).
카바이드가 발효제로써의 역할을 한다면 전분을 분해를 해야 하는데 카바이드는 그런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막걸리에서처럼 열을 내는 작용을 통해 발효를 촉진시킨다고 가정한다 해도 이해가 안 된다. 누룩을 만들 때 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카바이드와 물이 반응해서 열이 나기에 누룩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바이드 약주에 대한 내용도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막걸리나 약주 모두 전분질 원료를 이용하고 누룩을 사용하기에 발효 과정은 동일하다. 하지만 카바이드 막걸리를 만들다 잡힌 사람은 있어도 카바이드 약주를 만들다 잡힌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카바이드 막걸리가 언론에서 다루어지자 당시 국세청에서도 카바이드가 들어 있는지를 분석을 해봤다. 그 결과 판매되는 막걸리에는 카바이드가 들어있지 않다고 결론을 냈다. 그와 같은 결과는 「국세청기술연구소 100년 사」에 자세하게 적혀있다.
국세청 분석에서는 카바이드가 검출된 적이 없다고 한다 / 출처- 기술 연구사 100년 사
이런 의문점으로 몇몇 전통주 전문가들도 카바이드 막걸리에 대한 실체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만든 사람도 못 찾고 만드는 과정을 본 사람도 못 찾았다. 카바이드 막걸리는 소문만 있고 마신 사람도 만든 사람도 없는 도시괴담처럼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카바이드 막걸리가 생산된다는 기사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몇까지 이유를 조심히 이야기해 보려 한다.
먼저 카바이드의 끓는 모습을 보고 생각할 수 있다. 물에 카바이드를 넣으면 부글부글 끓는 것이 꼭 막걸리의 발효 때 모습처럼 보인다. “이 모습을 본 어떤 이가 막걸리를 카바이드로 만드는가 보다라고 술자리에서 말했고 이 얘기가 돌고 돌아서 ‘카바이드 막걸리’가 탄생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여기에 “감을 빨리 숙성시키는 데 카바이드가 쓰인다는 과학적 사실과 결합하면서 양조장들에 카바이드를 써서 술을 속성으로 발효시키려는 유혹이 있었다는 논리도 추가됐다”고 설명할 수 있다.
다른 하나로 불량식품으로서의 막걸리 문제이다. 막걸리 카바이드 기사가 나올 당시 정부의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는 불량식품에 대한 단속이었다. 당시 불량식품들은 지금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많았다. 담배꽁초를 넣고 끓인 커피, 세제를 넣은 맥주, 물감을 들인 톱밥을 넣은 고춧가루, 조기 등 생선의 몸에 노란색 물감을 칠한 것, 홍차 등에 물감을 탄 것을 지금 들으면 무시무시한 제품들을 그 당시 불량식품으로 제조한 것이다.
막걸리도 카바이드가 아닌 다른 물질들을 넣어 문제가 된 것들이 많았다. 미생물 살균을 위한 피크린산 막걸리, 신맛의 중화를 위한 가성소다(양잿물) 막걸리, 물을 타서 싱거워진 상태를 감추기 위해 고삼을 넣어 만든 고삼 막걸리 등 다양한 불량 막걸리들이 막걸리의 이미지를 실추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소비자들은 막걸리를 믿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밖에도 막걸리는 재료 조달이 쉽고 제조가 용이해서 불법으로 제조되는 밀주가 많았다. 이러한 밀주는 품질을 책임지지 않기에 물을 넣은 막걸리나 변질된 막걸리가 유통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막걸리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추락했다. 막걸리가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양조장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카바이드를 보고 발효를 위해 사용된 하나의 불량식품 재료로 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정부는 1975년에 소주 업체를 지원하고 막걸리 업체를 ‘탄압’하기 시작해요. 소주는 도수를 기존 35도에서 25도로 낮추도록 합니다. ‘소주에 물을 타도록’ 해준 것이죠. 원가가 덜 드니 소주업체들은 마진을 더 챙기게 됐어요. 반대로 비위생적인 술도가를 적발하고 밀주업자를 잡아들이며 막걸리에 비위생적이고 불법이라는 이미지를 씌웁니다.
<중략>
1974년까지 “술 한 잔 하자”면 으레 막걸리를 뜻했답니다. 당시까지 소주는 대중주 축에 끼지 못했대요. 간혹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지만 호주머니가 가벼운 막노동꾼 정도였다고 해요. 맥주는 비쌌고요.
막걸리는 1974년 최고 출하량 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시 전체 술 소비량의 70%를 차지했어요. 그러나 정부가 다각도로 탄압하자 막걸리 소비는 급격하게 감소해 소주에 ‘주류(酒類)의 주류(主流)’ 자리를 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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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많은 자료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반영해 보아도 카바이드 막걸리 기사는 있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본 기사를 찾기 어렵다. 이 글에서도 완벽하게 결론을 내려 카바이드 막걸리는 없었다고 단정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실제 카바이드 막걸리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은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카바이드 막걸리’는 잘못된 진실로 만들어진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막걸리의 침체를 단순히 카바이드 막걸리 때문이라고만 설명할 수 없다. 소비자의 기호도가 막걸리에서 맥주로 넘어간다거나 막걸리의 맛이나 위생의 문제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카바이드 막걸리의 마시고 나면 숙취가 생긴다는 잘못된 이야기들이 퍼지면서 막걸리 품질에 대한 폄하로 이어졌다. 상당 부분은 지금까지 막걸리를 마시면 숙취가 있다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진실처럼 자리를 잡았다. 결국 ‘카바이드 막걸리’라는 단어는 막걸리를 하면 숙취가 떠오르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은 개별 양조장이 나서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단체나 협회에서 ‘막걸리 카바이드’의 자료를 찾고 실체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 ‘카바이드 막걸리’가 실제 없었던 사건이라면 그에 대한 막걸리의 잘못된 상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막걸리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우리 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카바이드 막걸리’라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의 확대 재생산을 멈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