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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 - 여섯번째

백제 건국의 꿈, 풍납토성 - 2




여행코스 : 강변역- 올림픽대교 - 풍납토성 - 광진교 - 잠실철교 - 잠실나루역 8.7km  

                           


  이름만 남은 광진의 쇠퇴     


  현재 만들어진 다리는 2003년에 완공된 다리입니다. 한강에 세워진 대교의 순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울이 발전하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교통량이 많거나 중요한 지점을 먼저 다리로 연결하였고, 강남 개발과 맞물려 곳곳에 다리가 개설되었습니다. 지금도 교통량 분산과 신도시가 생김으로써 한강에 다리가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광진교가 1930년대에 완공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서울 변두리에 있는 다리가 일찌감치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였습니다. 현재 광진교는 한강의 어느 다리보다 사람을위해 디자인되고 통행이 안전한 다리입니다. 자전거길과 인도가 분리되어 있어 한때 위험한 공존이 존재했었지만 이제는 그 위험요소도 없어진 상태입니다. 광진교 중간에는 광진교 8번가라는 전시시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카페로 운영되었고, 아이리스라는 TV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입니다. 지금은 문화공연 및 전시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리 하부에 조성된 이곳은 한강을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는 투명 바닥이 있어 독특함을 더하는 곳입니다. 

[광진교8번가 간판]

[ 광진교8번가 내부]     


 광진은 조선 초기에는 중급의 나루였으나 사람과 드나드는 배가 늘어나면서 승격하여 태종 때에 별감이 배치될 만큼 요충지로 발전되었고 조선시대 한강과 남한강 및 북한강 유역을 관리하면서 수운을 담당하던 좌도수참(左道水站)이 상주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세종 때 삼밭나루(삼전도)가 개설되면서 광나루의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광진를 통하거나 삼전도를 통하는 길은 모두 강남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길이였는데, 한강북쪽에서 광진까지 가기보다 강 건너 삼전도로 이동하는 것이 더 가깝고 빨랐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이로인해 삼전도가 나루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지만 병자호란을 거쳐 삼전도굴욕이라는 사건이 생김으로써 삼전도를 경유하지 않고 위쪽에 송파나루를 이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송파나루가 번성하여 송파장이 유명해질 정도로 발전하였습니다.         


 

  백제의 시작 위례성을 정하다.    

 

  광진교 남단에 이르러 오른쪽 내리막길로 걸어내려가면 풍납토성에 이릅니다. 그전에 광진교남단에는 볼거리가 있는데, 도미부인 동상과 광진교 옛 교명주입니다. 처음 광진교가 준공되었을 당시 세워진 교명주를 되 찾아와 이곳에 설치를 해두었습니다. 광진교의 오래전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백제시대 정절의 상징이였던 도미부인의 동상이 있습니다. 지금에 관점에서 보면 이런저런 구설이 나올 수 있어 그냥 지나가려 합니다.

      

[광진교 교명주]

[도미부인 동상]     


 풍납토성 주변을 걸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도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거나 주변을 둘러보신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한강변공원을 따라가기보다 남아있는 풍납토성을 따라 걸어가보려고 합니다. 그전에 한성백제에 대해 이해한다면 한강옆 풍납토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제의 시작은 부여계 사람이였던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으면서 성을 쌓았는데 이를 ‘위례성(도성)‘이라고 불렀고, 건국 당시에는 하북위례성(한강의 북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며, 건국 이후 13년 후에 한강 아래로 도읍을 이동하여 도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를 하남위례성이라고 합니다. 하북 위례성에 대한 설은 많지만 정확한 위치를 정한 것은 없었습니다. 하남위례성 또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었습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으로도 정확한 위치를 추정할 수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풍납토성 주변이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풍납토성 상상도]     


  그렇다면, ‘위례‘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백제시대 왕이 살던 궁이 있는 도시를 위례성(慰禮城) 또는 도성(都城)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왕이 살고 있으니 크고 위대한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장소에 울타리를 두르고 있는 성이기에 옛 명칭에 고원성(古垣城)이라 불리웠으며, 고원은 ’옛 울’ 즉 지금의 서울과 같은 의미를 지녔습니다. 위례성 = 서울(옛 발음은 셔블) = 도성 = 고원이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고 넓다는 의미로 쓰이고 단어 중에 ‘고마’ ‘검’이라는 말이 있는데 몽촌의 옛이름이 곰말 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또한 서로 통하는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에 풍납토성이 어떻게 발굴되었을까요? 아주 우연한 기회에 풍납토성에 찾아옵니다. 한강변에 인접한 서쪽 성벽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백제시대 유물이 발굴되면서 풍납동 토성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발굴을 통해 수없이 많은 유적이 발굴되면서 한성백제의 위례성이라고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궁이라고 판단될만한 유적이 발굴되지 않아 지금도 조심스럽게 추측만 할 뿐입니다. 계다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추가 발굴이 어렵게 된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풍납토성은 약 2.7km이며 기존에는 약 4km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토성을 부분 절개하여 조사해보니 일부 구역은 BC 1세기에서 AD 3세기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성백제 초기 시대와 겹치기 때문에 한성 백제시대의 위례성으로 강하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 풍납토성 모습]     



 풍납토성에 빈 집터가 많은 이유    

 

  1990년대부터 풍납동 일대는 재개발 붐이 일었습니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면 유적지가 훼손될 수 있다보니 개발과 보존이라는 논리가 충돌하게 됩니다. 실제로 재개발 현장에서 몰래 발굴을 시도하여 엄청난 양의 유적이 발굴되어 개발이 지연되기도 하였으며, 발굴된 유적을 훼손하는 일까지 발생을 합니다. 이를 방지하기위해 기존 주민들에게 보상을 통해 재개발을 막고 부지를 매입하여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풍납동 주변 골목을 다니다 보면 비어있는 부지에 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부지매입하여 바로 발굴하여 위험을 초래하기 보다 공원화를 통해 보존하자는 취지인 듯 합니다. 실제로 동네에는 작은 텃밭공원 같은 곳이 존재합니다.   

[유적지 공원화 모습]

[유적지 안내표시판]

[유적지 안내표시판]     


  여기외에도 경당공원처럼 넓은 곳도 발굴지였다고 안내하고 있으나 그냥 공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발굴되었을때도 마을 주민이 난입하여 석구를 부셔서 징역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풍납동은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보다 조금씩 보상을 통해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풍납토성내 마을이 사라지고 발굴 조사가 될 것입니다.     

 

[경당지구공원 모습]     


  아직도 이곳을 위례성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왕궁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굴하지 못한곳이 너무나 넓고 왕궁에나 있을법한 십자형 도로 흔적만 발굴되었기 때문에 왕궁이 여기에 있을것이라는 심증만 넘쳐날 뿐입니다. 풍납토성은 무너진곳도 있고 예전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어 토성의 높이차이가 달리 보입니다. 올림픽대교가 가까운쪽에서는 토성위까지 올라갈 수있어 전체 풍경도 조망할 수 있습니다. 토성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는데다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을 멋들어지게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다시 한강으로 잠실나루까지     


 풍납토성이 남아 있는 구간은 약 2.5km 정도입니다. 하지만 한바퀴 순환하듯 걷기에는 아직 무리가 따름니다. 발굴조사하는 곳도 있고, 시멘트공장이 토성위에 자리잡고 있어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올림픽대교가 만나는 곳에서 한강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예전 잠실은 뽕나무만 많았던 곳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섬이였다는 사실은 아는 분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부리도라는 섬이라 불리웠던 잠실섬 얘기는 다음 4코스 걸으면서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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