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185
최근 OTT 방송 ‘흑백요리사’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식이라는 것이 과거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 먹방이나 단순 요리방송을 넘어선 맛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식(美食)이란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음식을 통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고, 음식의 품질과 맛, 그리고 음식과의 감각적 경험을 즐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특히, 미식의 경우 음식과 음료(특히 주류)의 페어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행위다.
음식을 먹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첫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소비되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음식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과거에는 전자가 중요시되었다면 지금은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3745달러를 기록했으며 국민소득이 상승할수록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먹방(먹는 방송)’을 넘어서 유명 셰프들이 요리를 만드는 ‘흑백요리사’와 같은 프로가 유행했다고 할 수 있다.
미식의 역사는 인류가 음식을 단순한 생존 수단으로 여기던 시기를 지나, 음식과 함께 미적인 즐거움과 문화적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서 발전해 왔다. 인류 문명과 함께한 음식 문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했으며, 그 안에서 미식의 개념도 진화했다. 미식의 기원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에서는 이미 특정 음식을 사치스럽게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음식을 풍요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기며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했다. 로마 시대에는 잔치나 향연이 중요한 사회적 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미식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로마인들은 고기, 해산물, 와인 등을 즐겼고, 잔치에서 음식을 예술적으로 장식하고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양념을 사용한 조리가 발달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향신료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요리가 미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미식 문화가 꽃 피게 되었다. 프랑스는 미식의 중심지로 여겨지며, 17세기부터 "오트 퀴진(haute cuisine)"이라는 고급 요리 문화가 등장했다. 이는 궁정 요리에서 출발하여 정교하고 복잡한 조리법을 사용한 고급 요리를 지칭하는 용어로, 미식의 정수로 여겨졌다. 이 시기에 프랑스 요리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미식 문화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세기에는 미식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미식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문헌이 발달했다.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1825년에 "미식학의 생리학(Physiologie du goût)"이라는 책을 출간하며, 미식에 대한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다오. 그러면 내가 너의 정체성을 말해주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음식이 개인과 문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평가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레스토랑과 요리사들이 미식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미슐랭 스타는 미식의 상징이 되었고, 세계 각국의 요리사들이 미식계를 이끄는 주요 인물로 부상했다.
이렇듯 미식은 이제 우리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미식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음식과 어울리는 주류의 페어링일 것이다. 페어링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단어로 와인에 있어 “마리아주”라는 것이 있다. 마리아주(mariage)는 “마실 것과 음식의 조합[궁합]이 좋은 것(특히 와인과 음식의 궁합에 대해 말함)”을 이야기한다. 페어링이나 마리아주 모두 음식과 주류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술을 단독으로 마시는 것이 아닌 음식과 같이 마시는 것이기에 그 조화 정도에 따라 술 자체의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맛에 영향을 미친다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미식에 있어 페어링 하면 와인이나 사케 등 수입 주류의 페어링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심지어는 한식을 중심으로 하는 식당에서도 와인을 페어링 하는 것이 당연히 되던 때가 있었다. 최근에는 고급 식당이라고 해도 와인 만을 판매하는 곳은 드물어졌다. 오히려 음식과의 페어링에 있어서 와인과 함께 사케나 전통주 등을 추가해서 코스요리의 일부분으로 판매하는 곳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주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많은 식당에서는 막걸리는 전, 약주는 국물 요리 등으로 매우 한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식 이외에 다양한 음식과 우리 술의 페어링을 위한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존에 있던 일식이나 서양요리가 아닌 중식, 지중해식 요리 또는 태국 요리 등 그동안은 생각하지 않았던 다양한 요리들과의 페어링을 시도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꼭 요리가 아니라도 치즈, 초콜릿 그리고 빵 등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핑거 푸드 형태와의 페어링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음식과 술의 페어링도 크게 보면 관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기에 하나의 답이 있다 할 수 없다. 미식에 대한 관심도 새로운 음식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미식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음식과 술에 대한 페어링은 더욱더 다양해질 것이다. 이러한 다양함 속에서 전통주 역시 페어링을 할 수 있는 주류로 발전을 해야 할 것이다. 미식의 세계는 넓기에 음식에 맞는 다양한 전통주는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음식과 우리 술에 대한 페어링을 조금 더 고민한다면 우리 술의 소비처 확대는 한식당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까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본다. 우리 술이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페어링 되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기획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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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타임즈에 게재한 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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