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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프랑스 사진엽서 속 우리 술 이야기

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107

  세계 최초의 우편엽서는 1869년 10월경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우편엽서는 인쇄술이 발달한 독일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편지를 대신해서 우편 기능을 하던 엽서는 사진이나 그림들이 들어가면서 대중들의 수집과 기념품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엽서 발행은 1900년 5월 10일로서 국내용 1전 엽서가 최초이다. 사진엽서는 1899년 프랑스 우체 고문인 클레망세(E. Clemencent)가 한국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를 판매하면 대한제국의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정부에 건의를 하면서 활성화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생산된 구한말 사진엽서 속 사진 중 가장 많은 것이 조선의 풍속을 소개하는 사진이다. 당시 사진엽서는 조선인의 복장 혹은 성별, 계층별 특징, 생활 풍속, 의식주, 신앙과 의례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러한 자료 중 주막의 모습 또는 술을 마시는 모습은 당시 우리 술 역사를 해석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 구한말 술을 주는 여인의 사진 알레베크가 찍어 파리만국박람회에서 판매한 사진엽서 ⓒ 한국학중앙연구소


   처음에는 사진으로만 알았던 자료 중 최근 사진엽서로 확인된 자료가 있다. 사진으로 알려질 때는 엽서 속 테두리를 제거한 모습이었다. 이 엽서 속 사진에는 한 여자가 남자의 입에 잔을 주는 모습과 앞에 놓여있는 유리병으로 인해 '위스키를 마시는 구한말 주막의 모습'으로 설명되고는 한다. 실제 엽서 형식은 사면의 백색 테두리 안에 사진이 있는 형식이고, 오른편에 '알네바ᆡ각ᄭ그 법국 교사 셔울 다ᆡ한'이라는 한글이 쓰여 있다. 왼편 맨 위쪽에 'Séoul (Corée)'라는 불어, 아랫면에는 엽서 번호와 사진 설명이 적혀 있다. 밑쪽에 적혀 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Dame galante coreenne offrant une tasse de vin a un jeune citadin pour indiquer qu'elle accepte ses propositions.(번역 -환심을 사려하는 한국 여인이 젊은 도시 청년에게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도록 한 잔의 와인(술)을 제공하고 있다.)"


  '알네바ᆡ각ᄭ그(알레베크)'는 당시 조선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활동했던 프랑스인 샤를 알레베크(Charles Alévêque)로 한국명은 안례백(晏禮百)이었다. 법국은 프랑스를 뜻한다. 이 사진엽서는 알레베크가 제작한 것이다. 대한제국은 그가 촬영한 사십여 장의 궁궐과 풍속 사진을 엽서로 제작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 알레베크 사진엽서는 한국 우정사 최초의 사진엽서로 이야기된다. 사진엽서는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프랑스로 가져가 인쇄하여 제작하였다. 1900년 열린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조선 정부의 대리인 자격으로 프랑스 현지에서 초콜릿, 비누, 화장품 등을 팔면서 끼워 주는 조그마한 선물 사진이나 상품 카드로 사용했다.


   이 사진 속 모습을 설명할 때 당시 주막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부에서는 남성에게 술을 주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술을 주는 기생이나 남성에게 성을 파는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사진 속 모습을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진 속 장소는 술을 판매하는 일반적인 주막의 모습은 아닌 듯하다. 비슷한 시기에 찍은 주막의 모습과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도시 속 주막은 식사와 술을 해결하는 공간이었다. 좁은 공간에 앉거나 서서 식사와 술을 마시거나 해결하는 형태였기에 개다리소반에 남녀가 앉아서 술을 주거나 받거나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특히, 당시 주막은 서민들이 술을 마시는 곳이었기에 대부분 막걸리를 팔았다. 병의 모습도 토기 병 또는 백자주 병이었지 유리병으로 된 술을 판매하지는 않았다.

▲ 시골 주막의 풍경 구한말 시골 주막의 풍경 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1900년 프랑스에서 판매된 사진 엽서 속 우리 술 이야기 - 오마이뉴스                                                            

   유리병에 있는 술은 위스키가 아닌 와인일 수도 있다. 당시 위스키와 같은 수입 술은 고가의 요릿집 또는 돈이 많은 상류층의 연회장에서 사용된 술이다. 특히, 사진 설명 문장에 'vin' 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와인'이다. 술(de l'alcool)이나 위스키(whisky)라는 단어와 다르다. 1897년 10월에 대한제국에 들어온 알레베크는 프랑스어 교사로 한국에 머무르며 1901년 최초의 불어사전인 '법한사전(法韓辭典, Petit Dictionnaire Francais-Coreen)'을 편찬할 정도로 한글에 능통했다. 우리나라의 탁주나 약주 등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의식주를 설명하는 사진이었기에 유리병에 든 것이 탁주나 약주 등이었다면 vin(와인)이 아닌 정식 명칭으로 표현을 했을 것이다. 결국 'vi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정말 와인을 마셨거나 아니면 다른 종류의 술을 이해가 편한 와인으로 표현했을 수 있다.


   이밖에 사진에 있는 인물들의 시선이나 자세를 보아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연출된 모습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사진은 알레베크가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찍은 것으로 보아 저 유리병도 자신이 가진 유리병을 소품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장소 역시 주막보다는 다른 형태의 술집(색주가 또는 기방)의 앞마당에서 찍은 연출된 사진으로 보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해석 역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 술은 일제 강점기를 넘어오면서 많은 부분에서 단절된 역사를 가진다. 특히 술을 세금을 걷기 위한 수단이지 사회적, 문화적 관점으로 다루지 않았기에 관련된 분야의 연구가 부족하다. 엽서사진 한 장이지만 민속학적 연구에 대한 부분이 현재에 와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과거 술을 제조하고 복원하는 것만이 우리 술에 관한 연구가 아닌 엽서사진 속 술의 민속학적 연구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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