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에피소드 10
순례길은 길고 긴 여행이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걷는것이 일상이 되는 특별한 여행이다. 그래서 아침에 해뜨고 해지는 모습, 밥먹고, 사람들 만나는 평범한 생활속에 새로움이 첨가되는 장소가 순례길이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나서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장면은 해가 떠오르는 일출이다. 비행기를 환승하기위해 도착한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활주로 건너편에서 떠오르는 해도 보았고, 피레네를 비춰주는 햇빛이 가득한 아침의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만보고 가기때문에 일출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걷다가 뒤를 돌아봐야 지평선에 걸쳐진 해를 볼 수 있는데 그저 앞만보고 걷기때문이다.
순례길에서 가장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메세타평원 지역일 것이다. 피레네를 넘을때는 뒤에 산이 있어 해뜨는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해뜨는 풍경을 본다고 해도 산위에 걸치는 모습이라 환하게 동튼 후 아쉬운 느낌만 가질 뿐이다. 하지만 메세타 평원은 끝없는 평원위에 동그랗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할 수 있다.
"당신이 뒤돌아볼 잠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높은 산도 없고, 밀밭이 가득한 평지에서 보는 일출은 바다위에서 바라보는 일출가 다르지 않다. 부르고스를 지나면서 일부러 일출과 깨끗한 하늘에서 은하수를 보기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걸은적이 있는데 구름끼고 흐린 날이어서 은하수와 일출을 놓친 경험이 있었다. 다시 한 번 폰세바돈을 넘어갈 때 시도하였고 마음에 드는 은하수와 일출을 만났다. 같은 하늘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이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맑은 하늘에 붉고 푸른빛이 그라데이션처럼 칠해진 풍경부터 음침한 구름의 모습뒤로 햇빛이 퍼져 나오는 아침의 풍경까지 날마다 다른 모습을 조우했다.
나는 걷다가 가끔 뒤돌아 본다. 앞만 보고 걸으면 길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뒤에서 보는 풍경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르막을 오르거나 내리막길에서 자주 뒤돌아 본다. 그러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모습을 마주했을때 느끼는 희열은 꽤나 달콤하다.
아침 일출이 시작될때 일행들에게 항상 얘기했었다. 뒤돌아 보라고, 그리고 일출 풍경을 보라고... 한 두번은 뒤돌아 일출을 보더니 그 이후에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 같은 일출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매일 다른 아침을 맞이하고 다른 일출의 모습을 본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어제와 같지 않고 마을 풍경이 다르기 때문에...
메세타를 벗어나 산을 넘어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면 들판에 뜨는 해를 보기 어렵다. 언덕과 산이 이어진 지대이다 보니 일출 보다는 새벽 여명의 시간을 본다. 붉은 빛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그러한 하늘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안개 자욱한 아침이거나 낮게 구름이 깔린 순례길을 걸어갈때도 있다. 이 모든것이 아침일찍 나왔기에 마주할 수 있는 모습이다.
늦게 길을 나섰더라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것 같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순례길을 나서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일출과 안개낀 풍경은 얻었지만 사람이 만들어내 문화유적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이곳에 와 있고, 내가 느낄 수 있기에...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