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자료 펼치기(옛 신문을 중심으로..)-26
전통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선의 3대 명주에 대해서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육당 최남선(1)이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조선의 3대 명주를 감홍로, 이강주, 죽력고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은 최남선이 1946년 조선에 관한 상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전체적인 글은 질문과 답변을 하는 형식의 문답서이다. 이 책의 시작은 1937년 1월 30일부터 9월 22일까지 160회에 걸쳐 『매일신보(每日新報)』에 연재한 강토편(疆土篇)·세시편(歲時篇)·풍속편(風俗篇) 등 16편 456 항목의 ‘조선상식’이다. 광복 후 ‘조선상식’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조선상식문답』 책을 만들었다.
매일신보에 연재한 ‘조선상식’에는 조선의 3대 명주에 대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조선상식문답』을 만들면서 추가를 한듯하다. 그럼, 『조선상식문답』에 나온 조선 3대 명주의 출처는 어디일까? 당시 품평회를 통해 3대 명주를 선정했다는 기록을 신문이나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최남선이 그 당시 주류전문가나 민간에 소비되고 있는 것을 보고 글을 적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상식문답』에는 3대 명주를 물어본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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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조선 술의 유명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답 : 가장 널리 들린 것은 평양의 감홍로(甘紅露)니 소주에 단맛 나는 재료를 넣고 홍곡(紅穀)으로 밝으레한 빛을 낸 것입니다. 그다음은 전주의 이강고(梨薑膏)니 뱃물과 생즙과 꿀을 섞어 빚은 소주입니다. 그다음은 전라도의 죽력고(竹瀝膏)니 청대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낸 즙을 섞어서 고은 소주입니다.
이 세 가지가 그전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던 것입니다. 이 밖에 금천의 두견주, 경성의 과하주처럼 부분적으로 또 시기적으로 좋게 치는 종류도 여기저기 꽤 많으며 뉘 집 무슨 술이라고 비전(秘傳)하는 법도 서울, 시골 퍽 많았습니다마는 근래에 시세에 밀려 대개 없어지는 것이 매우 아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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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답은 『조선상식문답』의 IV. 풍속에 나오는 글이다. 바로 앞에는 약주(藥酒)에 대한 문답이 뒤에는 떡에 대한 문답이 나온다. 이 글을 읽어보면 3대 명주가 아닌 조선의 유명한 술을 물어본 것이다. ‘명주’와 ‘유명한 술’의 어감은 조금 다르다. 명주는 품평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술 또는 오래전부터 대중들 속에서 가치가 높은 술들을 이야기할 때 보통 쓰이는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술이라 해서 명주라 부르지 않는다. 같은 시대에 유명할 술을 명주라 부르면 소주, 맥주도 명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가장 널리 퍼졌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마시고 있는 술로 대중주의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한다.
최남선은 당시 유명한 술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널리 소비되고 알려진 3가지 술을 이야기했다. ‘조선주조사’를 살펴보아도 개화기 때 많이 만들어지고 소비된 술로 탁주, 약주 외에도 감홍로, 이강주 등을 따로 소개한다. 이걸로 보아도 감홍로, 이강주, 죽력고는 많은 사람들이 마셨고 대중화되어 있었던 술인 것이다.
또한,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는 그전에(과거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금천의 두견주, 경성의 과하주는 시기적으로 좋게 치는 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앞에 3가지 술 모두 증류주이거나 증류주를 베이스로 한 술들이다. 당시 살균이 어려웠던 막걸리와 약주는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전국으로 퍼질 수 있던 증류주 3가지가 전국에서 소비되고 있었고 많은 다른 술들 중에서도 유명한 술로 언급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 시기적으로 좋은 술로 ‘과하주’와 ‘두견주’를 이야기했다. 과하주는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술 주(酒)이다. 이름 그대로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 술이 상하는 것을 극복하는 데 목적을 둔 술이다. 발효 술에 증류주를 혼합해서 20도를 넘는 술로 만들면, 술의 단맛이 유지되면서 상하지 않는다. 결국 여름이 되어야 마실 수 있는 계절주이다. 또한, 알코올을 첨가하기에 유통기한이 길어져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을 수 있다. 당시 과하주를 만드는 공장이 꽤 여러 곳에 있었다. 신문을 살펴보아도 많은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 그 당시 유명한 곳으로는 지금도 주요 생산지인 김천이 포함되어 있다. 최남선은 그중에서 맛있는 과하주로 김천이 아닌 경성 과하주를 언급한 것이다.
반면 금천(김천) 두견주는 약주이기에 조금 다른 듯하다. 현재 두견주로 유명한 곳은 무형문화재로 되어있는 면천 두견주이다. 두견주는 진달래를 넣어 만든 약주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살균이 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결국 두견주는 봄에만 마실 수 있는 계절주였을 것이다. 두견주도 개화기 때 봄이면 많은 지역에서 만들어 마셨을 것이다. 그러기에 두견주로 유명한 금천 두견주를 문답서에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의문점은 있다. 금천(김천)이라는 지역이다. 당시 두견주가 유명하던 곳은 지금과 동일하게 충남 당진의 면천 두견주이다. 신문기사를 찾아보아도 당진의 기사는 나오지만 금천(김천)의 두견주 기사는 보이지를 않는다. 하지만 최남선은 금천(김천) 지역이 유명하다고 했다. 금천(김천)은 그럼 어느 지역인가?
당시 개화기 때의 금천이나 김천으로 지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천’이 들어간 당시 지명들 지적 아카이브(http://theme.archives.go.kr/next/acreage/viewMain.do)
- 강원도 삼척군 상장면 금천리, 강원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 경상남도 밀양군 천화산외면 금천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동, 경상북도 상주군 모동면 금천리,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동,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금천동, 경상북도 청도군 동상면 금천동,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 금천리, 전라남도 나주군 금천면,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금천리,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금천리, 충청남도 공주군 양야리면 금천리, 충청남도 면천군 신천면 금천리, 충청남도 홍산군 남면 금천리, 충청북도 청주군 동주내면 금천리
‘김천’이 들어간 당시 지명들 지적 아카이브(http://theme.archives.go.kr/next/acreage/viewMain.do)
- 경상남도 거창군 읍내면 김천동, 경상북도 김천군
이처럼 금천과 김천의 지명은 여러 곳이지만 다른 자료와 비교했을 때 두견주가 생산되었거나 유명했다는 자료는 찾을 수가 없다. 아니면 충청남도 면천군 신천면 금천리의 ‘금천리’가 최남선이 이야기한 ‘금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지역명과 비교해도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특히 과하주의 경우 경성을 이야기할 정도로 큰 구역을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두견주는 금천리를 이야기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최남선은 왜 금천(김천)을 이야기했을까? 최남선은 술 전문가가 아니다. 조선상식문답 역시 주변의 이야기 및 자료를 정리한 책이다. 술을 모르기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자료를 정리한 것은 아니까? 이 과정 중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면천 두견주를 옮겨 적는 과정이나 누군가 전해준 내용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니까 라는 추정을 해본다. 하지만 이것도 개인적인 추정일뿐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조선상식문답』에서 언급한 조선의 유명한 술은 5가지로 볼 수 있다. 3가지는 그전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마셨던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이고 2가지는 시기적으로만 마실 수 있는 금천(김천) 두견주, 경성 과하주인 것이다.
그럼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이야기 한 이 술들을 찾아 3대 명주로 부른 최초의 자료는 무엇일까? 처음 언급한 자료를 정확히 찾기 어려우나 신문 기사로써 3대 명주로 거론된 것은 1994년 11월 4일 전북도민일보 ‘한국의 맛 전북의 맛’으로 보인다(찾지 못하는 더 오래된 자료가 있을 수도 있다). 여기도 감홍로를 호산춘으로 적는 실수가 있었다(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조선 4대 명주를 평양 감홍로, 한산 소국주, 홍천 백주, 여산 호산춘으로 이야기했다).
이글은 조선의 3대 명주라 불리우는 술들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이강주, 죽력고, 감홍로 3가지 술들은 충분한 맛과 품질을 가지고 있고 명주로써 부족함이 없다. 다만, 현대에 조선의 명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올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강주, 죽력고, 감홍로 등은 지금 맛을 보아도 맛있는 술들이다. 하지만 이 술들을 조선의 3대 명주로 이야기 하면서 술 자체를 과거에 갇아둔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오히려 개화기에 많은 사람이 마신 대중주라는 이미지가 현재 이 술들의 마케팅이나 소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명주라는 우리가 평소 접하지 않고 멀리있는 술이 아닌 우리 바로 옆에서 편하게 마시던 술이 이 세가지가 아닐까 한다. 맥주, 와인이 많아지기 전까지 우리는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를 좋아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마셨던 것이다.
3가지 술 외에 언급한 금천 두견주, 경성 과하주 2가지 모두 지금 생산이 되고 있는 술이다. 그러기에 3대 명주로 소개하는 것보다 개화기 조선에 가장 널리 마신 ‘최남선이 소개한 조선의 유명한 5가지 술’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전통주 스토리텔링이되지 않을까 한다.
(1) 최남선은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은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자 번역가, 역사학자, 그리고 본래 독립 운동가였다가 변절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비판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