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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주와 청주에 대해 알아야 한다-(2)

우리술 신문 펼치기(옛 신문을 보며..)-17

부제 : 약주를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서는 현재 주세법에 따라 맑은술을 ‘약주’로 부르고 사케 형태의 맑은술은 ‘청주’로 부르도록 하겠다. 


    앞선 글에서는 조선에서의 청주와 약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근현대에 있어 약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약주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약주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의문이 가는 부분이 여러 가지가 나온다. 우리는 약주를 많이 마시던 민족이었을까? 먹는 것도 부족했던 우리에게 맑게 여과된 약주를 서민들도 마셨을까? 약주에 첨가되는 누룩은 일제에 의해 사용을 못하게 된 것일까? 


 먼저 약주의 근현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조선주조사’에는 우리나라의 1913년 술 생산량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한반도 전체 술 제조량은 221,900㎘였고 조선 탁주의 생산량은 194,660㎘, 소주 15,253㎘, 청주는 7,162㎘, 조선 약주는 4,780㎘ 였다. 비율로 보면 조선 탁주의 비중이 87.7%, 소주 6.9%, 청주 3.2%, 조선 약주가 2.2%를 차지한다. 이처럼 처음 통계가 기록되었을 당시에는 청주가 조선 약주보다 더 많은 소비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영향으로 이미 청주가 많이 퍼져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1924년에 가서야 약주와 청주의 생산량이 각각 10,754㎘, 8,301㎘로 역전되었으며 책의 마지막 기록 연도인 1933년에는 탁주 279,831㎘(72.5%), 약주 21,483㎘(5.6%), 청주 12,085㎘(3.1%)로 전체 생산량에서 약주의 비중은 5.6%까지 상승했지만 통계가 있던 1913년부터 지금까지 전체 소비량을 보면 약주를 우리의 대표 주류라 이야기하기에는 소비량이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소주보다도 생산량이 적은 3위의 술이었다. 


주세법 시행 시대 주류소비량표 / 출처 - 조선주조사


 하지만 약주의 소비가 적다고 해서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식탁위의 한국사(주영하)’에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이래 약주는 양반의 술로 인정되었다. 주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까지 약주는 양반가에서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위해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중략) 서울 양반가에서 마시던 약주를 19세기 말 이후 음식점이나 양조장에서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일반인들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말 조선에 와서 일본식 청주를 생산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조차 조선주의 으뜸으로 약주와 탁주를 꼽았다. 조선 약주는 분명 고급술이었다. 1908년 1월 10일 자 <황성신문>에 실린 ‘명월관 확장 광고’에서도 명월관에서 구비하고 있는 술 중에서 약주가 가장 먼저 나온다. 그만큼 약주는 조선요리옥의 명성에 잘 어울리는 술이었다.” 

  이처럼 근대화에 있어 약주는 고급 주류이기는 하지만 서민들이 마시지는 못하는 술로써 조금씩 소비량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전체 소비량에서는 탁주, 소주 다음의 3위의 술이었다. 


명월관 확장 광고 1908년 5월 24일 황성신문 /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전자저널 갈무리


  다음으로 약주의 누룩 사용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현재 주세법의 누룩 사용량은 1% 이상을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누룩 사용에 대해서 일제 강점기에 누룩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약주에 누룩 안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주조사’에 나오는 약주의 제조법에는 입국을 이용한 약주의 제조방법이 없고 오직 누룩만을 이용해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국세청기술연구소 100년사”에서도 중앙시험소 양조부에서의 약주 시험에서도 시험소에서 제조한 누룩과 시판 누룩을 사용하여 비교 시험하였다. 특히 1920년 약주 시험에서는 전량을 시판 누룩을 사용하였으며 비교 시험구로만 청주 입국을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해방 이후 1949년 11월 11일에 제정된 주세법시행령에서도 역시 청주와는 달리 탁주와 약주에 있어서는 누룩(곡자 또는 국자)의 사용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룩의 사용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누룩 사용 의무화가 해제된 1957년 2월 4일 일부 개정된 주세법시행령에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약주에 한해 입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다시 1960년 12월 31일에 일부 개정된 주세법시행령에서 약주에 입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지만 1961년 12월 30일 일부 개정된 주세법 시행령에 다시 약주에 입국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단, 입국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원료곡류의 10% 이상의 누룩(국자)을 사용하도록 의무화). 이후 지속적으로 누룩 사용량의 감소가 이루어졌는데 1965년 12월 30일 주세법시행령에서는 약주의 누룩 의무 사용량이 원료곡물의 10%에서 5%로 축소되었다. 이후 1990년 12월 31일 주세법 시행령에서는 2%, 2008년 2월 22일 시행령에서 1% 이상을 사용하게 의무화 하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주세법 시행령 중 약주 변천사 / 출처 - 국세청기술연구소 100년사


  이처럼 약주에서 누룩의 사용 감소는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된 것이 아니라 상업적 또는 비즈니스적인 요구에 의해 양조장에서 스스로 누룩의 소비를 감소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누룩의 비율이 1%인 것은 최소량인 것이지 그 이상을 사용해서 만들어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양조장들은 1% 이상을 넣어 만드는 곳들이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며 이것은 누룩취라고 하는 누룩의 향을 젊은 세대가 싫어한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다. 


  200년대 초 약주가 많이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백세주나 산사춘처럼 히트 약주가 나오면서 당시 약주를 마시는 것을 술집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약주를 마시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으면 업체도 약주의 판매량이 감소되면서 전체의 매출이 감소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약주의 부활을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약주의 대명사 백세주(우) 산사춘(좌) / 출처 - 홈페이지

  우선 약주에 있어 쌀만을 이용한 순곡주 형태의 약주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나오는 대부분의 약주는 한약재를 넣어 만들 것들이 많다. 어쩌면 이것은 약주라는 이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약재를 첨가하면서부터 쌀이 가지는 풍미나 맛을 잃게 되듯 하다. 물론 이런 형태는 일본의 사케와 비슷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는 누룩이라는 고유의 발효제를 사용하기에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단맛을 줄여야 할 것이다. 현재 나오는 많은 약주에는 단맛이 높게 나오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약주나 프리미엄 약주 할 것 없이 비슷한 형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획일적인 단맛으로 인해 음식과의 매칭이 어렵고 많은 양의 술을 마시기 또한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의 확대를 위한 좋은 원료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쌀이나 누룩, 효모 등 술에 들어가는 원료들에 있어 국산화 비율을 높이고 다양한 미생물을 통해 다양성을 통해 획일적인 약주의 이미지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야기들이 당장은 쉽지 않은 일들이다. 하지만 주류의 유행은 돌고 돌기에 언젠가 앞으로 올 약주의 시대에 준비를 해야지만 약주의 시대를 더 오래 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앞선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현재 있는 맑은 술이라는 이름의 청주나 약주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어떠한 이름이 맑은 술을 대표할 수 있는지 찾아내어   전통주의 발전에 기여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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