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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 - 네번째

한강을 만나러 갑니다. - (2)


한강을 만나러 갑니다_

여행코스 : 한양대역 -> 서울숲공원 - 청담대교 - 강변역 : 9.3km



* 쓰라린 기억을 간직한 성수대교     


  오른쪽에 있는 다리가 성수대교입니다. 초기에는 아치형 다리였다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 나들목을 설치하면서 꽤나 복잡해진 다리입니다. 성수대교는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1979년 10월 준공 되었습니다하지만 오래된 다리라는 사실보다는 1994년 10월에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었죠오래된 다리였지만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다리가 무너지면서 한강 다리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을 실시하였었습니다그래서 당산철교같은 경우안전에 위험이 발생하여 보강공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여 순환선이 합정역과 당산역을 오가는 형태로 운영되었었습니다이후 현대건설에서 새롭게 건설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한동안 경제개발과 한강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날림공사를 하였던 것이 원인이었었습니다재공사 이후 2004년에 왕복 8차선으로 확장하여 지금에 성수대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성수대교의 모습은 낮보다는 밤에 아름답게 빛나며 걸어서 건너 다닐 수 있는 다리이기도 합니다.     

  성수대교 위쪽에는 영동대교가 있습니다.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다리입니다. 대교의 모습으로 60~70년대 다리와 그 이후에 만들어진 다리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강의 다리는 6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다리는 교각이 많은 일반적인 형태이지만 80년대 이후 본격적인 한강 개발이 이루어 지면서 다양한 디자인이 가미된 대교가 건설됩니다. 그래서 훨씬 경관이 아름답고 조명을 더하여 밤에도 빛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영동대교는 강남 개발의 시작을 알린 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잠실대교와 한남대교에 밀집되었던 교통량을 분산하고 영도대교 주변 청담동과 삼성동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강 다리의 개발은 교통의 요지 또는 중요도가 높았던 나루터가 있었던 지역에 우선하여 대교가 건설되었고 이후 한강의 나루터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한강 다리의 디자인)          



*말 많은 동네 뚝섬     


영동대교를 지나면 너른 공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이곳은 7호선 뚝섬유원지역이 있는 청담대교 아래 뚝섬한강공원입니다.      

  예전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이곳에 뚝섬 경마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뚝섬에 있던 경마장을 지금의 과천으로 옮기면서 비워진 공간에 서울숲으로 만들었다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뚝섬이라는 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조선 초기에는 이곳을 살곶이벌 이라고 불리웠었습니다.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많이 하였고 군대 사열도 했었다고 합니다. 군사훈련을 할 때 왕이 참여하면서 왕을 상징하는 깃발을 세워 놓았었는데 이를 ’둑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둑기를 세우고 승전을 기원하던 제사도 지내던 곳이 이곳이였는데 둑기가 세워진 섬이라는 뜻에서 ‘둑도‘라고 불리웠다가 발음이 변하여 뚝도, 뚝섬으로 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둑기의 모습-화성능행차도 발췌)     


 그렇다면 살곶이다리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이지역의 다른 이름이 살곶이벌 이였는데 여기에도 유래가 있습니다. 야사에 보면, 태조 이성계가 ’왕자의난‘ 이후 고향 함흥으로 돌아가고 태종이 태조 이성계를 다시 모시기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차사는 죽음을 맞이하거나 연락이 두절된 상태가 되었었다. 그래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나왔고, 이후, 무학대사와 함흥차사인 박순의 설득으로 다시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태종은 성수동 일대 벌판에서 태조를 맞이하는데 하륜은 태종에게 천막 기둥 뒤에서 태조 이성계를 맞이하고인사를 하라고 조언하였는데, 태조 이성계는 갑작스럽게 활을 들어 천막뒤 태종을 향애 화살을 쏘게된다. 화살은 태종이 서있는 기둥옆에 맞았고 이에 태조 이성계는 태종이 왕이 된 것은 천명이라 여기고 용서를 해줬다고 합니다. 이후 이곳을 ’화살꽂힌 벌판‘ 또는 ’화살이 날아온 곳‘ 이라고 불리우다 ’살곶이벌‘ 또는 ’살곶이‘라 바뀌어 불리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뚝섬 살곶이벌을 건너는 다리 이름이 살곶이 다리가 된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대규모 군사 훈련을 하였던 장소라고 했었습니다. 조선은 보병이 주가 아닌 기병이 주를 이루는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투에 사용할 말이 중요하고 많이 기르게 되었는데 좋은 암말이 많을수록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암말을 많이 길렀다고 해서 이 주변을 ’자마장리(雌馬)’라고 불리웠는데 말소리가 변하여 ‘자양동‘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양동 뒤쪽에는 용마산이 있는데 용마산 자락에는 용감한 말이 많이 길러졌다고해서 붙여진 산 이름입니다. 어쨋던 용마산 아래 지역은 말이 많은 곳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한강의 수위를 정하다 잠실대교와 수중보     


  한강길 걷기의 두 번째 코스는 잠실철교가 있는 강변역까지입니다. 그곳에 가기까지 또 하나 보게될 다리가 잠실대교입니다. 잠실대교는 한강에 건설된 6번째 다리이며, 잠실권역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예전잠실은 ’부리도‘라는 섬이 였는데 이를 육지화하여 개발하게 됩니다. 이외에 잠실대교는 초기 만들어졌을 때 다른 모습으로 잠실대교 아래 수중보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1980년대 한강개발을 하면서 한강에 유람선을 띄우고자 했는데 한강의 수심이 낮아 배를 띄울 수 있는 상황이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실대교와 행주대교에 각각 수중보를 설치하여 수심 10여 미터 정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하여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너른 강폭을 지닌 한강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서울시에서 수중보를 철거하겠다는 얘기도 나왔었다고 합니다. 옛 한강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함인데 현재까지 아무런 진행이 없습니다. 수중보가 철거된다면 한강의 수위가 낮아지고 모래톱이 생겨 없어졌던 백사장이 다시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잠실대교 모습)

(한강 목원 모습 예상도)     


 이제 마지막입니다. 잠실 철교는 지하철 2호선이 다니는 철교입니다. 한강의 다리 명칭을 보면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 또는 지하철과 복합으로 다니는 다리는 ’대교’라고 불리고 지하철 또는 기차만 다니는 다리는 ‘철교’라고 부릅니다. 잠실철교는 예전에는 차량도 통과할 수 있는 다리 였지만 현재는 차량 대신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다리 개선을 통해 안전하게 잠실나루역까지 갈 수 있습니다.     


 2코스는 한강을 만나 처음으로 걷는 코스입니다. 한강은 그저 단순하고 평이하게 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으나 어떻게 걷느냐에 따라 무엇을 보고 갈 것이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길입니다. 게다가 낮과 밤이 다른 곳이기에 여러 번 다녀와돠 지루하지 않을 그런 곳입니다. 3코스 부터는 한강의 다리 들을 건너는 재미를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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