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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길 (5) 산티아고순례길 북쪽길 1

내 삶에 기억되는 길


삼남길을 개척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케이블 방송사 PD를 만나 둘레길개척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방송 촬영도 했었고, 둘레길전문 잡지를 발행하려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이런저런 사업이 엮이려는 시기에 잡지사 기고를 통해 인세를 받아 산티아고순례길을 떠나자는 제안을 친구가 해왔다.


게다가 국내에는 아직 낯설고 자료가 부족한 산티아고 순례길 중 북쪽길(Camino del Norte)로 가자고 한다. 나야 어디를 가던 좋으니 동참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가이드북을 만들려는 생각과 잡지사 원고기고라는 두가지 목적이 먼저 세워진 상태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남길개척 문제 때문에 제대로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내가 준비한 거라고는 코스에 있는 알베르게 자료 뿐이였다. 그저 경험자인 친구의 말만 듣고 배낭부터 기타 물품까지 준비를 하였다. 배낭무게 까지 합쳐서 대략 17kg정도 되었다. 당연히 이정도는 되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과다한 무게를 지고 걸었던 것이였다. 사람들마다 그저 놀랍다는 반응이였으니...


순례길 답사를위해 기본적인 비용은 각자 부담하고 부족한 부분은 잡지사 계약을 통한 계약금을 우선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그외에도 다른 곳에서 비용을 지원받았음에도 이 친구는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몇 년 후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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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들어가는 비행기표도, 파리에서 Irun으로 가는 고속철 티켓 예약도 다 내가 했다. 경험자라는 친구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결정만 할 뿐이다. 이때까지는 진정 경험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바쁜 나날속에 어느순간 인천공항을 통해 파리로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코오롱스포츠로부터 물품 지원을 받아 배낭부터 침낭 신발까지 제공 받았다. 미쳐 신어보지도 못한 새트레킹화를 신고 출발해야 했다. 별탈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며칠 후 새신발은 문제를 일으켰다.


파리 드골공항에 도착하여 쉴틈없이 몽파르나세역으로 이동하여 잠깐 휴식과 함께 근처 슈퍼마켓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떼우고 바로 고속철에 몸을 실었다. 고속철이 고급스럽다기보다는 한국의 무궁화호처럼 입석으로 탄 사람들과 섞여 북적북적했다.


그나마 위안이 된것은 4명이 마주보는 좌석에 우리가 앉았는데 남은 자리 하나에 이쁜 외국인 여인이 탑승했다는 것이다. 비록 대화는 못했지만 바라만 보는것만으로도 시간을 훌쩍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 한잔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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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un까지 바로가는 열차가 없어 보르도역에서 환승해야 했다. 2시간여 기다려야 하기때문에 잠시 역을 벗어나 시내를 둘러보았다. 트램이라는 대중교통도 처음으로 마주하였고, 한가롭고 정감있는 도시 분위기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여기가 프랑스 와인의 대명사인 보르도지방의 그곳이라는것을 차후에 알게되었다.


늦은 8시가 되어서야 Irun에 도착한 우리... 물어물어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크레덴시알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해도 잘 몰랐다. 난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순례길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거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열흘만에 깨지게 될 줄은 예상이나 했을까?



친구의 배신, 나와 후배 한 명은 허망하게 북쪽길에 버려졌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건 알베르게정보가 담긴 종이 한 장과 인터넷에서 캡쳐한 북쪽길 정보 이미지 몇 장 만으로 나머지 순례길을 마무리 할 줄이야...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 코스를 걸으며 배신에 대한 감정을 추스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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