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자료 펼치기(옛 신문을 중심으로..)-19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중요 사건들 마다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또는 일어났다면 이라 이야기하면서 가지 못한 역사의 길을 상상해 보고는 한다.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기에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사에 가정법을 도입해 보는 것이다.
전통주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 중에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주세법의 도입이다. 물론 주세법은 근대화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에 의해 일본식 주세 제도가 들어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만약 일제강점기가 아닌 대한제국 때 주세제도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그때를 알 수 없지만 자료들을 통해 그 당시의 모습과 상황을 가정해 우리가 만들었을 주세를 상상해 보려 한다.
먼저 ‘주세(酒稅)’를 알기 전에 그 당시의 세금인 ‘조세’가 어떠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조세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특별급부에 대한 반대급부로서가 아니라, 국가경비에 충당할 재정조달 목적으로 법률에 규정된 과세요건을 충족한 모든 자에 대하여 부과하는 금전급부를 말한다(1). 고대의 조세제도는 당을 모방한 조(組)․용(庸)․조(調) 제도를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쌀(租)과 부역(役), 공물(貢物)로 구성되어 있다. 조(組)는 토지에 용(庸)은 사람에게 조(調)는 집․가구(戶)에 부과하는 것이다(1).
조·용·조를 조선시대에는 ‘조(租)·역(役)·공물(貢物)’이라고도 하였다. 신라·고려 및 조선시대의 조세제도가 모두 그 명칭과 내용에 변천은 있었지만 이 조·용·조를 기본적으로 해서 체계화된 것이다. 근대 이전의 세제는 국가에 의한 토지 지배를 위주로 하는 지세(조, 組) 중심의 조세제도가 강화되어 있었다. 또한, 조선에는 다양한 국세 이외에도 임시세와 잡세 등 다양한 조세가 운영되었지만 체계적이거나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처럼 세금에 있어 근대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었고 특히 조선왕조는 국가 운영의 실리나 효율보다는 왕조체제의 유지와 왕토사상(모든 땅은 왕의 땅이라는 사상)이라는 이념 또는 명분의 확보에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근대적 시대의 흐름에 맞는 조세 체계로 바꾸어 나갔다.
가장 먼저 근대화된 조세들이 자리 잡기 전에 조세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개항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무역에 따라 ‘관세’라는 조세 항목이 등장한 것이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는 관세가 설정되지 않은 무관세였다면 1878년 부산의 두모진에서부터 관세가 징수되었고 최초로 세관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일본인의 항의로 폐쇄되어 1883년까지 무관세 시대를 지내게 된다. 관세이 조약에 의해 규정된 것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부터고 이것이 조선의 관세 자주권이 최초로 인정받은 사례이다. 이때 수입산 주류에 대해서도 관세를 규정하였다(2).
또한, 이후 1883년 만들어진 해관세칙(3)에는 다음과 같이 관세를 내도록 하였다.(주류 부분만 발취)
값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 것은 中國·日本의 酒類, 林禽酒[능금주]
값의 100분의 10을 관세로 받는 것은 赤·白 포도주·맥주
값의 100분의 25을 관세로 받는 것은 洋酒 월뭇(베르무트), 卜爾脫(보르도와인), 瀉哩(쉐리)
값의 100분의 30을 관세로 받는 것은 撲蘭德(브랜디), 惟斯吉(위스키), 上伯允(샴페인)·櫻酒(체리 코디얼)·杜松子酒(진)·哩九爾(리큐어)·糖酒(럼) 4別項에 기재되지 않은 일체의 酒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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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당시에 개항을 통해 상당히 많은 해외 술들이 수입이 되었다. 이러한 술들에 대한 정확한 관세를 걷기 위해 각 나라별 주세 및 그 술들에 대한 연구를 했을 것이다. 해관세칙에 나타난 관세를 보더라도 저도주에는 저세율 고도주에는 고세율의 관세를 증수했다. 특히 일반 포도주와 보르도와인, 샴페인 등을 확실히 구분해서 고급 주류와 일반 주류의 세금을 차별 징수 까지도 했다. 이러한 관세 내용을 보더라도 이미 수입주류를 세분화해서 세금을 징수할 만큼 각 나라별 술의 특징과 각 나라의 주세와 관세를 연구한 것이다.
이 당시 조세제도를 가장 빠르게 만들고 정확히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나라의 조세 정책을 연구하는 것일 것이다. 당시 관보 성격 신문인 한성순보를 보면 유럽 또는 미국의 조세제도를 연구한 기사들이 여러 편 보인다. 특히 이때 유럽 및 미국의 조세 중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 주세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료들의 대부분이 유럽이나 서양식 주세 연구를 많이 한 흔적이 있으며 가까운 일본의 경우 오히려 주세 연구가 적었다.
이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우리가 주세법을 만들었다면 일본식 주세 모델보다는 미국 또는 유럽식 모델을 받아들여서 만들었을 확률이 높을지 모른다. 그 예로 앞에서 미국식 또는 유럽식 주세제도 연구뿐만 아니라 이미 1876년 이후에는 술 이름과 상표명을 제대로 갖춘 유럽술 들이 엄청나게 수입이 되었다. 특히 상류층의 소비가 많았는데 그 예로 청일전쟁 중이던 1894년 겨울, 조선을 여행한 영국 여성 비숍이 지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프랑스풍 시계, 독일식 거울과 함께 양주(洋酒)에 대한 기호가 젊은 양반 자제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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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895년에 회계법(會計法)이 제정된 이래 각종 근대적 세법령이 제정되었다. 회계법은 제1조에서 “조세의 새로운 부과와 세율의 변환은 일체 법률로써 정한다”고 규정하여 조세 법정주의의 실현을 명문화하였다. 또한, 1895년 탁지부를 만들어 정부의 재무를 총괄하고 회계·출납·조세·국채·화폐·은행 등에 관한 일체 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탁지부(度支部) 사세국(司稅局)에서 발간한 1909년 자료인 “한국세제고”에서는 「조세」의 범주를 ①지세(地稅), ②호세(戶稅), ③관세 및 톤세(關稅및噸稅), ④수산세(水産稅), ⑤염세(鹽稅), ⑥광세(鑛稅), ⑦잡세(雜稅)-선세(船稅), 인삼세(人蔘稅,) 포사세(庖肆稅,) 전당포세(典當鋪稅,) 화물세(貨物稅,) 연강세(沿江稅,) 두만강어망세(豆滿江漁網稅,) ⑧가옥세(家屋稅), ⑨주세(酒稅) ⑩연초세(煙草稅), 구세(舊稅)-공장세(工匠稅), 행상세(行商稅,) 노비공(奴婢貢), 무세(巫稅), 장시세(場時勢), 둔역도세(屯驛賭稅,) 환모(還耗)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세목들의 나열은 과거의 조세 개념에서 벗어난 근대적 조세 관념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세법은 근대로 들어오면서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었다. 근대화되지 않았지만 국가의 운영을 위해서 조세의 근대화를 준비하고 있었고 외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조세인 ‘주세’를 우리도 세금을 걷기 위한 방법으로 당연히 만들었을 것이다. 특히, 주세를 일제강점기에 갑자기 일본이 가지고 들어온 것이 아닌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주세 체계를 준비했을 것이고 당연히 세금을 걷기 위해 만들었을 제도라는 것이다.
물론 위의 관세 정책이나 관보에 실린 내용으로만 우리가 만들려 했던 주세 체계가 미국이나 유럽식으로 유추하는 근거로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나라의 주세들을 연구한 것으로 보아 우리에게 맞는 주세를 준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주세 연구 및 주세법이 마지막까지 진행이 못 되고 일제에 의해 일본식 주세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현재까지 일본식 주세 체계를 따라가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에 역사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근대식 주세 또는 그 당시 주세 제도에 대한 연구를 전문가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로 돌아와 현재의 주세를 획기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동안 좋든 싫든 꾸준한 변화 속에서 만들어온 체계 속에서 많은 제도가 생겨났고 고착화도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주세법은 제약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술(알코올)이라는 특성이 있기에 규제를 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있지만 외국의 주세제도와 비교해도 복잡한 상황이고 우리나라의 규제 완화 정책과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결국 주세를 손보기 위해서는 현재의 땜질식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때이다. 지금 주세법이 현재 우리의 술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저도주, 저세율 고도주, 고세율의 정책에도 맞는지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현재 많은 부분에서 탈일본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식 주세법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맞는 우리식 주세 제도를 준비해서 중장기적으로 변화된 주세 체계를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제시했으면 그것을 조금씩 반영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295
(2) 한국세제사1편 연대별. 한국조세연구원 2012.12
(3) 해관세칙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62427
(4) 다음 백과사전 : 관보적 성격의 내용이 우선이었으며 개화사상 고취를 위한 내용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다.
(5) 〈한성순보〉를 다시 복간하는 형태로 1886년 1월 25일 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