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 - 다섯번째

백제 건국의 꿈, 풍납토성 -(1)

여행코스 : 강변역- 올림픽대교 - 풍납토성 - 광진교 - 잠실철교 - 잠실나루역 8.7km     

              

  한강길 걷기의 세 번째는 상류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한강의 상류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서울 기준으로 본다면 상류로 올라가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에 있는 광진교까지 거슬러 갑니다. 한강의 상류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포구가 있었고 배를 타고 한양으로 들어오는 첫 포구이자 관문같은 곳이 ‘광진나루‘ 였습니다. 그래서 서울 한강의 상류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원과 광진교 건너편 백제의 시작을 담은 풍납토성까지 오늘 가려는 길은 한강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었던 곳을 찾아가 봅니다.         

 


 한강의 기원은 어디일까?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한강의 기원은 태백의 ‘검룡소’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여러 하천이 모여 남한강을 이루고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만나 한강이 됩니다. 하지만 옛 자료를 보면 조금 다른 내용의 한강의 기원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택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한강의 발원은 오대산 ‘우통수(于筒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한강의 기원을 남한강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북한강은 한강의 기원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된 우통수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오대산 서대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는데 곧 한수(韓水)의 근원이다. 권근의 기문에 “서대의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으니 물 빛깔과 맛이 딴물보다 훌륭하고 물을 삼감도 또한 그러하니 우통수라 한다. 서쪽으로 수백리를 흘러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또 다른 한강 발원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남한강의 또다른 발원은 속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남한강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북한강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북한강은 금강산 아래 만폭동에서 기원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한강의 원류는 셋이 있는데 그 하나는 강릉부의 우통에서 나오고, 하나는 회양부 금강산의 만폭동에서 나오고, 하나는 충청도 보은현 속리산 문장대에서 나온다.” - 유득공의 사군지(四郡志)에서 발췌     

[한강발원지 지도-경강도록 발췌]          


   이처럼 옛 기록에서는 한강의 시작은 현재 알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 한강을 실측 탐사하면서 물줄기가 더 큰 곳이 검룡소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남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라고 국립지리원에서도 인정하였습니다. 아마도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과 장비를 사용하여 확인한것의 차이이거나 아니면 당시 풍수지리적인 이유로 한강의 기원을 비정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강의 시작은 예전과 현재다 달랐습니다. 이렇게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향해가는 한강은 약 514km가 되며 예로부터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한강의 이름은 다양하게 불리웠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아리수‘라고 불리웠고, 고려시대에는 ‘열수(洌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한강이 아닌 한수(韓水)라고 불리웠고 한양 부근을 지나는 강을 ‘경강‘이라고 불리웠습니다. 한강이라는 말은 한강진을 지나는 물길이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강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공통적인 의미를 하나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韓)이라는 글자는 ’크다, 넓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아리‘ 또는 ’알‘이라는 옛말 또한 크다 또는 신성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한강이라는 곳은 꽤 크고 넓은 강 이였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강은 고대시대부터 너른 평야를 끼고 흐르기 때문에 농경이 발달할 수 있는 지역이자 도시가 형성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삼국시대에도 한강 유역을 쟁탈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던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한강의 명칭이 지역마다 달리 불리워 졌는데 나중에 더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올림픽대교를 따라 걸어가겠습니다.     


      

 성급함이 부른 인재 -올림픽대교     

 

  한강 주변이 개발되면서 많은 다리가 건설됩니다. 1980년대 가장 큰 행사가 있었다면 1988년에 개최된 서울 올림픽일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올림픽공원 주변이 개발되었고 잠실 종합경기장으로 자가용 이동이 수월하도록 계획 건설된 다리가 올림픽대교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4개의 지주가 버티고 있는 첨탑위애 올림픽을 상징하는 성화를 설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헬기로 조형물을 설치하던 중에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하여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아픔이 있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시간이 오래되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TV를 통해 헬기사고가 생방송으로 방송된 것을 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올림픽대교만 지나면 그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아픔을 간직한 다리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올림픽대교는 한강에 최초로 건설된 사장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4개의 주탑이 하나로 연결되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4개의 기둥은 4주(연월일시), 4계절(춘하추동), 4방향(동서남북)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탑과 다리의 상판을 연결한 케이블은 12개 세트로 연결되어 있어 총 24개의 가닥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24회 올림픽을 의미하며, 이에 더하여 한국의 24절기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올림픽대교 또한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인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강 공원에서 바로 올림픽대교를 따라 한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이 좁은데다 신호등이 없어 조심히 다녀야 하는 다리입니다.      

  올림픽대교의 기본 목적은 올림픽대회 기간 동안 교통량을 분산하기위해 건설하기로 한 다리였지만 실제로 완공된 시기는 올림픽이 끝난 후 199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아마도 최초로 건설되는 사장교였기 때문에 기술이 부족하여 배우고 건설하고 하면서 늦어진 것이라 추측합니다. 현재 한강에는 다양한 형태의 다리가 있느데 2번째 사장교로 월드컵대교가 건설되고 있습니다.

     

[올림픽대교 모습]


   올림픽대교의 풍경은 해가 사라진 저녁에 봐야 제격입니다. 주탑을 따라 조명이 켜지면 낮에 보던 밋밋한 모습은 없어지고 화려한 화장을 한 대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에 가로등이 켜지면서 더욱 멋진 모습이 연출되며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취해 그냥 멈춰 서는 매력을 발산합니다. 여러분도 지나가면서 느껴보시길 바래요. 올림픽대교는 광진구 구의동과 강동구 풍납동을 잇는 다리이며 우리가 가려는 풍납토성 옆으로 지나갑니다.    

 

[이미지 3 올림픽대교의 야경 모습]        


  

  한강 상류의 전초기지 광진나루     


  올림픽대교를 지나 좀더 올라가면 천호대교와 광진교를 만납니다. 그중에 사람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한강의 다리를 꼽으라면 당연히 광진교가 가장 안전한 다리일겁니다. 실제로 사람이 주인이 되도록 다리를 개보수하였으니까요. 광진교는 서울과 서울을 잇는 가장 끝에 있는 다리입니다. 하지만 광진교위에 암사대교가 생기면서 서울 권역 가장 외곽다리가 광진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분이 계시지만 암사대교는 서울 강동구와 구리시를 연결하는 다리이기 때문에 제외하면 광진교가 서울기준으로 가장 상류에 위치한 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광진교가 있는 광진구는 예로부터 중요한 포구 역할을 하였던 곳입니다. ‘광진(廣津)‘이라는 지명은 말 그대로 강폭이 넓은 나루였다는 뜻입니다. 한글로 풀면 ‘광나루‘입니다. 그래서 5호선 청호역 앞을 지나는 역 이름이 광나루역인데 왜 이런 역명이 붙었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겁니다. 광진(광나루)는 경기도 광주 및 용인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루였으며 강북의 광나루와 강남의 삼전도, 이후에는 송파나루와 연결하여 배가 다녔던 곳입니다. 서울의 광희문을 나서서 중랑천 살곶이다리를 건너 광나루로 이어진 길을 따라 경기도의 내륙지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렇게 빈번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은 근대화 과정에서 뱃길을 대신할 육로가 먼저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광진교는 서울에서 3번째로 다리가 세워져 1936년에 완공됩니다. 이후 오래된 다리를 철거하고 다시 건설하여 2003년에 다시 개통됩니다. 이후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교량이 소화할 수 있는 교통량이 부족하여 바로 옆에 천호대교가 건설하면서 역사의 중심에서 빠지게 됩니다. 이후 다시 한 번 개조를 통해 사람이 다니기 좋은 다리로 거듭나 지금에 이릅니다. 광진교는 TV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소개되었었는데 다리 하부에 공간을 만들어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진교를 건널 때 다시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 - 네번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